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데스크시각] 집밥 먹을 권리를 되돌려 주자 /염창현

밀양 송전탑 등 시비 가리기 앞서 장기 농성자들 인간적 삶 보장을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4-01-01 20:19:19
  •  |  본지 30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10대 후반에 공부를 한답시고 고향 집을 떠났다. 혈기방장한 나이에다 어른이 다 됐다고 느꼈던 때라 부모님 품을 벗어나는 것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성적이 올라가지 않는 것을 빼면 나름 생활도 재미있었다. '자유란 이런 것인가'라는 식의 치기 어린 감탄도 많이 내뱉었다.

참, 한 가지 좋지 않는 것이 있기는 했다. 자취집 주인 가족의 저녁식사였다. 온 가족이 '호호하하' 떠들며 숟가락 놀리는 소리를 자취방에서 혼자 앉아 듣는다는 것은 거의 고문수준이었다. 다 컸다고는 하지만 막내로 지내다가 막 집을 떠난 10대 소년이었던 까닭이다. 그때부터 '집밥 먹는 즐거움'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의 의미를 새겼는지도 모르겠다.

2014년이 시작됐다. 모두가 적어도 한 가지 희망은 품었을 터다. 작심삼일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꿈을 갖는다는 것은 인간만의 특권이다. 대개는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고 가정이 화목하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새해가 밝아도 가족 곁으로 돌아가기 힘든 사람들이 많다. 일이 바빠서 그렇다면 위안이나 될 수 있을 법하다. 그러나 경남 밀양이나 창원, 진주 등에서는 다른 이유로 한데에서 찬바람을 맞는 이들이 있다.

밀양 영남루 맞은편에는 지난해 12월 2일 음독한 뒤 나흘 만에 숨진 유한숙(71) 씨의 분향소가 있다. 이곳에서는 한국전력의 밀양지역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10여 명의 주민들이 농성을 하는 중이다. 오늘로써 25일째다. 노인이 대부분인 이들은 농성장 바닥에 깐 전기장판에 의지하며 한겨울의 삭풍을 견뎌낸다. 비닐 천막 안에 신문지를 넣은 종이상자를 겹겹이 쌓아두었다지만 외풍을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밀양시가 철거를 위한 행정 대집행을 예고한 상태인 데다 한전도 공사 강행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어 이들의 싸움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는 한 남자가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진주의료원 지부장인 박석용(45) 씨다. 그는 폐업이 확정된 진주의료원의 재개원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4월 경남도청의 고공 통신탑에 기습적으로 올라 진주의료원 폐업 철회를 요구했던 그는 100일 넘게 경남도청 앞에서 노숙 중이다. 초가을이었던 9월에 시작한 농성이 어느새 해를 넘겼다. 그는 고혈압과 당뇨 등을 앓고 있지만 진주의료원 재개원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농성장을 비우지 않겠다는 각오를 여러 차례 밝혔다. 진주의 의료원 본관에서도 노조원들이 재개원 투쟁을 1년 가까이 벌이고 있다.

지금와서 새삼스럽게 송전탑 건설의 당위성 여부와 진주의료원 폐업이 정당했는가 등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사안을 바라보는 눈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누구의 손을 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들이 하루빨리 가족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새해에는 정치권이나 당국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밀양 송전탑 사태나 진주의료원 폐업 등에 관한 것은 도민 개개인이나 시민단체 등의 힘으로 해결될 것이 아니다. 국책사업이라 혹은 도정에서 꼭 필요하기 때문에 더 양보가 힘들다면 대안을 찾아야 한다. 밀양에서는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들이 사회적 공론화 기구 구성 등을 주장하고 있다. 진주의료원에 대해서는 국회가 지난해 9월 재개원 방안을 마련해보라는 취지의 '공공의료 국정조사 결과 보고서'를 채택한 바 있다. 이는 달리 말해 타협의 여지가 여전히 존재하며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다는 말과 맥을 같이한다.

독자들이 현학적이라고 손가락질 할지 모르나 최근 책에서 읽은 노자 도덕경의 '척제현람(滌除玄覽)'이란 구절을 인용해본다. '(스스로)섬돌을 닦고 어두운 곳을 살핀다'라는 뜻인데, 위정자가 이렇게 백성들을 대해야 한다는 은유적 의미라고 한다. 송전탑 사태 등에 빗대자면 농성장의 노인들이 집에서 편하게 밥 먹고 쉴 수 있도록 해달라는 말이 될 수도 있겠다. 행복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잖는가.

