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콩깍지가 씌었다'. 상사병에 걸릴 정도로 홀딱 반한, 이른바 '핑크렌즈 효과'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뇌에서 사랑호르몬이 철철 흘러나오는 상태. 도파민과 페닐에틸아민, 옥시토신, 엔돌핀 등이 대표적이다. 상대에 대한 호감으로 시작해 흥분과 열정, 그리고 성적 흥분에 이은 극치감을 안겨준다. 하지만 지속효과가 길지 않은 게 문제. 고작해야 3년을 넘기지 못한다. 사랑이 식었다는 표현은 호르몬 분비가 그친 결과일지도 모른다.

옥시토신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공유하게 해서 행복감을 주는 이타적 호르몬이다. '죄수의 딜레마'란 게임이론이 있다. 배신을 해서라도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지만 결국 최선의 결과를 낳지 못한다는 점을 설명해준다. 전문가들이 원숭이를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했다. 주스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독점 버튼을 눌러대던 원숭이들에게 옥시토신을 주입하자 서로 상대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선택을 하더라는 것이다. 사랑과 유대감이 없었다면 상상하기 힘들다. 이게 경제학과 생물학 이론의 차이가 아닐지.

사랑과 연애는 엄연히 다르다. '사랑이 식으면 정으로 산다'지만 여기서 사랑은 불타오른 연애 감정이자 집착적 중독이지, 이타적 의미는 아니다. 호르몬 분비가 연애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면, 사랑은 그 이상의 무엇이다. 그걸 하려면 특별한 능력, 저 유명한 에리히 프롬이 내세운 '사랑의 기술'이 있어야 한다.

프롬이 지적한 사랑의 잘못된 전제는 세 가지. 사랑을 주기보다 받는 데 열중하고, 그 대상을 찾는 데 급급하다. 그리고 사랑에 빠지는 최초의 경험과 사랑에 머무르는 상태를 혼동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풀려면 그림이나 공학처럼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는 게 프롬의 주장. 그걸 배우지 못하니 엄청난 기대와 희망으로 시작된 사랑이 적대감과 실망, 권태로 변하면서 실패할 수밖에. 이야말로 기만적 사랑이자 배타적 이기주의에 불과하다는 거다. 상대에 대한 관심과 존경, 책임, 소망을 지속적으로 품는 게 프롬식 사랑의 정의.

마약 사위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이화여대에서 열린 특강에서 "딸자식 가진 부모는 연애하는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둘째 딸이 연애를 안 하다 남편을 잘못 선택했다며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사람보는 눈'을 강조하고자 한 그의 말은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연애는 사랑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올바르게 표현하자면 사랑 기술이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