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국제칼럼] 공존의 그늘, 노년 /최원열

짐짝 취급받는 노년…위정자들 뒷짐만 져

탈시설·홈케어시스템, 일일 양로원 도입 등 선진국형 대안 절실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단편 만화 한 편을 보고 어린애처럼 펑펑 울었다. 이 땅의 고단한 어르신들이 너무나 애처러웠다. 소풍이라는 역설적인 제목은 소리없이 다가오는 무서운 재앙의 예고편이었다. 여느 즐거운 외출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세상과 이별해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눈물 흘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한 가장이 있었다. 암 투병 중인 아내 수발에 자녀 대학등록금 대기도 빠듯한 택시기사였던 그는 치매에 걸린 노모까지 모셔야 했다. 그래서 어머니를 요양시설에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꾀병을 부리고 증상이 심한 척해서 입소 등급을 받아야 한다고 단단히 일러뒀다. 하지만 노모는 자식 뜻대로 하지 않았다. 한숨만 푹푹 내쉬는 아들. 그게 아닌데. 자식과 떨어지기 싫어서 그랬는데.

노모는 어릴 적 꿈을 꾼다. 빨래터에서 다친 자신을 꼭 껴안은 어머니가 하신 말씀. "시상 천지에 니랑 내랑 둘 뿐인데. 니를 앞세우고 내가 우예 살끼고." 노모는 결심했다. 소풍을 떠나기로. 자식 시름을 덜어주기로. 곱게 분단장을 한 뒤 짐짓 치매 환자티를 내면서 아들에게 바깥나들이를 재촉한다. 강변 공원에서 먹을 것을 청해 아들이 자리를 뜬 사이 돌을 가득 넣은 보따리를 품에 안은 채 물에 뛰어든다. 노모의 독백이 심금을 울린다. 마른 잎처럼 시들어가는 내 새끼야, 너로 인해 내 인생은 온통 꽃밭이었는데….

도대체 누가 죄인인가. 아들에게 돌을 던질 수는 없다. 노모도 모자의 정이 그리웠을 뿐이다. 인륜과 천륜을 저버린 게 아니질 않나.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사회와 우리 모두가 책임질 일은 아닌지. 그 삭막한 풍경에 가슴이 아리고 숨이 막히는 듯하다. '마지막 집세'와 '화장비'를 남겨둔 채 불쌍한 노인들은 그렇게 하나둘 사라져 간다. 지금 '마지막 집세' 대기자들이 줄을 서 있다.

'거울 속의 늙은 여자는 울고 있었다. 아무리 웃기려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도 거울 속의 여자쯤은 마음대로 될 수 있으려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고 박완서 선생의 단편소설 '황혼'에 나오는 내용이다. 며느리로부터 어머니 대신 늙은 여자로 불리는, 쓸모없는 짐짝 취급을 당하는 노년, 한국사회의 세대 간 갈등을 다뤘다. 30여 년 전에 '공존의 그늘'을 그려낸 선견지명이 놀랍다.

정녕 젊은 세대와 노년은 공존하기 힘든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미래는 없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꼬부랑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는 게 자연의 이치기에. 그걸 거스른다면 인류는 만물의 영장이라 내세울 자격도, 행성 지구에 터전을 잡고 살 의미도 상실할 것이다.

드잡이질에만 열중하는 우리 정치판을 보노라니 분통이 치민다. 한시가 급하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숱한 노인들이 '소풍'을 떠날 참인데 말이다. 결국 기초연금법안 처리가 무산됐다. 정치인들에게 기초연금은 단지 선거용 전략에 지나지 않은 듯하다. '내 탓이오'는 찾아볼 수 없고 '네 탓' 선전에 바쁘다. 오는 7월부터 지급하려던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노년층의 절박함은 아예 관심도 없다. 그런 엉터리 정치판은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유럽노인 엑소더스가 벌어지고 있는 태국 치앙마이를 보라. 독일에서, 스위스에서 요양시설에 들어갈 여유가 없는 치매 환자들이 몰려와 북새통을 이룬다. 후진국에 쓰레기 처리를 맡기듯 노인과 장애인들을 해외로 내보낸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독일에서만 이렇게 내쫓기다시피 해외 이주한 노인이 40만 명에 이른다. 고향에서 정부 지원만으로 요양시설에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그 돈으로 태국에 가면 24시간 간병인 3명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황혼 자살 공화국 대한민국도 오명을 뒤집어쓰는 건 시간문제다.

