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인문학 칼럼] 철학책을 읽을 자유 /이택광

교육제도 덕분에 철학의 나라된 佛

인문학 가치 위해 한국도 제도화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3-30 20:34:22
  •  |   본지 27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철학자라는 말은 멋있게 들리지만 어원을 따져보면 그렇게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현실 논리에 근거해서 본다면 철학자는 오늘날 결코 환영받을 수 있는 인간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철학자라는 존재는 말 그대로 '지(智)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남녀관계도 그렇듯이 사랑이라는 것은 과잉의 상태이다. 지에 대한 과잉의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이란 누구겠는가. 한마디로 지적 행위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철학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배우는 것이었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곧 죽음에 대해 사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살아가는 일에 급급한 평범한 사람에게 철학은 쓸데없는 고민을 만들어내는 귀찮은 행위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앎에 대한 욕망에 빠지면 세속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남들이 좋은 차를 사거나 멋진 집을 사기 위해 고심할 때 철학자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에 골몰하면서 진리에 대해 알고자 한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값비싼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가디언'지의 질문에 슬로베니아 출신 철학자 지젝이 '헤겔 전집'이라고 대답한 것은 그래서 단순한 위악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돈으로 40만 원가량인 전집을 자신의 소유물 중에서 최고의 가치를 가진 것이라고 말하는 이런 '심리'를 짐작지 못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 누구나 쉽게 지젝과 같은 대답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얼마 전에 서평블로거 로쟈 이현우가 출간한 책은 '책을 읽을 자유'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모든 존재는 자유를 갈망하지만 이현우에게 그 자유는 무엇보다도 '책을 읽을 자유'인 것이다. 이 의미심장한 '자기주장'을 한국 사회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영국 유학 시절 소속 학과사무실 게시판에 유명 출판사의 채용공고가 자주 붙곤 했는데 지원자격에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인상 깊은 지원자격이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었다. 컴퓨터회사라면 당연히 컴퓨터를 잘 다루는 사람에게 취업의 기회를 줄 것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런 자격규정은 사실 있으나마나한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이렇게 자격요건을 밝혀 놓은 까닭은 그만큼 '책을 읽는 것'이 의미 있는 자질이자 능력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책을 읽을 자유'는 그렇게 쉽사리 허락되지 않는다. 그만큼 경제적 여유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직장인들은 업무에 쫓겨서 어렵고, 학생들은 그 못지않게 스펙 쌓는 일에 바빠서 못한다. 이런 사정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책을 읽는다는 것이 '업무'나 '스펙'과 관계없는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철학'이라는 지를 사랑하는 특이한 행위를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철학과를 가겠다는 자식을 말리지 않을 부모가 과연 한국 사회에 얼마나 있을지 의문인 것이다.

철학의 도시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파리에 가면 고등학생들이 두꺼운 철학책을 읽고 있는 광경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카페나 공원에서 철학과 관련한 토론이 벌어지는 일도 아주 흔하다. 이런 프랑스의 지적 풍토를 부러워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사실 이렇게 프랑스가 독일을 제치고 철학의 나라로 거듭 난 것은 고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필수적으로 철학을 이수해야하는 교육제도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말은 프랑스에서 의무교육을 정상적으로 받은 사람이라면 철학에 대한 기초지식 정도는 모두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한국에서 최근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도 프랑스처럼 제도적 뒷받침과 결합한다면 일시적 유행으로 그치진 않을 것이다. 물론 한국 사회의 구성원 대다수가 인문학을 자신의 삶에서 값어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실정에 맞는 제도화가 가능할 수 있겠다. 지에 대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구제'해준다는 시혜적 대책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윤리적 문제를 구성하는 중요한 철학적 화두로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물음을 각자의 삶에 하나씩 품을 수 있는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이런 제도화도 뜬금없는 소리는 아닐 것이다. 이런 까닭에 '철학책'을 읽을 자유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사회의 문제에 가까운 것이다.

