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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숨어 있는 적 /최원열

달콤한 설탕처럼 교묘하게 위장해 우리사회 노리는 적들을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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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작심삼일의 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작은 결심을 했다. 믹스커피를 끊기로. 설탕 범벅을 더는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물자가 부족하고 못살던 시절, 설탕은 최고의 명절 선물로 명성을 날렸던 적도 있다. 귀한 손님이 왔을 때 대접했던 설탕물을 기억하시는지. 사실 당분은 뇌가 요구하는 유일한 영양소이며, 즉시 에너지로 전환된다는 점에서 자동차로 치면 '최고급 휘발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먹을 거리가 넘쳐나는 풍요의 시대에 설탕은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독이 됐다. 그로 인해 우리는 원초적 미각을 잃었다. 초식동물인 기린은 칼슘이 부족하면 본능적으로 사체의 뼈를 핥으며, 코끼리도 염분 보충을 위해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진흙을 찾는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충실하게 반응한 결과다. 인간은 어떤가. 단맛에 길들여져 설탕중독증 환자가 된 상태다. 짠맛과 매운맛에 가려진 단맛은 느끼기 힘들다.

당분이 물밀 듯 몸에 들어오면 췌장은 혹사당한다. 신체 평형상태를 이루기 위해 인슐린을 정신없이 만들어내서 혈당을 안정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게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되면 혈당치가 치솟다가 뚝 떨어지는 롤러코스터를 반복하고 결국에는 지친 몸이 손을 들고 만다. 생활 습관 질환인 당뇨병이 그래서 생긴다.

달콤함의 유혹은 어떤 면에서 마약보다 무섭다. 뇌 사진을 찍어본 결과 마약 중독과 설탕 중독이 같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당분을 먹지 않으면 무기력과 우울에 빠지는 이른바 '슈가블루스(Sugar Blues)'는 합법적 마약에 의한 심각한 부작용이다. 신체를 망가지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암 발병 인자이기도 하다. 암세포가 당분을 먹이로 무한 성장하기에 우리가 탐닉하는 단맛은 암이 자라는 데 더없는 자양분이 된다.

그것은 곳곳에서 호시탐탐 우리를 노린다. 스포츠 음료에서 고추장까지 속속들이 스며들어 있다. 매콤한 고추장의 삼할은 설탕이 차지한다. 운동한 뒤 염분을 보충하고자 마시는 시원한 이온음료 역시 이에 못지 않은 당분으로 채워진다. 커피믹스를 가장 먼저 끊은 건 한국인이 섭취하는 당분 식품 1위이기 때문이다.

어디 설탕뿐이겠나. 인체 수준을 넘어 나라와 국민의 삶을 위협하는 요인들이 우리 사회에 넘쳐 난다. 교묘하게 위장한 숨어 있는 적들 말이다. 그걸 제대로 가려서 걸러내야 하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민생을 내팽개쳤던 정치판이 그렇다.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자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민심 잡기에 여념이 없다. '뼈를 깎는 심정으로 쇄신하겠다' 등등. 세간에선 "하도 깎아서 남아있는 뼈가 있기라도 한가"라는 차디찬 비판이 나온다. 개헌론도 마찬가지. 대통령 중임제를 말하는 듯한데, 이왕이면 내각책임제로 바꾸지 그러나. 그래야 국회해산권이라도 얻을 터. 천민자본주의 운운하기 전에 천민정치부터 뜯어고치고 볼 일이다.

그렇게 국민을 위한 행동이라고 외쳤던 철도파업은 왜 꼬리를 내렸을까. 철도민영화 프레임이 먹혀들지 않았던 게 조직 내부의 철밥통 의식이 들통났기 때문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의료파업은 또 어떤가. 의료민영화 반대를 들고 나섰는데 혼란스럽기만 하다. 우리나라 병·의원 대부분이 민영시설이라는 사실을 엘리트층인 의사들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그래서 의료수가 인상을 염두에 둔 실력행사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리베이트라는 숨은 관행 때문이라는 설도 파다하다. 제약회사로부터 뒷돈을 받아 수입을 맞췄는데 느닷없이 '쌍벌죄'가 등장하면서 돈줄이 막힐 밖에. 사정이 이러니 수가라도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거다. 그렇다면 진작에 정공법을 택했어야 옳지 않나.

최근 비리를 저지른 한국수력원자력 간부에 대해 법원이 검사가 구형한 8년에 무려 7년을 추가해 15년을 선고한 것은 숨어 있는 적들에 대한 준엄한 경고라 하겠다. 통제되지 않는 탐욕의 속성을 지닌 숨어 있는 적들은 숱하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단맛에 길들여져 중독된 그들에게 휘둘리는 순간 총체적 아노미에 빠진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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