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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부정선거론 vs 대선불복론 /강동수

정권의 돌직구에 서서히 결집되는 저항의 에너지

틀어막지만 말고 김 빠질 구멍 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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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대통령 사퇴' 요구까지 나왔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에서 나온 소리다. 대통령더러 사퇴하란 소리에 국민 다수가 쉽게 동의하진 않을 거다. 사제단이 정치 발언만 일삼는다고 혀를 차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게다. 그래도 이런 발언까지 나왔다는 사실 자체는 예사로 넘길 게 아니다. 다르게 말하면 정권에 대한 저항의 에너지가 쌓여가고 있는 것을 집권세력이 주시해야 한다는 거다.

집권세력이 야권과 진보진영에 '돌직구'를 날리기 시작한 건 지난 6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으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이 기소됐을 무렵이다. 채동욱 검찰총장과 윤석열 수사팀장이 공작성 흠집내기로 찍혀나갔다. 'RO사건'을 고리삼은 진보당에 대한 전면 공세는 헌정 초유의 정당해산 청구로까지 이어졌다. 전교조와 전공노에 대한 선제 공격도 빠트리지 않았다. 법대로 하겠다는 명분이야 내세웠지만 치밀하게 기획된 반대세력 제압책이란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정권의 주요 포스트도 우파 인사 일색이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이 포용책을 펼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이 많았다. 선거 때는 지지세력 규합에 골몰하지만 이기고 나면 시늉이나마 '화합의 정치'를 표방하는 게 역대 정권의 정치적 제스처였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까지의 상황은 딴판이다. 박 대통령은 그 흔한 화합이니, 대통합이니 하는 레토릭도 거의 입에 담지 않았다. 정치적 반대세력을 압박하는 데만 열중해 왔을 뿐이다.

정국이 이렇게까지 꼬인 데는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이 큰 원인이었을 터다. 조직적 불법 개입을 시인하는 순간 박 정권의 정통성은 흔들리게 돼 있다. 박근혜·문재인 후보의 표차는 108만 표였다. 적잖은 표차이지만 산술적으로 따져 만약 박 후보에게 갔던 55만 표가 문 후보에게 갔다면 어땠을까. 122만 건의 댓글과 리트윗이라면 엄청난 숫자다. 더 큰 문제는 선거 사흘 전 경찰이 "국정원 대선 개입은 없었다"는 취지로 야당 공세를 흑색선전으로 몰아갔고 그게 신문과 방송을 시커멓게 장식했던 것. 표의 흐름을 계량할 수야 없지만 표심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은 건 아닐 거다.

국정원과 군의 대선 개입을 시인하면 '부정선거'란 소리가 튀어나올 테고, 아니라고 하면 끝없는 정치 공세에 휘말릴 테니 박 정권의 처지가 딱하긴 하다. 그러니 대통령도 "난 국정원의 도움을 받은 게 없다"는 입장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 하잖은가. 대신 선택한 게 '겁주기 정치'다. 까불면 야당이건, 검찰이건, 노조건 날려버리겠다는 위협 신호를 발신하는 거다. 불법 댓글 의혹을 제기하기만 하면 '대선 불복'이라고 으름짱 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별로 성공적인 것 같지 않다는 데 있다.

"대선 불복이 아니냐"고 꾸짖으려면 제 밑이 깨끗해야 한다. 122만 건의 불법 댓글이란 냄새나는 사추리를 드러내 놓고 눈을 부라린들 냉소만 받기 십상이다. 전교조나 전공노를 거리로 쫓아낸다면 그 사람들은 어디 가만 있겠나. 더 격렬한 저항에 나설 게다. '대통령 사퇴'란 소리에 혀를 찰 국민이 물론 많을 것이다. 중요한 건 그런 소리가 나올 만큼 서서히 저항의 에너지가 결집되고 있다는 조짐 아닌가.

지금 박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두 가지다. 하나는 힘들고 거추장스럽더라도 화합의 통로를 찾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지금 해온 대로 전통적 보수층에 기대 강공책을 계속하는 것. 후자가 훨씬 손쉬워서 그 길에 대한 유혹이 클 거다. 하지만 나중에 혹독한 대가를 치를 수도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압력솥도 꼭꼭 틀어막기만 하고 김 빠질 구멍을 내주지 않으면 폭발하게 돼 있다.

태풍도 적도의 열기가 바닷물을 달궈 조금씩 수증기로 바꾸어 세력을 확장하지 않나. 저항의 에너지가 태풍이 되기 전에 열을 식혀야 한다. 대통령은 우선 국가기관의 불법 대선 개입에 사과를 표명하는 게 옳다. 극우로 향한 정권의 나침반을 중도로 돌려놓을 필요도 있다. 인사를 포함해 포괄적인 국정 쇄신책도 찾아야 한다. 5년 임기 중 가장 힘이 있다는 1년 동안 대선 뒷처리로 이렇게 시끄러운데 남은 4년은 무얼 할 작정인가. 야당도 대통령의 사과 표명이 있으면 더는 대선 문제를 물고 늘어지지 말고 도울 건 도와야 한다. 도무지 이래서야 나라가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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