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은 핵물리학만큼이나 위험하다고 한다. 역사가는 예기치 않게 정치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위안부 망언 등으로 촉발된 주변국과의 역사 갈등에 이어 국내판 문화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옹호하고 북한 정권을 비판하는 교과서는 허용돼선 안 된다는 세력에 교육계가 굴복하였다. 이른바 진보 성향 역사 교과서들은 이념 문제에 앞서 사실을 사실대로 기술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대한민국은 기적과 같은 성공의 역사이고 북한은 세계 최악의 실패 국가다. 이처럼 명백한 사실을 왜곡했다면 교과서로서 자격이 없다.

교학사 교과서는 다른 교과서와 달리 평균보다 많은 오류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진보 성향의 역사단체가 공격한 상당 부분은 그 자체가 오류이거나 악의적이었다. 교학사 교과서는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 검정을 통과했고, 몇몇 남은 오류도 인쇄 전까지 수정할 계획이었다. 교학사 교과서 집필진이 소속된 한국현대사학회는 지난 5일 성명을 내고 "전교조 등 좌파 진영이 전체주의적인 선동과 압박으로 학교의 자율적 선택권을 무력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교학사는 "위안부 할머니 관련 기술에서 표현이 잘못된 부분은 깊이 반성하고 바로잡을 것"이라면서 "우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 명단을 공개해 마녀사냥식으로 불채택 운동을 벌이는 단체에 대해선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교학사 외 7종의 교과서 그 어디에도 북한에 의해 자행된 천안함 폭침 사건, 아웅산 테러, KAL기 폭파사건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일부 좌편향 교과서에는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 이승만과 박정희는 친일파, 김일성은 독립투사라는 식으로 서술해 대한민국 건국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유엔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선언을 하고 있는데, 우리의 역사를 민족해방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북한은 식민지에서 해방된 완전한 자주국이고, 남한은 미국이 친일파와 친미주의자들을 모아서 만든 반식민지국가라고 보는 게 옳은가. 그러면 북한의 핵은 민족적 성취가 되는 것인가.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부당한 공격은 선택권을 짓밟았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교육부는 지난 8일 "20개 학교의 교과서 변경 과정을 이틀간 조사한 결과 일부 학교에서 시민단체나 교원단체의 항의 방문, 시위, 조직적인 항의 전화 등이 결정 번복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며 "학교 관계자들은 시민단체의 일방적인 매도로 인해 부담감을 느꼈으며 학교가 혼란스러워질까봐 교과서를 바꿨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자신과 관점이 다르다고 해서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 제로 운동'을 전개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민주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런 부당한 외압에 대해서는 법적 조치를 불사하는 적극적이고 단호한 대응이 절실하다고 본다.

현대사의 주역들이 서로 갈등하는 나라에서 검정 교과서가 좌편향으로 획일화되거나, 역사적 균형감이 없는 교사들이 국사를 가르친다면 국가의 미래는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칫 편향된 국사 교육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정체성 정립은커녕 최소한의 애국심, 자긍심 확립으로 이어지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 나아가 미래 목적과 하는 대화"라고 하였다. 일본의 우익 교과서나 중국의 동북공정을 보면 분명히 그렇다. 우리는 역사 교육을 통해 어떤 미래를 준비하는가. 우리는 지금 정치적으로 과잉 독재 후에 과잉 민주화, 경제적으로 과잉 성장 후에 과잉 복지, 사회문화적으로 과잉 획일화에서 과잉 다원화로 갈등을 겪고 있다.

교육부는 이미 금성사 국사 교과서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역사학자, 역사 교사들이 어떤 입장에 서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교학사 교과서의 사실관계 오류는 수정하면 되지만 역사관은 정확하다. 역사에는 정의가 있기 전에 진실이 있다. 정의는 "누구의 피, 고통, 감정인가"에 의해 버전이 달라질 수 있지만 진실은 '참'에 대한 존중심 하나로 모아진다. 우리는 에릭 홉스봄이 "역사학이 핵물리학만큼이나 위험하다. 모든 역사가는 예기치 않게 정치가가 되기 때문이다"라고 한 지적을 명심해야 한다.

부경대 국제지역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