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장기인 '유체이탈 화법' 신공(神功)이 갈수록 빛을 더하고 있다. "(세월호 가족들이) 지금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자는 주장은 삼권분립과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일로 대통령으로서 할 수 없고 결단을 내릴 사안이 아니다."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에 주석도 달았다. "세월호 특별법도 순수한 유족들의 마음을 담아야 하고 희생자들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외부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는 건 삼권분립과 사법체계를 흔드는 일'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은 언뜻 옳은 소리 같지만 뜯어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 성 싶다. 그런 논리라면 지금까지 수없이 임명해 온 특별검사 역시 사법체계를 흔드는 게 아닌가? 특검은 법조 경력이 있는 민간인인 변호사 등에게 검사의 지위와 권한을 줘서 수사와 기소를 맡기는 제도다. 유족과 대한변협이 내세우는 것은 판사·검사·군 법무관 또는 변호사로 10년 이상 재직한 자를 진상조사위 상임위원으로 선임해 검사의 지위 및 권한을 주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안이다. 특검 추천권을 별도의 추천위원회가 행사하는 것과 진상조사위가 추천하는 정도의 차이인데 무엇이 얼마나 법리에 어긋난다는 건지 법률에 무지한 나는 이해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대통령은 유족들의 요구를 걷어차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힌 셈이다. 대통령은 여당 지도부에겐 "여당이라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장서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사실상 행동지침도 내렸다. 발언 타이밍 역시 기가 막힌다. 굳게 입을 닫고 있다가 야당이 내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시점을 잡아 전광석화처럼 한 말씀을 내렸으니. 대통령은 반대세력에 겁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이버상의 국론을 분열시키고,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성 발언이 도를 넘어서고 있어 사회의 분열을 가져오고 있다. 법무부와 검찰이 이런 행위에 대해 철저히 밝혀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여당은 이른바 '민생법안'의 단독 처리에 나서겠다고 한다. 정의화 국회의장도 국회 일정을 직권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모르긴 해도 검찰도 국민들의 댓글을 단속한다고 법석을 떨지 않을까.

대통령은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그는 지난 5월 19일 TV로 중계된 세월호 관련 대국민 담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 이런 말도 했었다. "필요하다면 특검을 해서 모든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고 엄정하게 처벌할 것입니다. 여야와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포함한 특별법을 만들 것도 제안합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진상조사위원회 설치를 포함한 특별법도 '대통령으로서 할 수 없고 결단을 내릴 사안이 아니'므로 '제안'한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헌법상 정부의 법률안 제출권은 언제 써먹으려고? 최종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더니 딱 넉 달 만에 면죄부를 받았다는 게 아닌가.

따지고 보면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은 유구하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TV토론에서 온갖 복지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큰 소리쳤던 터다. 그것도 증세 없이 '지하경제 활성화(!)' 등을 통해서. 야당 후보가 증세 없는 복지 확대가 가능한지를 묻자 대답이 이랬다. "그래서 제가 대통령이 되려는 거 아닙니까." 대통령이 되면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어 돈을 쏟아부을 기세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의 복지 공약은 대부분 철회되거나 축소됐다. 담뱃값 인상, 지방세 인상 등 증세가 줄줄이 기다린다. 그런데도 '증세 없는 복지'란 레토릭의 실종엔 한마디 해명도 사과도 없다.

대통령은 자신을 둘러싼 루머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그 도를 넘고 있다"며 "국민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고 국가 위상 추락과 외교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라는 거다. 야당 의원이 "대통령이 연애했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대통령의 미스터리 7시간'을 거론한 것에 분노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것도 일종의 유체이탈이다. 한나라당 대표 시절 당 소속 의원들이 연극을 한답시고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게 온갖 욕설과 조롱을 퍼부었던 적이 있다. "뭐 이런 개잡×이 다 있어", "거시기 달고 다닐 자격도 없는 ×"이란 막말에 박 대통령이 해맑은 표정으로 박장대소를 하는 사진이 지금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비록 '거짓말'이란 단서는 붙였을망정 '연애' 운운한 발언의 저의는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 어쨌거나 그렇게 억울하면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당일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무얼했는지 국민에게 밝히면 될 게 아닌가. 개그 프로 대사를 빌리자면 이렇다. "당황하지 않고 그때 나는 이런이런 국사를 봤으니 억측일랑 말라며 역공. 끝!"

대통령이 빨리 통과시켜 주지 않는다며 비판해 마지않는 민생법안이란 것도 진짜인지, 무늬만 민생인지도 알 수 없다. 관광진흥법, 의료법, 조세특례제한법 등등이 그것인데 영리병원 허용, 분양가 제한 폐지, 학교 주변 관광호텔 건축, 호화유람선 산업 활성화가 과연 진짜 민생일까. 박 대통령은 "국회의원 세비는 세금으로 나가는 것이므로 국민에 대한 의무를 행하지 못하면 그 의무를 반납하고 세비도 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일갈했다. 그렇다면 대통령 자신은 월급값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자신하는 걸까. 그렇다 해도 행정부 수반이 입법부에 이러는 게 무례가 아닌지 모르겠다. 본인 스스로 삼권분립을 강조하던 끝에 나온 발언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은 일찍이 영국의 대처와 독일의 메르켈 총리를 롤 모델로 삼았다는데 요즘은 메르켈을 버리고 대처를 따르는 형국이다. 야당을 무시하고 탄광 노동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으로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펼친 대처는 결국 저성장과 고실업률의 덫에 걸려 보수당 내 반발 속에 쓸쓸히 사임했다. 야당이 요구한 최저임금제를 받아들여 대연정에 성공한 메르켈은 '엄마 리더십'으로 최고의 지지율 속에 3번째 임기를 순항 중이다. 누구를 따를 것인가. 그것은 박 대통령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