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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환대의 도시 /임규찬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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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06-02 19:15:18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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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계절이다. 더위는 한순간의 감정이 온 정신을 감싸듯 어느새 지배적인 것이 되었다. 우리 몸은 거세어진 더위에 익숙하지 않다. ‘우리 유전자는 그렇게 빨리 변화할 수가 없기 때문에 급박한 환경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진화의 배신 중에서). 여름의 규정은 바뀌어야 한다. 6월은 여름이다. 그리고 이 여름은 타협 없이 양보 없이, 부산의 계절이다.

‘모든 지하 보물창고로부터는 자기 자신의 것이 가장 늦게 발굴되는 법이다’(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부산은, 사람에 비유하자면 천재적이다. 타고난 천재성과 함께 만들어진 천재성도 부산은 함께 지니고 있다. 누구에게나 타고난 천재에 대한 로망이 있다. 그래서 타인에게는 고통스럽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한다. 노력은 홀로 하는 비밀작전이다. 노력 없는 탁월함, 천재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정은 우월 욕망을 충족시키는 최고의 선물이다.

이 글에 대해서도 그런 욕망은 마찬가지다. 한 번의 호흡으로 삶의 성찰이 깊이 밴 아름다운 문장들이 철새의 이동같이 질서정연하게 날아오르고, 그것이 손 볼 곳 없는 완벽한 문장이길 희망한다.

그러나 가당찮은 일이다. 마감일을 통보받은 뒤부터 고민은 머리 한구석에 오롯이 자리하고 있었다. 세수를 하면서도, 사랑스럽게 무서운 사람으로부터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강요에 못 이긴 설거지를 하면서도, 여러 굴욕을 생각하면서도, 손톱과 코털을 깎으면서도 심지어 즐거운 술자리에서도 머리 한 곳에서는 글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바쁨도 우월함을 과시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빽빽한 일정과 수많은 문자메시지는 자랑이자, 흐뭇함이다. 바쁘지 않음에서 오는 패배감으로부터 자신을 구하는 탈출구이기도 하다. ‘그들은 자신의 삶이 힘들고 피곤하다고 꾀병을 부리면서 그렇게 살 수밖에 없노라고 합리화한다. 선약이 있노라고 말하면서 초대를 거절하는 기쁨은 경쟁에서 승리했다는 징표이다’(미니마 모랄리아 중에서).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우월 의식은 저열함의 기준이지만, 부산이라는 공간에 대한 우월 의식은 얘기가 다르다. 부산은 뻐기고 잘난 척할 만하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부산은 지정학적 천재성과 역사적 천재성을 함께 지닌 드문 도시다. 자각과 발견 그리고 이야기가 필요할 뿐이다.

시대와 사건은 상호작용하면서 서로를 규정한다. ‘때로는 우연한 일이 실마리가 되어 무한한 변화가 일어나고 주변의 환경이 달라지는 것이었다’(마담 보바리 중에서). 개념 하나가 거대한 변화를 일구어낼 수도 있다. 어쩌면 거대한 변화야말로 작은 하나에서 실마리가 풀리는 것이 아닐까? 망해가던 할리데이비슨은 소음으로 인식되던 오토바이 소리에 대한 특허로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을 자각하고, 발견하고, 이야기로 만든 것이다.

부산은 절묘한 접점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부산은 고난에 처한 우리 국민을 감싸 안은 따뜻한 남쪽 도시다. 부산의 타고난 천재성과 만들어진 천재성은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한다. 그리고 부산의 과거와 현재, 미래는 하나의 단어에 응축되어 있다. ‘환대’는 인간됨의 실천이다. 자신을 한 발 물러 세워 타인을 기쁘게 맞이하는 것이다. 환대는 구체적이고 또렷하고 쉽다. 당장 할 수 있다. 환대는 경청이다. 경청은 타인의 삶에 대한 존중이다. 환대는 도움이다. 도움을 주고받을 때 사람은 존재의 기초가 단단해진다. 환대는 역할을 주는 것이다. 환대는 인정이다. 인정은 충만함, 푸근함, 안락함이다. 환대는 함께 향유하는 것이다. 즐거움과 고통을 함께 향유하는 것 속에는 진한 우정과 뿌듯한 자부심이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뭔가 묘한 분위기의 실체, 우리 안에 깃들어 있는 것, 환대는 부산의 열쇠일 수도 있다.
상처 없이 살 수 없는 삶에서, 그리하여 ‘매 순간 우리들의 상처를 통해서 우리 자신의 삶이 새어나가도 속수무책이지만’(섬 중에서, 장 그르니에) 그럼에도 그것을 보듬고 나아가는 게 삶일 것이다. 환대하고, 환대받는 도시, 환대가 가득한 도시, 환대가 일상의 문화인 도시 그리하여 여름은 환대의 도시, 부산이다.

작가·도서출판 함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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