시간이 없다. 공존의 그늘을 걷어내기 위한 조치에 서둘러 나서야 한다. 기초연금 못지 않게 중요한 게 현장의 보살핌이다. 제도가 있어도 모르거나 혜택을 받지 못한다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인식을 했다면 노년층이 고통받는 현장으로 뛰어들어가 도와줘야 한다.

정부에 간곡히 권한다.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집이 있듯이, 노인들에게도 상응한 시설을 지원하라. 예컨대 일일양로원 같은 것이다. 치매 환자는 물론이고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온종일 돌봐주고 놀이와 교육, 치료도 해주는 원스톱 서비스가 이뤄져야 한다. 부양 가정이나 본인 부담을 줄이도록 염가로 제공되어야 하고, 빈곤층에 대한 무료 서비스도 필요하다.

미국의 '비컨힐 빌리지'처럼 탈시설, 홈케어시스템도 적극 검토할 시점이 됐다. 노후를 정든 집에서 도우미서비스를 받으며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마을공동체가 팔을 걷고 나선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연금 지급과 현장 돌봄이 동시에 이뤄져야 공존의 그늘을 지울 수 있다. 편안하고 행복한 노후가 공존에 득이 된다는 점을 깨닫는다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16일, 체감온도 31도 이상 ‘무더위’...야외활동 폭염영향예보 참고
  2. 2부산 초읍동 창고 화재... 인명피해 없어
  3. 3잦은 강우와 봄철 고온으로 탄저병 기승
  4. 4경상국립대 국어문화원 ‘우리말 다듬기 공모전’ 발표
  5. 5원자재 급등에 부산벡스코 제3전시장 건립비 52%↑…준공도 밀려
  6. 6여름철 부산 소울푸드 '이것', 잘못 걸리면 병원 신세?
  7. 7폭발물 의심 신고로 부산 도시철도 2호선 운행 중단
  8. 8"2000년 이후 17개 폐교대학 모두 지방대…정부지원 무색"
  9. 9부산진구 단독주택서 화재...60대 남성 숨져
  10. 10오후부터 소나기...당분간 낮 기온 30도 이상
  1. 1尹대통령, 우즈벡 사마르칸트 방문…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 마무리
  2. 2尹대통령, 중앙아 3개국 순방 마무리… 귀국길 올라
  3. 3민주 부산시당위원장 경선…최인호·이재성 등 다자구도
  4. 4북한 ‘오물 풍선’ 경남서도 발견…1600개 살포 추정
  5. 5韓中 대화, 푸틴 방북…내주 한반도서 치열한 외교 전망
  6. 6野, 김건희특검·방송3법 당론 재추진…‘반쪽 국회’ 가속 페달
  7. 7[뭐라노-이거아나] 대북확성기
  8. 8與 ‘이재명 사법파괴 저지 특위’…野 ‘대북송금 특검법’ 맞불 구성
  9. 9국힘 대표 ‘당원 80% 국민 20%’로 선출
  10. 10‘1의원 1보좌관제’, 부산시의회 의장 선거 주요 이슈로
  1. 1"2000년 이후 17개 폐교대학 모두 지방대…정부지원 무색"
  2. 21124회 로또복권 1등 10명… 당첨금 26억2333만 원
  3. 3기름값 떨어졌지만…유가 상승에 향후 오름세 전환 가능성
  4. 4‘물 만난’ 롯데월드·롯데워터파크…시원한 워터 이벤트 쏟아진다
  5. 5냉감 침구류서 가전·과일까지 불티…유통가 더위 특수
  6. 6부산 아파트 전세가마저 하락
  7. 7쿠팡 1400억 과징금에…부산센터 20일 기공식 취소
  8. 8용량 줄여놓고 가격 그대로…‘꼼수 인상’ 제품 33개 적발(종합)
  9. 9에코델타 11블록 사업 급물살
  10. 10분산에너지법 시행…특화지역 지정 박차(종합)
  1. 116일, 체감온도 31도 이상 ‘무더위’...야외활동 폭염영향예보 참고
  2. 2부산 초읍동 창고 화재... 인명피해 없어
  3. 3잦은 강우와 봄철 고온으로 탄저병 기승
  4. 4경상국립대 국어문화원 ‘우리말 다듬기 공모전’ 발표
  5. 5원자재 급등에 부산벡스코 제3전시장 건립비 52%↑…준공도 밀려
  6. 6폭발물 의심 신고로 부산 도시철도 2호선 운행 중단
  7. 7부산진구 단독주택서 화재...60대 남성 숨져
  8. 8오후부터 소나기...당분간 낮 기온 30도 이상
  9. 9울산 남구 오존주의보 발령...실외활동 자제해야
  10. 10국가유산 피해 7건으로 증가...부안 지진 피해 500건 넘어
  1. 1한국 챔피언 KCC의 수모…FIBA 아시아리그 예선 탈락
  2. 2김영범 파리행 좌절 아쉬움, 한국 신기록으로 달래
  3. 3나달·알카라스 스페인 올림픽 대표 선발…세대 뛰어넘은 최강 테니스 복식조 탄생