경희대 영문학과 교수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재개발 대어 ‘광안3’ 삼성물산이 꿰찼다
  2. 2[부산 법조 경찰 24시] ‘최장수 부산청장’ 우철문, 차기 경찰청장 기대감
  3. 3가덕도신공항 여객터미널 설계안 ‘라이징 윙스’ 선정(종합)
  4. 4정현수 사사구 남발…선발투수 데뷔전서 조기 강판
  5. 5부산 유엔평화센터 건립 본격화
  6. 6첫 장맛비 40㎜에 부산 옹벽 와르르, 가로수도 우지끈(종합)
  7. 7檢, 일동서 돈 받은 혐의 前 양산시 공무원에 징역 3년 구형
  8. 8나이 잊게한 손맛과 성취감…20만 어르신 파크골프 ‘홀인’
  9. 9월성4호기 저장수 2.3t 바다 누설…원안위 “인근 해수 세슘 검출 안돼”(종합)
  10. 10‘산은 부산행’ 우군 늘었다…개혁신당도 법 개정 공조(종합)
  1. 1여야 원 구성 또 결렬…與 7개 상임위 수용여부 24일 결정
  2. 2대대적 물갈이 예고…부산시의회 인기 상임위 경쟁 치열
  3. 3음주보다 벌금 낮은 마약·약물 운전…與 김도읍 처벌 강화 법안 대표발의
  4. 4결심 굳힌 이재명…‘또대명’ 명분이 고민
  5. 5與 “협상 중단”…野 “더는 못 미뤄” 25일 본회의 강행 예고
  6. 6한 “수평적 당정” 나 “당정 균형” 원 “尹과 원팀” 출마 일성
  7. 7‘채상병 특검법’ 野 내달초 본회의 처리 방침(종합)
  8. 8[단독]나경원, 당권주자 중 처음 부산 당심 공략
  9. 9국민의힘, 정무위 등 7개 상임위원장 수용…원 구성 마무리 수순
  10. 10"4년 중임제 개헌, 지금이 적기"…우원식, 尹 대통령에 결단 촉구
  1. 1재개발 대어 ‘광안3’ 삼성물산이 꿰찼다
  2. 2가덕도신공항 여객터미널 설계안 ‘라이징 윙스’ 선정(종합)
  3. 3월성4호기 저장수 2.3t 바다 누설…원안위 “인근 해수 세슘 검출 안돼”(종합)
  4. 4‘산은 부산행’ 우군 늘었다…개혁신당도 법 개정 공조(종합)
  5. 5내달 2일 ‘블랑써밋74’ 1순위 청약…998세대 본격 분양
  6. 6김형균 부산TP 원장, ‘2+1 임기’ 뒤 첫 연임
  7. 7CES 부산통합관, 내년 덩치 키운다
  8. 8세계 60개국 3000명 우주과학자들, 내달 부산 모인다
  9. 9MZ 입맛 잡은 롯데칠성 ‘크러시’
  10. 10“김산업 고도화 정부의 더 많은 지원 필요”
  1. 1[부산 법조 경찰 24시] ‘최장수 부산청장’ 우철문, 차기 경찰청장 기대감
  2. 2부산 유엔평화센터 건립 본격화
  3. 3첫 장맛비 40㎜에 부산 옹벽 와르르, 가로수도 우지끈(종합)
  4. 4檢, 일동서 돈 받은 혐의 前 양산시 공무원에 징역 3년 구형
  5. 5나이 잊게한 손맛과 성취감…20만 어르신 파크골프 ‘홀인’
  6. 6“결혼하면 전세금까지 쏩니다” 중매 팔 걷은 사하구 파격제안
  7. 7[속보]"화성 아리셀 화재 현장에서 시신 20여구 발견"
  8. 8다문화가정도 저출산…미취학아동 감소 전망
  9. 9전세사기범 126명 신상 공개…평균 19억 떼먹어
  10. 10업주, 기계 끼어 숨진 직원 안전 소홀 책임…2심도 집행유예 2년
  1. 1정현수 사사구 남발…선발투수 데뷔전서 조기 강판
  2. 2호날두 골 대신 골배달, 대회 통산 8도움
  3. 3김하성 10호 홈런…3연속 두자릿수 포
  4. 4부산시장배 세계합기도선수권 성황
  5. 5김민규 2년 만에 한국오픈 정상 탈환…박현경 4차 연장서 윤이나 꺾고 우승
  6. 6롯데 지시완 최설우 김서진 전격 방출 통보
  7. 7김태형 감독의 승부수…“선발투수 한명 불펜 기용”
  8. 8태권도 큰 별 박수남 별세, 향년 77세…유럽서 활동
  9. 9전차군단 독일 헝가리 꺾고 16강 선착
  10. 10BNK 이소희·안혜지 농구대표팀 승선
우리은행
후보가 후보에게 묻는다
부산 서동
4·10 총선 지역 핫이슈
원도심 숙원 고도제한
강동묵의 디톡스 [전체보기]
노동자 건강을 위한 국제사회의 경향
