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데스크시각] 길 죽이는 걷기, 길 살리는 걷기 /장재건

지리산 둘레길 등 과도한 열풍에 몸살, 신발끈 동여매며 자신의 걸음 살펴야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맹위를 떨치던 한파도 한풀 꺾이고 봄이 성큼 다가섰다. 겨울이 지겨웠던 만큼 집 주위 공원 등을 걷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힘차게 파워워킹을 하며 땀을 뻘뻘 흘리는 사람, 가족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사람, 뒷짐을 진 채 음풍농월 하듯 천천히 걷는 사람…. 모양새도 가지각색이다. 어떤 모습이든 이처럼 걷기는 이제 열풍을 넘어 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걷기가 유행이 된 것은 역설적이다. 걷기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 중의 하나다. 그런 걸 굳이 찾아서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물론 걷기의 일차적인 목적은 건강을 위해서다. 하지만 건강에 대한 관심만으로 이 유행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건강에 도움이 되는 운동은 걷기 말고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 이면에는 건강만을 위한 것이 아닌 무언가가 있다. 편리함만을 추구하다 돌고 돌아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문명화에 대한 반성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걷기 열풍은 길을 만들어냈다. 있던 길은 새롭게 꾸며졌고, 사라졌던 길은 복원됐으며, 없던 길도 만들어졌다. 제주도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 등 명품길이 생겼고 전국 곳곳에서 많은 길들이 탄생했다. 본사에서도 부산의 아름다운 해안을 잇는 갈맷길을 개척했고 지금은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탐사하고 있다. 단조로운 집 주위를 걷던 사람들은 아름다운 풍광이 함께 하는 명품길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전국 어디를 가든 특색있는 길들이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과도한 열풍은 열병을 낳고 있다. 명품길은 벌써부터 몸살을 앓고 있다. 아직 전체가 이어지지도 않은 지리산 둘레길은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훼손되고 있다. 길 주위 농작물을 따가는 것은 예사고 곳곳은 쓰레기 천지다. 한 방송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지리산 둘레길을 소개한 이후에는 아예 유원지가 될 지경이다. 단체 해외여행 가듯 깃발 들고 우르르 몰려와 왁자지껄하며 아름다운 길에 쓰레기를 토해낸다. 만들어지기가 무섭게 길이 망가지고 있다.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개척하고 있는 본사에도 간혹 전화가 온다. 신문에 길이 소개된 이후 사람들이 몰려와 농작물 피해를 입거나 너무 소란스러워졌다는 지역 주민의 항의다. 이럴 때 마다 당혹스럽다. 과연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게 옳은 일인지 하는 생각도 든다. '친환경'이라는 미명이 붙더라도 개발이 과연 온당한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다. 개발이랄 것도 없이 거의 있는 길을 이어가는 것이긴 해도 사람의 때가 묻으면 망가지는 건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걷기가 생활 속 일부분으로 자리잡은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그게 고질적인 유행병의 하나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저 건강에 좋다니까, 경치가 좋으니까, 언론에서 소개하니까 분위기에 휩쓸려 몰려다니는 걷기라면 아예 길을 만들지 않는 게 낫다. 지금 우리의 걷기가 그렇게 흘러가는 게 아닌지, 도대체 왜 걷는건지 다시금 근본적인 물음을 해볼 필요가 있다.

한때 산꾼 사이에 1박2일도 모자라 당일치기 지리산 능선종주가 유행병처럼 번진 적이 있다. 지금도 여전할 것이다. 물어보자. 그렇게 빨리 가서 얻은 것은 무엇이었는지. 등산과는 다르지만 지리산 둘레길의 몸살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러다간 '지리산 둘레길 1박2일 주파' 잔치가 길 곳곳에서 질펀하게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걷기는 마라톤이 아니고 경보와도 다르다. 무엇보다 걷기는 느림이다. 속도경쟁에 내몰리는 현대문명에 대한 반성이자 도전이다. 육체적인 건강을 위해 시작했지만 이는 오히려 덤일 수 있다. 느리게 걸어야 주위의 꽃과 나무가 제대로 눈에 띄고 소중하게 느껴지며 자신의 내면도 보인다. 굳이 뭇 석학들의 걷기예찬까지 들먹일 것도 없다. 제대로 천천히 걸어본 사람이라면 쉽게 느낄 수 있다. 유행병식 걷기가 못마땅하긴 해도 길은 많을수록 좋다. 아직은 우리 주위에 고즈넉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 많지 않다. 봄바람이 살랑댄다. 이제 다시금 길을 나서보자. 어디든지 좋다. 단, 신발끈을 동여매며 나의 걸음이 길을 살릴지 죽일지 한번쯤 되새겨 볼 일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 리모델링 밑그림 나왔다…세대수 느는 단지는 164곳뿐
  2. 2월드컵 ‘집관족’ 덕에 유통가 웃음꽃
  3. 3화물연대 업무개시명령 초읽기…野 “반헌법적”
  4. 4포르투갈 16강 진출 확정, 한국 16강 경우의 수는?