  4. 4최형우 통산 역대 최다루타 1위 등극
  5. 5뮌헨 일본 이토 영입 추진…김민재와 주전경쟁 예고
  6. 6‘에어컨 없는’ 올림픽 선수촌…韓선수단, 쿨링재킷 입는다
  7. 7MVP 매탄고 임현섭 “팀원 대표로 수상…프로팀 진출 포부”
  8. 8협회장배 고교축구, 수원 매탄고 우승
  9. 9달라진 한현희…시즌 첫 QS, 이적 후 최다 9탈삼진
  10. 10막강 공격력 매탄고, 4년 만에 ‘고교 월드컵’ 제패
우리은행
후보가 후보에게 묻는다
부산 서동
4·10 총선 지역 핫이슈
원도심 숙원 고도제한
강동묵의 디톡스 [전체보기]
노동자 건강을 위한 국제사회의 경향
소규모사업장 중처법, 투약 중단이 필요한가?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더 많이 두들겨 보아야 할 산복도로라는 돌다리
옛 부산세관 복원, 진정한 새로운 전통이 되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준설, 유일한 치수대책은 아니다
융합의 안목
국제칼럼 [전체보기]
‘3요’와 칸 레드카펫을 빛낸 조연들
AI시대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기고 [전체보기]
갑진년 김해시의 ‘값진 주민과의 대화’
부울경 메가시티가 먼저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영화에 대한 열렬한 환호와 예우…‘축제의 궁전’ 품격이 달랐다
영화의전당 대표 연임…소통 외치는 현장에 귀 기울여야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아직 명당 덕을 덜 본 것일까?
노무현이 옳았다
김용석의 시사탐방 [전체보기]
신문은 살아 있고, 칼럼은 말을 건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디아스포라의 노래 영천아리랑
우리 융복합 음악의 시초 고구려악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천덕꾸러기’ 북항재개발 이대로는 안된다
소통을 이기는 무기는 없다
데스크시각 [전체보기]
가덕신공항과 박형준의 정치적 미래
도청도설 [전체보기]
파크 콘서트
스페이스 광개토
메디칼럼 [전체보기]
일하는 사람의 1차 의료, 근로자 건강진단
100세시대의 건강관리법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대만과 밀크피시
조식전쟁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뇌력(腦力)을 키우는 다섯 가지 비결
뇌, 팩트 체크!
사설 [전체보기]
때 이른 더위에 긴 여름 더 걱정…폭염대책 빈틈없어야
부산 의대 교수들도 휴진 결의, 환자 어디로 가야 하나
세상읽기 [전체보기]
‘고립주의’ 미국, 돌아온 ‘정글’…한반도 해법은
부산 청년 수도권 유출, ICT 계열이 가장 심각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건강주치의 제도가 의료 개혁의 핵심인 이유
의대 입학정원 갈등의 올바른 해법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회의 바다, 우리네 함장은 어디로 키를 잡을까
부산항, 글로벌 물류 허브 플러스 알파
이해인 수녀 '기도의 창가에서' [전체보기]
12월의 기도편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경제문제가 풀려야 인구문제가 풀린다
중국의 한국시장 시장교란
인문학 칼럼 [전체보기]
인문 정신은 언제나 곡선으로 간다
호모 사피엔스의 바다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나만의 생각’을 길러주려면
한국교육의 새 지평을 여는 IB교육학회 창립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당원 중심주의’의 함정
비례대표 제도는 죄가 없다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오페라 와인
와인이란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바로크 음악
낭만오페라의 종언! 푸치니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꽃피는 부산항’에서
처음 보는 ‘무릉도원’
CEO 칼럼 [전체보기]
우리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
드론으로 변화할 부산의 미래
  • 유콘서트
  • 국제크루즈아카데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