사회2부장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강서·기장 인구 늘어 ‘행복한 고민’
  2. 2내달 예정됐던 사송신도시 준공, 2023년 12월로 연기
  3. 3오거돈 임명 6대 공기업 수장 중 첫 사의…남은 5인 거취 촉각
  4. 4롯데 새 감독 래리 서튼은 누구?
  5. 5[단독]부산 사하구 병원에서 20대에 금지된 AZ 접종해 논란
  6. 6[단독]아스트라제네카 접종 부산 경찰, 시력저하 호소하며 입원
  7. 7부산 확진자 한달 새 절반 ‘뚝’…평일 점심 5인 이상 허용되나
  8. 820대 남성, 킥보드 타고 광안대교 올라가 뛰어내려
  9. 9AZ 기피 늘어도…‘노쇼백신’ 일부 병원 대기자만 100명
  10. 10신항 물동량 장기계약…새 부두 일감 비상
  1. 1홍준표 복당 선언에…국힘 PK 초선들 찬반 팽팽
  2. 2취임 4주년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33.9%
  3. 3국힘 당권 레이스, 불 붙은 혁신경쟁
  4. 4문재인 대통령 "흠결 무안주기식 청문회" 장관후보 3인 임명강행 의지
  5. 5부산 여야정 상생협의체 구축 합의…초당적 협치 가속화
  6. 6문재인 대통령 “이재용 사면, 국민공감대 고려해 판단”…지역은 또 패싱
  7. 7부산부동산특위서 빠진 공무원 “박형준 의도적 교체” 공개 반발
  8. 8이한동 전 총리 별세…여야 조문 행렬
  9. 9영남 잠룡들 기지개…대선 판 움직일까
  10. 10문재인 대통령 10일 특별연설…코로나 경제 청사진 언급 전망
  1. 1오거돈 임명 6대 공기업 수장 중 첫 사의…남은 5인 거취 촉각
  2. 2신항 물동량 장기계약…새 부두 일감 비상
  3. 3“헉! 문자 잘못 보냈다”…이제 발송 취소돼요
  4. 4오리엔트조선 인수 우선협상자에 우성마린엔지니어링
  5. 5LH 임직원들, 경남혁신도시서 690억 시세차익 챙겼다
  6. 6가덕도 사전타당성 용역 입찰, 다시 유찰
  7. 7[경제 포커스] 남부발전 20년만의 캐릭터, 부산대 학생이 선물
  8. 8공정위 ‘해운사 가격담합’ 제재 착수
  9. 9말 바꾼 해수부, 북항 감사 이번주에도 계속 진행
  10. 10부산 출신 원영섭 전 미래통합당 조직부총장, 국민의힘 최고위원 도전
  1. 1강서·기장 인구 늘어 ‘행복한 고민’
  2. 2내달 예정됐던 사송신도시 준공, 2023년 12월로 연기
  3. 3[단독]부산 사하구 병원에서 20대에 금지된 AZ 접종해 논란
  4. 4부산 확진자 한달 새 절반 ‘뚝’…평일 점심 5인 이상 허용되나
  5. 520대 남성, 킥보드 타고 광안대교 올라가 뛰어내려
  6. 6AZ 기피 늘어도…‘노쇼백신’ 일부 병원 대기자만 100명
  7. 7박형준 시장, 산학협력·대기업 유치 등 경제 활성화 올인
  8. 8부산도 택배갑질 터질라…신축아파트 주차장 높이 갈등
  9. 9공유 킥보드는 안전모 단속, 공유 전기자전거는 괜찮다?
  10. 10부산 코로나19 신규 확진 이틀째 10명대, 부산대 산발적 감염
  1. 1롯데 새 감독 래리 서튼은 누구?
  2. 2롯데, 허문회 감독 경질...후임 래리 서튼 감독
  3. 3“최강은 나야 나”…‘고교 월드컵’ 16일 개막
  4. 4절치부심한 거인, SSG ‘쓱’ 누른다
  5. 5류현진 13일 ‘투타 활약’ 기대하시라
  6. 6부산 아이파크 황준호, K리그2 11라운드 MVP… 부산은 ‘베스트 팀’
  7. 7‘약속의 땅’서 부활한 매킬로이…18개월 만에 정상
  8. 8[뭐라노]10년간 6명…리더십의 무덤
  9. 9롯데 자이언츠, SSG 맞아 뒷심 부족으로 역전패
  10. 10선두와 막상막하…봄잠 깬 거인 달라졌네
우리은행
국민의힘 대표 후보 인터뷰
김웅
국민의힘 대표 후보 인터뷰
조해진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한 도시의 리더가 된다는 것
‘융합의 시대’를 진정으로 지향하려면
기고 [전체보기]
글로벌 마이스 도시 부산을 꿈꾸며 /오흥철
한국 해운, 재건을 넘어 부활로 /김형준
기명칼럼 [전체보기]
기본소득 포퓰리즘, 가짜와 짝퉁의 대결
수에즈 단상
기자수첩 [전체보기]
부산 자치경찰위원회 사무국장도 경찰 출신…취지 역행 우려 /박호걸
체계적인 ‘동백전 행정’ 쫌! /김진룡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한국피리, 서양피리를 만나다
한국음악의 떼루아를 찾아서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2+1 책임제’ 족쇄로 안 남으려면 /유정환
‘신산업 도시 부산’의 필요조건 /이석주
도청도설 [전체보기]
미얀마의 봄
미·EU 백신 갈등
독자의 소리 [전체보기]
우리에게 외교 전략이 있는가 /허만
불법 주·정차 단속 애환 /박정도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음식은 움직이는 거 아닙니다
한국식 돈가스의 탄생
사설 [전체보기]
취임 한 달 박 시장, 이제부턴 과감한 실행력 보여야
지역 소상공인 오픈마켓 지원, 성공적 정착 기대한다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최고의 기쁜 날
퇴폐미술의 낙인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시험대 오른 박형준표 협치
재보선 민심 받들겠다더니
정책 제언 [전체보기]
코로나19는 사람을 차별했다 /박민성
목전에 다가온 메가시티 실현 /강병중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오월의 노래
봄날의 상념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 콘텐츠가 필요하다
와인어게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공공콘텐츠 없인 북항 성공 없다 /서의택
민주화·민족자존에 바친 삶, 편히 쉬소서 /허운영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나비 그림의 명인, 남계우
김정희의 ‘세한도’ 열풍
  • 해양컨퍼런스
  • 생명의강 낙동강 수필공모전
  • 유콘서트
  • 18기 국제아카데미 모집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