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한국영화의 큰 획을 그은 작품이 1926년 10월 1일 단성사에서 개봉된 '아리랑'임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터. 극장 안은 눈물바다가 됐고 관객 모두 주제곡인 '아리랑'을 따라 불렀다고. 각본·감독·주연 1인3역을 맡았던 춘사(春史) 나운규(1902~1937)의 회심작. 그의 나이 25세 때의 일이다. 프롤로그에 '고양이와 개'라는 자막을 넣어 속박하는 자와 속박당하는 자의 대립을 암시한 이 작품은 신파물이나 외국 번안물이 넘쳐나던 시절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한국영화의 수준을 비약시켰다.

3·1운동에 참여했고 만주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했던 나운규는 회령~청진 철로 폭파 미수사건으로 1년6개월간 수감 생활을 하다 신극단 예림회에 들어가게 된다. 그 인연으로 1924년 부산에 와서 조선키네마(주)가 제작한 윤백남 감독의 '운영전'에 출연한 것이 그가 영화계에 몸 담게 된 계기. 대사 한 마디 없는 가마꾼으로 출연했던 그는 이듬해엔 백남프로덕션의 '심청전'과 조선키네마의 '농중조'에 출연해 연기력을 다졌다. 그리고 '아리랑'으로 대박을 쳤던 것.

1927년 '나운규프로덕션'을 차린 그는 '옥녀','사나이','사랑을 찾아서' 등 무성영화를 제작했고 1929년엔 한국 최초의 문예영화 '벙어리 삼룡이'도 제작했다. 1936년 그는 '아리랑 3편'으로'토오키 영화'시대도 이끌었다. 15년간 29편을 제작했고 26편에 출연한 그는 생활고와 폐결핵으로 35세란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떴다.

나운규를 언급하자면 그를 데뷔시킨 조선키네마(주)를 빠트릴 수는 없다. 1924년 부산의 일본인 실업가들이 자본금 20만 원을 출자해 설립한 이 영화사는 일본에서 영화 기술자를 데려와 영화를 찍었다. 부산 중구 동광동 러시아영사관(현 중구청사 아래 한성각 주변) 건물을 빌려 사옥으로 삼았다.일본 자본이 세웠다곤 해도 한국 최초의 영화사가 부산에서 세워졌다는 건 특기할 만한 일.

부산 중구청이 한국 최초영화사 설립 90주년 기념특별전 '조선키네마(주) 탄생, 나운규 귀환전'을 오늘부터 10월 31일까지 40계단문화관에서 연다. 조선키네마가 제작한 영화 자료, 영화 '아리랑' 자료 등 29점이 전시된다. 이 일대에서 한국 영화가 태동했고 부산국제영화제가 출범했으니 영화예술의 기념비적 장소랄 밖에. 돌아온 나운규의 반항아적 눈빛을 마주하는 것도 좋은 가을맞이 나들이가 될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