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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윤 칼럼] 또 하나의 제국

삼성 노동자 죽음 산재소송 다룬 영화, 상영관 배정서 홀대

거대자본 지배 사회, 여실하게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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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에서는 이따금씩 탄식이 흘러나오고 짧은 흐느낌도 터져나오곤 했다. 지난 토요일 오전 센텀시티의 한 멀티플렉스에서 '또 하나의 약속'을 관람하면서 만난 풍경이다. 아침 시간이었는데도 객석은 거의 채워졌다. 자본권력의 심장을 향해 돌직구를 날린 영화가 상영관 문제로 곤란을 겪고 있다기에 응원하는 심정으로 관람에 나선 것이다.

개봉영화 예매율 1위에다 높은 평점에도 스크린을 100개도 확보하지 못했다고 한다. 일부 도시에서는 아예 영화를 볼 수 없고, 서울에서도 상영관을 한곳으로 모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잇따랐다. 심지어 개봉을 이틀 앞두고 상영관이 취소되면서 환불소동까지 빚어졌다.

이 모든 게 영화 속 진성그룹, 실제로는 국내 최대기업 삼성의 어두운 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라 지레 짐작해 본다. 물론 기업의 외압이 확인된 바도 없고 극장 측도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상영관을 배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누가 봐도 정상적이 아니다. 영화제작 단계부터 순탄치 않았다.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시민들의 크라우드펀딩으로 십시일반 제작비가 충당됐고 배우와 스태프들은 노개런티로 참여했다. 여주인공이 도중에 하차하는 일도 일어났다.

영화는 백혈병으로 숨진 삼성반도체 노동자 황유미 씨의 산재소송 승소 과정을 다루고 있다. 회사의 비정한 대처에 맞닥뜨리며 딸의 억울한 죽음을 해원하는 끈질긴 부정을 그렸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따뜻하고 잔잔한 시선의 화면은 관객들 마음을 적셨다. 하지만 이 영화는 "표면이 정치라면 본질은 경제"라는 진성그룹 인사담당자가 내뱉는 말처럼 자본권력이 득세한 불공정한 세상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떨칠 수 없었던 생각은 국가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

유감스럽게도 국가는 더는 국민을 위한 존재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이후 국가는 거대한 자본과 결탁하며 그들의 이익을 좇는 야경꾼으로 전락했다. 1980년대 벽두 레이건과 대처가 자본주의의 새 브랜드로 들고나왔던 신자유주의는 효율과 성장이란 미명 아래 공적 영역까지 대자본에 갖다 바쳤다. 불과 20년 새 글로벌기업들은 폭식성을 과시하면서 유례없는 성장을 했다. 세계 100대 경제주체 가운데 51곳이 기업이고 49곳이 국가다. GM과 포드 매출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전체 국가의 GNP와 맞먹는다.

비대해진 글로벌 자본들은 국가권력의 비호 아래 엄청난 이윤을 챙기면서도 교묘한 방법으로 세금을 빼돌리는가 하면 번 돈을 숨기기 일쑤다. 그들은 본거지를 옮기겠다고 국가를 압박하며 세금협상에 나서기도 한다. 공공서비스와 공익시설이 흔들거리고 세금기반이 무너져 내리는 것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무한경쟁으로 질주하는 신자유주의 체제는 거대자본의 매출과 부를 급격하게 늘렸으나 오히려 법인세 수입은 줄어드는 추세다.

영화 속 "일자리를 만들고 국민을 먹여살리는 게 누군가"라는 진성 관계자의 기름진 목소리가 역겹다. 과연 그럴까. 재벌이 대한민국을 먹여살리고 일자리를 만들어내는가. 몇몇 대기업이 GNP의 절반을 차지하는 왜곡된 경제구조는 양극화를 부채질하고 국민들을 생존의 벼랑으로 내몰 뿐이다. 수출과 성장을 명분으로 고환율 등 친재벌 정책이 난무하면서 중소기업이 허물어지고 서민과 농민들은 희생당해 왔다. '또 하나의 약속'에 관객이 몰입하는 것은 영화 속 현실과 자신들의 삶이 뿌리 내린 현장이 결코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잉여를 자처하는 숱한 청춘들과 언제 일자리에서 밀려날지 모르는 중년의 가장들이 겪는 약육강식의 비정한 정글이 화면 위에 오버랩된다.

멀티플렉스들의 이해할 수 없는 상영관 배정은 더 큰 자본에 대한 눈치보기이자 자본권력의 담합이란 혐의를 벗기 어렵다. 문제작에 대해 언론이 철저하게 외면하는 것 역시 거대자본을 의식한 자기검열이 아닌가. 이렇듯 비이성적 행태는 또 다른 불공정 행위이자 국민의 헌법적 권리인 표현의자유를 왜곡된 시장논리로 침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또 하나의 약속'은 일상을 속박하는 거대한 권력, 자본의 제국으로부터 개인의 생각과 가치, 삶을 지켜내는 일의 소중함과 어려움을 동시에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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