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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동화가 그립다 /배유안

해피엔딩을 꿈꾸며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잘 사는 그런 세상을 꿈꾼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09-28 18:47:01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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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해피엔딩이 좋다. 소설이든 영화든 가슴 쓸어내리고 마음이 푹 놓이는 마무리가 좋다. 그건 일종의 심리적 신뢰 회복이다. '좋게, 잘 될 거야'에 대한 믿음을 안고 의자에서 일어나거나 책을 덮는다. 그 마무리 지점에서 다시 삶이 계속된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 든든한 일인가? 그래서 현실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사건들에서도 나는 늘 해피엔딩을 꿈꾼다. 놀랍고 충격적인 일들이 잘 해결되기를, 이를 통해 더 나아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강연차 제주도에 간 김에 탈도시하고 제주도에 둥지를 튼 지인들과 만났다. 그네들이 말타기 레슨을 받는 두 시간 동안 혼자 가까운 오름에 오르거나 올레길을 걸으며 가을빛이 시작된 제주의 풍광을 가슴에 안고 싶었으나 선뜻 용기가 나지 않고 지인들도 말렸다. 넓은 채소밭이 아름다운 곳에서 위험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려야 하다니. 튼실한 말의 허벅지와 날렵한 발놀림에 목을 빼고 감탄하면서도 그 동안 혼자 조용히 걸으며 얻었던 유익과 즐겨 누렸던 호사를 잃은 기분은 씁쓸했다. 풀꽃들이 자라는 흙길을 걷는 동안 얼마나 자주 막혔던 가슴이 뚫리고, 나아가지 못하던 글의 실마리가 떠올랐던가? 누군가의 만행이 몇 명의 비극에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사람에 대한 신뢰를 이렇게 망가뜨리는구나 싶어 우울했다. 한 개인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거쳐 지나온 사회적 문제, 정서적 문제 같은 것들에 대해 어쭙잖은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강연 중 남자 중학생이 물었다. "학벌과 돈이 전부인 세상, 노력해도 안 되는 세상인데 우리가 꿈을 가진다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열서너 살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왜 그렇게 확신하느냐? 그렇지 않다'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긴 했으나 도대체 누가, 어느 어른이 아이에게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저 따위 믿음을 주었는지 분통이 터졌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아이들은 정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어른이 되어서는? 지구를 구하고 인류의 행복을 운운할, 충분히 허황해도 좋을 나이에 절망부터 심어준 어른이 도대체 누구인가?

추석 연휴 끝나고 바로 시험인 학교가 여전히 있다. 그래서 젊은 학부모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도 아이를 안 데려 가거나 엄마까지 안 가는 일이 허다하다고 한다. 학교가 교육을 하는 곳이 맞는가? 무엇이 교육인가? 명절 때에 일가친척, 사촌들과 함께 만나 함께 먹고 장난치며 실컷 노는 것, 버릇없다며 할아버지한테 야단도 맞는 것, 할머니한테서 아빠의 철딱서니 없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 것, 이런 것들이 얼마나 좋은 위로이고 교육일까? 학교에서 초등학생들에게 그림책 읽어주기를 하고 있는 어른들을 만났다. 이분들한테서 아이들의 마음이 다독여지기를, 그래서 꿈을 꾸며 행복하게 어른이 되어가기를 기대해 본다.

대선을 앞두고 복지란 말이 요즘처럼 자주 들리는 때도 없다. 복지가 뭔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가만있어도 쌀을 주고 약을 주고, 지하철 공짜로 타게 해주는 게 복지는 아닐 것이다. 어린 아이가 골목에서 놀아도 안심이 되는 세상, 이웃집 아저씨하고도 가까이 하지 말라고 가르치지 않는 세상, 부정과 뇌물 사건이 덜 들리는 세상, 그래서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라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게 복지가 아닐까 싶다. 연일 터지는 사건들이 부디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아 거기서 우리의 삶이 계속될 수 있으면 좋겠다.

정한모 시인이 '가을에' 올린 기도를 나도 올려야 할 것 같다.

'우리들의 반짝이는 미소로도/ 이 커다란 세계를/ 넉넉히 떠받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해 주십시오. (…) 몇 번이고 까무러쳤던/ 그런 공포의 기억이 진리라는/ 이 무서운 진리로부터/ 우리들의 이 소중한 꿈을/ 꼭 안아 지키게 해주십시오.'

그러잖아도 왜곡된 현실을 더 왜곡하여 몰고 가는 이 시대에 해피엔딩의 동화를 쓰는 것이 어울리는 일인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욱 동화가 아쉽다는 생각에 나는 그야말로 해피엔딩을 위한 동화를 쓰고 싶다. 이 가을에 정말이지 동화가 그립다.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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