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카게무샤(影武者)'는 그림자 무사란 뜻으로 주군의 신변을 보호하려고 외모가 꼭 닮은 이를 주군 행세를 시키는 것.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80년작 '카게무샤'는 16세기 말 무로마치 시대 말기 다케다 신겐이란 영주의 이야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군대를 포위했다가 저격당한 다케다는 자신의 죽음을 3년간 알리지 말라고 유언한다. 아들이 권력기반을 굳힐 때까지 가신들은 그와 흡사한 좀도둑을 가짜 장군으로 만들어 적을 속인다.

애틋한 이야기도 있다. 1882년 임오군란은 오래 밀린 급료로 모래 섞인 쌀을 받아든 구식군인들이 궁궐을 난입한 사건. 목숨이 경각에 달린 왕비 민 씨가 궁녀 복색으로 궁궐을 탈출했을 때 목숨을 걸고 호위한 이가 무예청 별감 홍계훈(洪啓薰)이다. 그는 충주에서 두 달간 숨어 있던 민 씨를 내내 호위했다. 출세가도를 달린 그는 훈련대 연대장을 맡았지만 1895년 을미사변 당일 궁궐로 난입하려던 일본 낭인들을 저지하려다 광화문에서 총을 맞고 죽었다. 홍계훈이 죽지 않았더라면 명성황후도 시해되지 않았을까.

호위무사에게 죽은 왕도 있다. 고려 공민왕은 노국대장공주가 죽은 후 젊고 용모가 빼어난 젊은이를 뽑아 '자제위(子弟衛)'를 설치했다. 왕을 시중들고 호위하는 기구. 공민왕이 후사를 얻으려고 자제위 소속 홍륜(洪倫)에게 자신의 비빈을 욕보이게 해 임신시켰는데 입을 막으려고 홍륜을 죽이려다 되레 시해됐던 것. '고려사'의 기술이지만 공민왕이 그렇게까지 음란했을지는 의문.

'검사 호위무사'도 있었다. 지난해 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자 시비로 물러나자 김윤상 당시 대검 감찰1과장이 이에 항의해 사표를 던졌던 것. "전설 속의 영웅, 채동욱의 호위무사였다는 긍지를 안고 살겠다"는 게 퇴임의 변. 글쎄 의리 없는 세상에 '으리으리'하게 자리를 박찬 결기도 좋지만 검사가 국민 아닌 상급자의 호위무사를 자처한 건 보기에 따라선 좀 '거시기'한 것도 사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장남 대균 씨가 경찰에 체포되자 6평 남짓한 오피스텔에서 석 달 가까이 함께 숨어 있었던 한 여성을 두고 설왕설래가 한창. 미모의 태권도 고단자래서 언론이 '유대균의 호위무사'란 별칭도 붙였다. 호위무사든 뭐든 사건의 본질과는 별 관계가 없는 여성이다. 그런데도 연인관계였을 거라니 뭐라니,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언론까지 가세해 가십을 확대재생산했으니 낯 뜨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