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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강정마을에서의 하룻밤 /박남준

조용하던 바닷가 마을…이웃 반목케 한 '그'는 누굴까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6-10 20:46:11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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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도 부치지 않고 내게 깨알 같은 봄 편지를 쓰던 연둣빛들은 어느새 초록으로 푸르다. 마당 앞 꽃밭에도 봄날 꽃들이 진자리, 씨앗들이 다시 태어날 생명을 꿈꾸며 도란도란 익어가고 여름날의 꽃들 잔뜩 몸단장을 하며 방긋거리고 있다. 꽃과 나무들뿐이겠는가. 사람의 마을도 일손으로 저마다 바삐 움직인다. 아저씨들은 경운기를 통통 거리며 못자리 써레질을 하고 아낙들은 모판을 손질하랴, 허리 아픈 밭일을 하랴. 작년 겨울 긴 추위로 얼어 죽은 차나무를 베어내거나 뒤늦게 이제야 겨우겨우 올라온 찻잎을 따서 차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내가 찻잎을 따서 쓰는 야생 차밭도 절반 가까이 차나무들이 벌겋게 죽어버렸다. 곡우 전에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찻잎 한순 올라오지 않았다. 우전 차는커녕 곡우가 한참 지난 무렵에도 찻잎이 턱없이 부족해 녹차는 만들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지금은 한창 발효차를 만드느라 비지땀깨나 흘리고 있다. 찻잎을 따서 시들게 한다. 숨을 죽인 찻잎을 칼국수 반죽을 하듯 주물럭거리며 비빈다. 아궁이에 불을 땐 뜨거운 아랫목에서 산화 발효시킨다. 그 찻잎을 널어 말리고 항아리에 넣어 다시 마무리 발효과정을 거치는 중이다.

작년에는 찻잎을 따는 일손을 거들어준 친구들이 있어서 만든 양도 제법 되었다. 조금씩이지만 덖은 녹차와 발효차를 이런저런 인연들 고마움에 답하느라 나눠드렸는데 올해는 혼자 마시기에도 부족하지 않나 싶다.

"다시 남쪽으로 300리를 가면 경산이라는 곳이 나오는데 초목은 자라지 않으나 수벽이 많이 나며 큰 뱀이 많이 산다. 이곳의 어떤 짐승은 생김새가 여우같은데 지느러미가 있다. 이름을 주유라고 하며 울음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와 같다. 이것이 나타나면 그 나라에 두려운 일이 생긴다. 다시 남쪽으로 300리를 가면 노기산이라는 곳이 나오는데 초목이 자라지 않고 모래와 돌이 많다. 사수가 여기에서 나와 남쪽으로 잠수에 흘러드는데 그 속에 여호가 많다. 생김새는 원앙새와 같으나 사람 같은 발이 있고 울음소리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와 같다. 이것이 나타나면 나라에 토목공사가 많아진다."

중국의 고대 지리 풍물지 '산해경'이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허무맹랑하고 기괴한 생명체에 대한 이야기 같지만 그 생김이나 행동거지를 살펴보면 그것이 사람, 다시 말하면 그 지역을 좌지우지하는 정치 권력자의 모습을 풍자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여우에게는 미안한 비유지만 아침저녁으로 말을 바꾸는 간교함이나 아름다운 원앙의 겉모습이 개발과 토목공사를 벌이면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허울 좋은 사기꾼의 번지르르한 말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아무리 2000여년 전 세상이었다고는 해도 그런 생명체가 실제로 살았을 리 있겠는가. 그러고 보면 옛날 옛적에도, 오래지 않은 어제에도, 또한 오늘날에도 정치가들은 어쩌면 대부분 그 모습들과 행보가 그러한가.

얼마 전 제주도 강정마을에 갔다. 2004년 생명평화 탁발순례 때 가보았던 그 마을이 아니었다. 평화의 섬으로 선포되었던 그곳에 느닷없이 해군기지가 들어서려고 토지를 강제 매입하고 있었다. 안보 운운하며 마을 사람들을 서로 이간질하게 해 등 돌리게 만들고 있었다. 굴착기의 굉음소리와 곳곳에 높은 철제 가로막을 쳐서 삭막하게 변해 있었다. 물 맑은 강정천과 연산호 등 다양한 멸종위기 생물종들이 서식하고 있어서 유네스코가 생물권 보호지역으로 지정한 수려하고 조용하던 바닷가 마을이 을씨년스러워졌으며 정다운 이웃들이 얼굴을 붉히며 반목하고 있었다. 마을기금 마련 행사에 가서 시낭송과 노래를 부르며 얼마 되지 않지만 그 전날 받은 강의료를 몽땅 모금함에 넣고 왔다.

왜 이런 일이 자꾸 이 땅의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가. 누구의 잘못인가. 정치가와 토목건설업자들만 탓할 것인가. 우리들의 마음속에 혹 사리사욕이 깃들어 있어 대행자들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강정마을 길가에는 힘내시라고, 해군기지로부터 강정마을을 지키자고, 이 나라 곳곳 멀리서 가까이서 보내온 현수막들이 걸려 있다. 그 문구들 벗 삼아 파도소리 턱 밑까지 차오르는 강정바닷가 비좁은 텐트 안에서 하룻밤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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