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연초부터 지난 한 해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였던 ‘혐오’를 주제로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지난해 초 ‘미투(#MeToo)’ 폭로를 계기로 성 소수자, 장애인, 다문화가정 등 소수자 집단을 타깃으로 한 혐오표현도 본격화됐다. 대표적인 예가 내전을 피해 제주도로 온 예멘 난민 문제. 이슬람 이방인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전제한 뒤 수개월간 온·오프라인에서 논쟁하다 난민반대 국민청원으로 이어졌다. 청원 5일 만에 추천자 수가 20만 명을 넘길 만큼 전 국민의 관심사였다.
최근 개인적으로 아이와 관련한 난감한 상황을 경험하면서 다름이 곧 배척인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오랜만에 지인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부산의 핫플레이스가 된 수영구 Y 서점이 거론됐다. 주말에 들러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곤 하는 장소이기에 반갑게 맞장구를 치려던 순간, 지인은 “커피도 좋고 책도 좋아하는데 아이들 데리고 온 엄마가 너무 많아 한 번 가보곤 절대 안 가요. 예전 살던 아파트도 젊은 부부가 많아 시끄러워 다른 곳으로 이사했어요”라며 고개를 저었다. 결혼하지 않은 1인가구 입장에서는 아이와 함께 다니는 엄마가 공해구나 싶어 이해는 되면서도 씁쓸했다. 얼마 뒤 남편도 비슷한 경험담을 전해주었다. 후배 결혼식장에서 지인과 안부를 주고받다 주말 오후인데 어디 갈 거냐는 질문을 받고, “아이들과 Y 서점에 갈 예정이다”고 했더니 “아이 많은 데는 질색이다. 노키즈 존이 더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는 것. 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한 남편은 “결혼하지 않았다면 같은 입장일 수 있겠다”고 말하며 자리를 떴다.
위 사례를 혐오라고 정색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나와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서로 갈등하는 시대임은 분명해 보였다. 혐오는 누군가를 극도로 미워하고 배격하는 감정이기에 쉽게 뱉어내기에 그 무게감이 상당하지만, 각종 신조어로 무장한 혐오표현들이 난무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기혼 여성은 맘충, 한국 남자들은 한남충, 학교 급식을 먹는 세대는 급식충이라는 말을 쓰며 사람을 벌레로 지칭하니 할 말이 없다.
혐오표현은 온라인이라는 익명의 공간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7년 발표한 ‘혐오표현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대상인 성 소수자, 장애인,남녀 집단 응답자의 90~98%가 온라인에서 혐오표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스트레스나 우울증 등 정신적 어려움을 겪었다’는 응답은 장애인 58.8%, 이주민 56.0%, 성 소수자 49.3% 등으로 절반 이상에 달했다.
민주주의가 성숙한 사회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오히려 우리는 뒷걸음질치고 있는 것 같다. OECD 34개 국가의 사회갈등지수(2014)를 보면 한국은 1.200으로 멕시코(1.507), 터키(1.354)에 이어 세 번째로 갈등이 심하다. 민주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공동체 역량은 어떤가. OECD 삶의 질 조사(2017) 중 ‘공동체 지원 관계망의 질’은 35개국 중 꼴찌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제도적·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은 해온 반면, 남녀차별의식이나 타 민족 차별 등에 대한 부문은 간과해 왔다고 원인을 진단했다. 아울러 경제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사회적 약자를 견제하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차별과 혐오 없이,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성숙한 민주시민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학창시절부터 적극적으로 교육받고 토론하고 배우면서 역량과 자질을 키워야 한다. 독일은 과거 나치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정치교육을 필수과목으로 운영하고 있고, 프랑스도 비판적·능동적 시민 양성을 목표로 시민도덕교육을 의무화했다고 한다. 지금 이대로라면 타인을 향해 쏟아낸 말의 비수가 어느 순간 자신에게 되돌아올 수 있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하루빨리 키워야 할 것이다.
독자여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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