소규모사업장 중처법, 투약 중단이 필요한가?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더 많이 두들겨 보아야 할 산복도로라는 돌다리
옛 부산세관 복원, 진정한 새로운 전통이 되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연대(連帶)의 중요성과 과학자의 역할
준설, 유일한 치수대책은 아니다
국제칼럼 [전체보기]
길 들이기와 길 들지 않기
‘3요’와 칸 레드카펫을 빛낸 조연들
기고 [전체보기]
‘남북호’, 부산항의 헤리티지와 원양산업 미래
갑진년 김해시의 ‘값진 주민과의 대화’
기자수첩 [전체보기]
영화에 대한 열렬한 환호와 예우…‘축제의 궁전’ 품격이 달랐다
영화의전당 대표 연임…소통 외치는 현장에 귀 기울여야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아직 명당 덕을 덜 본 것일까?
노무현이 옳았다
김용석의 시사탐방 [전체보기]
신문은 살아 있고, 칼럼은 말을 건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공존과 양립으로서의 국악 컬래버
디아스포라의 노래 영천아리랑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천덕꾸러기’ 북항재개발 이대로는 안된다
소통을 이기는 무기는 없다
데스크시각 [전체보기]
가덕신공항과 박형준의 정치적 미래
도청도설 [전체보기]
노줌마존
‘디지털 치료 허브’ 부산
메디칼럼 [전체보기]
일하는 사람의 1차 의료, 근로자 건강진단
100세시대의 건강관리법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대만과 밀크피시
조식전쟁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뇌력(腦力)을 키우는 다섯 가지 비결
뇌, 팩트 체크!
사설 [전체보기]
가덕도신공항 딴지걸 일 없도록 차근차근 추진을
산복도로 빈집 6000채 도시재생 새 모델 될 수 있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다시 아날로그의 세계를 생각한다
포위된 정치, 제22대 국회에 대한 기대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건강주치의 제도가 의료 개혁의 핵심인 이유
의대 입학정원 갈등의 올바른 해법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회의 바다, 우리네 함장은 어디로 키를 잡을까
부산항, 글로벌 물류 허브 플러스 알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푸틴의 행보와 러시아 경제
경제문제가 풀려야 인구문제가 풀린다
인문학 칼럼 [전체보기]
인문 정신은 언제나 곡선으로 간다
호모 사피엔스의 바다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나만의 생각’을 길러주려면
한국교육의 새 지평을 여는 IB교육학회 창립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건강과 재물을 얻는 명당아파트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당원 중심주의’의 함정
비례대표 제도는 죄가 없다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오페라 와인
와인이란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바로크 음악
낭만오페라의 종언! 푸치니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꽃피는 부산항’에서
처음 보는 ‘무릉도원’
CEO 칼럼 [전체보기]
가덕도신공항 경제권
우리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
  • 유콘서트
  • 국제크루즈아카데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