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태 파괴 따져야

"4대강 사업을 하지 않았으면 대한민국 전체가 물난리가 났을 것." 지난 주말 태국을 방문했던 이명박 대통령 발언이다. 이 대통령은 그곳의 운하를 시찰하던 중 "한국도 한두 달 새 3번이나 태풍을 맞았다"면서 "100년 만에 관측된 최악의 폭우, 과거보다 3배나 많이 왔지만 소화했다"며 4대강 사업의 성과를 자랑했다. 최근 들어 4대강에 어른거리는 재앙의 조짐을 염려하는 국민들에게는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솔직히 이 대통령의 발언 내용에 대해 사실관계를 따져볼 생각은 추호도 없다. 평소 그의 4대강 사업과 관련한 발언이 사업에 대한 맹목적 집착과 과신, 일방적 미화로 일관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4대강 사업의 후유증은 곳곳에서 불거지고, 그 정도 또한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4대강 사업이 총체적으로 실패한 토건사업의 전형으로 이 정부 최악의 실정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4대강 띄우기에 여념이 없다. 마치 4대강의 '억지 신화'를 보는 듯해 입맛이 쓰다.

이 정부는 지난 2008년 한반도대운하 사업이 국민적 반대에 부딪히자 4대강 사업으로 방향을 틀면서 수질개선과 치수, 일자리 창출 등 사업효과를 내세웠다. 하지만 그렇게 강조했던 사업효과가 제대로 실현됐는지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다. 지난달 중순 KBS가 보여 준 4대강의 현장은 처참했다. 인공적으로 자연을 훼손한 결과가 어떤지, 졸속으로 밀어붙인 토목사업이 어떤 후유증을 가져왔는지 여실히 보여 줬다. 태풍 한 번에 쓸려가거나 펄밭이 된 수변공원, 보석 같았던 습지가 사라진 황폐한 유역, 역행침식이 일어난 전장터 같은 지천의 모습을 보면서 장차 다가올 '강의 역습'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계 곳곳에 댐을 세워 거대한 수조로 바뀐 4대강은 강으로서 기능을 상실했다. 정부는 물을 가둬 수질을 개선한다고 큰소리쳤지만 이미 지난여름 낙동강과 한강에서 일어난 녹조의 창궐은 흐르지 않는 물은 죽은 강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걸 경고했다. 지난달 말에는 금강과 낙동강에서 수만 마리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다. 정확한 원인을 아직 밝혀내지 못했지만 용존산소가 급격하게 떨어진 결과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 조사에서도 4대강 사업 이후 COD는 전보다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치수 측면에서도 그다지 기대되지 않는다. 홍수와 가뭄에 대비한 보와 둑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물 흐름을 막으면서 도처에 문제를 드러냈다. 세굴현상과 침식현상에 보의 안전성까지 논란이 됐다. 직강화하고 홍수에 완충역할을 하던 수변습지를 마구잡이로 파괴한 결과 오히려 홍수를 부추기는 현상까지 부른 것이다. 지난 태풍 산바 때 평균 100㎜에도 못 미치는 비에 낙동강 유역이 물난리를 겪었다. 습지와 초지를 밀어내고 만든 수변공원 등 시설물도 물에 잠겼다. 황폐한 수변시설을 복구하고 관리하는 데도 해마다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게 됐다.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던 것도 다 허세에 불과했다. 일자리 창출효과는 거의 없었고 결국은 토건재벌들의 배를 불리는 데 그쳤다. 특히 4대강 사업에 참여한 대기업들이 담합 등 비리를 저지르면서 국민들의 부담만 늘게 됐다. 정부 당국이 담합 사실을 수십 개월이나 쉬쉬하고 청와대가 개입해 처벌 수위를 낮추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국토를 망치며 재벌의 배나 불렸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정부 대신 사업을 맡은 수자원공사는 수십 조를 덤터기 쓰고 빚더미에 앉게 됐고, 그를 해결하기 위한 무분별한 수변개발의 악순환이 기다리고 있다.

대선 후보들이 4대강 사업에 대해 비판하고 나섰다. 안철수 후보는 4대강 공사를 즉각중단하고 댐 철거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문재인 후보도 대규모 토목공사의 대표적 폐해로 꼽았다. 4대강 사업은 이 정부가 아무리 자화자찬 하더라도 실패한 토목사업의 대표적 사례로 남을 공산이 커졌다. 자전거길 하나 내자고 수십조 원의 예산을 들이고 강의 문화와 역사, 생태를 파괴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강정보에 세워진 4대강 공적기념비가 자칫 강을 망친 것을 경계하는 불망비가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