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김자경 기자

예상은 했지만 이토록 참패할 줄은 몰랐다. 7·30재·보궐선거에서 야당의 패배는 '참사(慘事)' 수준이다. 이런 종류의 선거는 정권에 대한 중간심판 성격을 띠게 마련이어서 여당이 고전하는 게 상례다. 특히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정권이 우왕좌왕해 왔던 터라 처음엔 새누리당의 패배가 유력했던 게 사실이다. 적어도 수도권은 야당 차지일 것이란 게 정치평론가들의 관측이기도 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야당의 참패였다. 다시 한 번 민심의 간지(奸智)를 실감할 밖에.

야당이 받아든 성적표는 낙제점을 넘어 퇴출 수준이다. 11:4. 부산·울산은 그렇다 치고 수도권에선 단 한 석을 건졌을 뿐 6곳에서 졌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이겼던 충청권도 전패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특히 뼈 아픈 대목은 텃밭 중의 텃밭인 전남 순천·곡성을 빼앗긴 것. 선거 전날까지 7:8, 하다못해 6:9는 될 것이라던 희망 섞인 예측조차 허무하게 무너졌으니 무슨 말을 하리오. 전전긍긍했던 새누리당은 안정과반을 훌쩍 넘겼다.

생각할수록 기묘하기 짝이 없는 반전이다. '세월호 참사'로 300명 넘는 생때같은 목숨을 물속에 빠트리고 국무총리에서부터 장관에 이르기까지 온갖 인사 잡음을 일으켰던 박근혜 정권이다. 그뿐이면 말도 않겠다. 유병언 수사에서 보인 검찰과 경찰의 헛발질은 말을 꺼내기 민망할 정도였지 않은가. 그런데도 대통령에 대한 일부 국민의 맹목적(?) 지지는 불가사의하다. 민주주의와 공화정치를 질식시켰지만 그래도 먹고살 만한 기반을 만든 박정희의 딸, 부모를 흉탄에 잃고 결혼도 마다한 잔다르크 같은 성처녀의 이미지는 가녀린 외모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의 오늘을 있게 한 밑천이다. 노년층은 그가 일찍 홀로 된 딸이나 누이동생처럼 애처로운 모양이다.

그래도 그렇지 지난 1년 반의 실정에 대한 정치적 심판은 있어야 하지 않은가. 부실투성이 국정을 바로잡도록 따끔한 회초리는 들었어야 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이번 선거 결과가 통분스럽다. 특정 야당을 지지해서가 결코 아니다. 정권은 면죄부를 받아든 양 다시 기고만장, 오만방자해질 게 아닌가. '세월호 참사'로 속속들이 드러난 온갖 적폐를 씻어내도록 정권에 강요할 기회를 놓친 게 아닌가. 그런 통분함은 선거를 망친 야당에 대한 증오에 가까운 원망으로 이어진다. '등신 같은 놈들'이란 욕이 절로 튀어나오는 거다. 복기해 보면 '질 수 없는' 선거를 야당이 참패하고만 까닭이 한두 개가 아니다. '세월호 참사'의 후폭풍 속에서 치러졌던 6·4 지방선거에서 야당은 여당과 비겼다. 아니, 사실상 패배였다. 국민이 준 메시지는 간명했다. 정권과 여당도 책임져야 하지만 야당도 믿지 못하겠다는 거다. 그랬으면 정신 차렸어야 하지 않은가.

공천부터 안이함의 극치였다. 지도부란 사람들은 호남만 믿고 새 인물 발굴을 외면한 채 철저하게 경쟁력이 없는 사람들만 집어냈다. 일부러 그러기도 쉽잖을 게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심복이라는 사람을 격전이 예상되는 서울 동작을에 공천할 때부터 알아봤다. 박원순을 뽑았대서 그의 심복까지 뽑아줄 만큼 유권자들이 만만한가. 부산·경남에서나 알 만하지 수도권에선 낯선, 게다가 대권 때문에 도지사 자리를 차버린 김두관을 김포에 공천한 배짱은 또 무엇이었을까.

절창(?)은 권은희의 광주 공천이었다. 권은희는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수사에 대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정의 축소·은폐 지시를 폭로해 뉴스를 탔던 인물이다. 그의 폭로가 맞는지 틀린지는 두고라도 공천을 강행하면 여당과 보수언론의 집중포화로 전체 선거전이 발목 잡힐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매를 자청한 지도부의 저질 정치감각은 혀를 찰 노릇이다. 아니, 이렇게 된 건 당권 유지에 장애가 될 만한 잠재적 대권후보들을 배제하려던 김한길·안철수의 사심 때문이 아니었던가. 이러니 배제된 이들이 '어디 잘 되나 보자'하고 뒷짐지고 있었던 게 아닌가. 정권의 인사 실패를 그토록 비판해 놓고선 제 엉터리 인사는 국민이 봐 줄거라고 믿었던 걸까.

선거 전략 역시 빵점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그 문명사적 의미와는 별개로 선거 이슈로선 지난 지방선거를 거치며 일단 동력을 잃은 게 사실이다. 새누리당이 발 빠르게 '경제 살리기'를 구호로 내걸었는데도 그들은 여전히 '세월호'를 우려먹느라 여념이 없었다. 야당엔 그렇게도 전략통이 없었을까. 단일화 게임도 실패였다. 단일화는 나름의 당위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가져야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법이다. 비장의 카드 아닌, 상투적 수단으로 전락해서야 무슨 효과가 있겠나. 선거운동도 치열하지 않았다. 순천에서 이정현이 얼굴이 새카맣게 타도록 현장을 누빌 때 야당 후보들은 도대체 뭘 했을까. 공천 실패, 전략 부재, 치열성 실종…. 이러고서도 이기려 했다면 과연 온전한 정당일까.

무엇보다 안타까운 노릇은 '안철수식 새 정치'의 몰락이다. 지난 대선 당시 국민에게 짜증만 준 문재인과의 단일화 게임에서 그 전조가 드러난 안철수 정치의 몰락은 그가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구태 야당'에 투항할 때 예견된 것이었다. 결국은 콘텐츠 없는 '깡통'으로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이대로라면 그는 '제2의 문국현'이 될 거다. 개인 안철수의 몰락보다는 낡고 부패한 패거리 정치에 진력난, 그래서 한때 그에게 희망을 걸었던 젊은이들의 낙망이 안타까워서 하는 소리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이 너무 낮아서 졌다고? 노년층 유권자와 조직표 때문에 졌다고? 웃기지 말라. 패인은 젊은 유권자를 투표소에 불러들이지 못한 당신네의 무능과 안일이다.

아마도 야당의 몰락은 이게 끝이 아닐 것이다. 야당은 좀 더 처참하게 깨져야 한다. 더 벼랑으로 몰려야 한다. 더 추락해야 한다. 지옥의 밑바닥을 경험해 보라. 지난 대선에서 지고도 아무런 변화의 몸부림 없이 안주한 업보다. 그래도 정신 못 차린다면 어쩌겠는가. 건전한 견제 세력조차 가지지 못한 국민의 불행일 뿐. 불통과 오기의 대통령, 기고만장 군림하는 집권당, 자멸하는 불임 야당. 참 삼박자가 잘도 맞다. 이번 여름이 덥다. '천불'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