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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죽음은 얼마나 가까이에 있을까? /배유안

빨리 다가올지 몰라 생의 끝 더듬어 보며 미적 거렸던 일상들, 과감히 저질러 본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10-21 19:41:50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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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죽음은 얼마나 가까이에 있을까? 아직은 머리로 생각되는 것이지,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마냥 옆의 일은 아닌 모양이다. 작년 건강검진 때에 갑상선에 작은 혹이 있다며 추이를 지켜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도 올해 검진을 하면서는 내심 걱정이 되었는데 그 혹이 꽤 커졌다는 연락이 따로 왔다. 안 좋은 조직일 가능성이 많으니 전문의에게 정밀 검사를 받으라는…. 잠시 아찔했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인터넷을 뒤져 최선의 경우와 최악의 경우를 챙겨 보면서 평정을 찾았다. 우선 마음에 들어오는 생각은 '하고 있는 일 중에 안 해도 되는 건 무엇이고 미뤄둔 일 중에서 꼭 하고 싶은 게 뭘까? 그저 희망만 가지고 있고 실행해볼 엄두도 못 내 본 것은 뭘까?' 하는 것들이었다. 삶이 영원할 거라고는 당연히 생각하지 않지만 그 삶의 끝을 생각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다가올지도 모를 '생의 끝' 앞에서 나는 꽤 정직해졌다. 질문의 답들이 제법 선명하게 드러나고, 아쉽지만 이번 생에서는 포기하는 게 좋겠다는 것들이 분별이 되었다. 아무 것도 아니면 가장 좋겠지만 주변에서 흔히 있는 일이 나만 비켜 갈 수는 없는 일이고 확률이 많은, 나쁜 종양의 경우도 치료가 비교적 쉽다니까 이참에 나와 내 몸을 더욱 사랑하며 사는 것으로 삶의 패턴을 바꾸자고 생각하자, 내 안에 눌러둔 적극성들이 슬슬 살아났다. 상담과 세포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2주일 동안, 결과에 상관없이 나는 미적거리던 몇 가지 것들을 추진했고 몇 가지 계획들을 앞당겼다. 어느 누구에게도 무한정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에게 뜻밖의 에너지를 주었다. 10년 후의 것을 3년 쯤 후에 하기로 수정했고,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하려 했던 것들을 당장 시작했고,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하려 했던 일들을 넉넉하지 않아도 진행하기로 했다. 소심한 마음에 망설이고 있던 것은 저지르는 쪽으로 단호하게 결정했다. 더러 무리수가 있는 것들도 하려고 하니 썩 불가능하지도 않았다. 예전이라면 좋은 게 좋지 하며 넘어갔을 일이지만 화나는 일에는 솔직하게 화를 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쉬운 것들을 그동안 왜 머뭇거렸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 삶의 양이 적어질지는 몰라도 질은 높아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과히 나쁘지 않았다. 속 모르는 주변에선 내가 이제 한가해졌나 보다, 혹은 돈이 좀 생겼나 보다 하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평소에 내가 글 핑계 대고 얼굴 잘 안 내보이는 걸 두고 '너, 그러다 자폐증 된다'며 걱정해 주던 친구는 다행이라고 했다.

잘 지냈어요? 라는 의사의 질문에 네, 하고 대답하자 의사는 빙긋 웃었다. 그동안 불안했죠? 별 거 아니네요. 그냥 물혹입니다. 밀쳐두고는 있었지만 불안은 컸던 모양이다. 그 한마디에 환희에 찬 걸 보면. 이제 건강을 챙기라는 충고에 헤벌쭉해서 집에 돌아오니 그동안 내가 행동으로, 서류로, 말로 저질러 놓았던 게 적지 않다는 자각이 먼저 왔다. 그러고는 웃음이 터졌다. 하던 일도 중지하고, 계획한 일도 취소해야 할 것을 나는 그 반대로 해놓았던 것이다. 머리로 따지고 견주고 온갖 것을 재어보느라 쉽게 결정하지 못하던 것들이 척척 결정이 되어 있었고 그것도 다 'NO'가 아니라 'YES'쪽이었다. 참, 삶이란 이런 이벤트도 있구나 하고 즐거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덕분에 잠시 나는 내 삶의 끝을 더듬어 보았고, 지금은 아니지만 또 언제 턱하니 받아 안게 될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해본 좋은 시간이었다. 이제부터 살게 될 나의 삶, 나의 선택들이 보다 선명해졌다. 내 인생 전체의 시간은 모르겠지만 오늘 하루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뭔가를 하기에 충분히 넉넉했다. 그리고 소중했다. 생각 속에만 있거나 포장만 해놓고 우체국까지 못 간 책들이 다 제 갈 곳으로 갔고, 창고가 반은 정리되었고 약속들은 헛말이 되지 않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시놉시스들은 벽에 붙었다. '미루면 영영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아마 나는 사는 동안 종종 이번에 깨달은 것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좀 더 능동적으로 결정하고 실행하게 될 것이다. 참, 심하게 낙천적이라는 잔소리가 비웃음으로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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