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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희망의 공간 /전진성

해운대 해변, 난개발에 만신창이

부산시민들… 주권 되찾기 노력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5-03 21:41:23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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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해변에 108층짜리 초고층 '관광리조트'를 건설하는 사업이 지난 3월 말 부산시의 건축심의를 최종 통과한 이래 해운대 난개발에 대한 시민사회의 분노가 고조되고 있다. 도시생태와 미관에 대한 초보적 상식에도 위배되는 이 같은 일들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는 것에는 일차적으로 부산시의 책임이 크다. 민간사업자들이야 이윤추구를 위해선 달나라에도 골프장을 만들 사람들이라지만, 천혜의 해안에 서슴없이 고도제한을 해제해주고 주거시설도 허용하고 부지조성 공사비까지 부담해주는 시당국의 행태는 참으로 가관이다. 도시 서쪽의 강변은 4대강 공사로, 동쪽의 해변은 난개발로 인해 되돌릴 수 없이 파괴되어 가는데, 시당국은 현 정부 특유의 안하무인 수법, '그래, 나 원래 그런 놈이야' 식으로 밀어붙일 뿐 시민들이 수긍할 수 있는 해명은 아예 포기한 듯하다.

천박하고 탐욕스러운 일부 토건업자와 뒷배 불리는 데 급급한 공무원들의 부정한 손에 천혜의 항도 부산이 더 이상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기위해서는 시민들의 저항이 절실하다. 실로 부산시의 난개발, 특히 해운대 초고층 아파트 건립은 일반 시민들에게는 환경의 혜택을 누릴 민주적 권리의 상실은 물론 임대료 상승과 교통지옥, 그리고 무엇보다 도시발전에서 배제된다는 박탈감을 안겨줄 뿐이다. 이제 시민들은 이 천혜의 공간에 대한 자신의 주권을 되찾아야한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일반 시민들이 꿈꾸는 부산이 토건세력이 만들려는 부산과 근본적으로 다른가하는 점이다. 혹여 시민들 중 많은 수는 해운대 초고층 아파트에서 내 집 앞마당처럼 펼쳐진 바다를 내다보는 나른한 주말 오후를 꿈꾸고 있지 않은가? 나를 성나게 하는 것은 아파트의 존재가 아니라 내가 그곳에 입주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 아닐까?

개발과 성장의 논리는 어느덧 우리의 정신적 DNA에 각인되어있다. 우리는 더 이상 안온한 보금자리에 머물기를 원치 않는다. 하루 밤 사이에도 천지가 개벽할 듯 급변하는 세상을 따라 우리는 항상 더 나은 거주지, 교육환경, 직장을 찾아 여행자처럼 떠돈다. 여행자는 자신이 밟고 선 땅에 대해 별다른 애착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길목의 표지판을 통해 위치를 파악할 뿐이며 현지인들과의 사회적 유대를 갖지 못한 채 그저 눈앞을 지나치는 이미지들에 주목할 뿐이다. 이제 '어머니 같은 대지'는 고전소설 속에나 존재할 뿐이고 일상을 지배하는 것은 고속도로, 정류장, 쇼핑몰, 레저타운 같이 잠시 거쳐가는 곳들이다. 유적지나 박물관을 찾아가도 삶의 굳건한 뿌리를 발견하기는 힘들다. 과거의 흔적은 있지만, 일시적인 만족감을 제공하는 대가로 이윤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쇼윈도의 상품들과 하등 다를 바 없다. 그것은 우리에게 더 이상 집단의 정체성이나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공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우리는 근대 국민국가의 근본 토대의 하나가 영토 주권의 원리라고 배웠다. 하지만 일상의 현실에서 마주치는 공간들은 우리의 주권에는 아랑곳 없이 전혀 다른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여지며, 그마저도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순간순간 교체되고 명멸한다. 물론 공간의 끊임없는 '혁신'이 민주적 개방성을 보장하지는 않으며, 해운대의 사례가 보여주듯 오히려 이윤의 편중된 배분으로 인한 불균등 발전을 조장한다. 그리고 가정, 시민사회, 국가 등 전통적 공동체들이 해체일로를 맞게 된다. 우리는 바로 이런 곳에서 일하고 소비하며 살아간다. 과연 이곳에서 민주주의와 국민의 주권을 논하는 것이 합당한가? 일자리를 찾아, 거주지를 찾아 그저 잠시 머무는 이곳에서 우리는 어떤 대안적 공동체를 꿈꿀 수 있을까? 우리의 순수한 꿈은 토건세력이 조장하는 헛된 욕망으로부터 자유롭다고 감히 자신할 수 있는가?

아마도 시민들이 현실을 지배하는 힘의 논리를 전면 거부하고 세상에 없는 '유토피아'를 꿈꾸고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현실의 주어진 조건 속에서 그것을 안으로부터 와해시키려는 작은 노력들은 가능하다. 해운대에 가면 빌딩 숲 사이에 가린 재래식 가게들을 찾아 아이스크림 하나라도 사먹자. 그리고 그것을 입에 문 채 주변의 고층 빌딩들을 한번 날카롭게 째려보자. 내가 선 바로 이곳 말고 과연 어디에서 '희망의 공간'을 찾을 것인가?

부산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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