  5. 5혼돈의 조별리그…16강 진출팀 아무도 모른다
  6. 6사하구 다대마을의 아귀찜 간편식 맛보셨나요
  7. 7세대 증가 없인 분담금·공사비↑…상당수 경제성 걸림돌
  8. 8벤투호 가나전 2-3 석패…한국 월드컵 16강행 '빨간불'
  9. 9자신만만 일본 ‘자만’에 발목…절치부심 독일은 ‘저력’ 발휘
  10. 10시멘트 업무개시명령 발동…정부 "불이행시 엄정 대응"
  1. 1화물연대 업무개시명령 초읽기…野 “반헌법적”
  2. 2민주 30일 이상민 해임안 발의…당정 “국조 보이콧” 으름장
  3. 3민주당 부산시당 10대 혁신안 발표…'총선 앞으로'
  4. 4민주 ‘대통령실 예산’ 운영위 소위 단독 의결…43억 ‘칼질’
  5. 5尹대통령 "오늘 시멘트 분야 운송거부자 업무개시명령 발동"
  6. 6"부울경 메가시티 무산으로 관련 예산도 날릴 판"
  7. 7검찰 “서해 피격사건 은폐”…서훈 前 실장에 구속영장
  8. 8박형준표 15분 도시 ‘국힘 시의회’가 제동 걸었다
  9. 9‘697표차’ 부산사하갑 총선 내달 2일 재검표…뒤집힐까
  10. 10윤 대통령 지지율 최대폭 상승, 30%대 중반 재진입
  1. 1부산 리모델링 밑그림 나왔다…세대수 느는 단지는 164곳뿐
  2. 2월드컵 ‘집관족’ 덕에 유통가 웃음꽃
  3. 3사하구 다대마을의 아귀찜 간편식 맛보셨나요
  4. 4세대 증가 없인 분담금·공사비↑…상당수 경제성 걸림돌
  5. 5시멘트 업무개시명령 발동…정부 "불이행시 엄정 대응"
  6. 6산업은행 부산행 가시화…노조 강력 반발
  7. 7부산 부동산 경기 침체됐나… 12월 중 709가구만 분양
  8. 8‘식물항만’ 된 평택·당진항…부산 레미콘 공장 ‘셧다운’
  9. 9[뉴프런티어 해양인 열전] <23> 항로표지원 김종호
  10. 10원희룡 “불법행위 엄정대응”…화물연대 "정부, 대화 무성의"(종합)
  1. 1파업 불참 화물차에 달걀·쇠구슬·욕설 날아들었다
  2. 2의료진 태운 상선 기관사…"부친 묘지 아름다워 이장 안해"
  3. 3정부, 시멘트 2500명 대상 업무개시명령 집행
  4. 4이태원 책임자 곧 영장 검토…서울청장도 수사선상 오를 듯
  5. 5경찰, 쇠구슬 투척 사건 관련해 화물연대 압수수색
  6. 6역사 현장·평화 성지인 유엔기념공원의 지킴이들
  7. 7[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92> 벌레와 범려 ; 버러지같은 인물
  8. 8[눈높이 사설] ‘지방소멸’ 경고…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9. 9오늘의 날씨- 2022년 11월 29일
  10. 10부울경 등 전국 한파경보… 강풍에 체감온도 더 낮아
  1. 1포르투갈 16강 진출 확정, 한국 16강 경우의 수는?
  2. 2혼돈의 조별리그…16강 진출팀 아무도 모른다
  3. 3벤투호 가나전 2-3 석패…한국 월드컵 16강행 '빨간불'
  4. 4자신만만 일본 ‘자만’에 발목…절치부심 독일은 ‘저력’ 발휘
  5. 5'만찢남' 조규성, 벤투호 에이스로 우뚝
  6. 6경기종료 후 벤투 레드카드 가능하나… 코너킥도 의견 분분
  7. 7카타르 월드컵 주요 경기- 11월 30일
  8. 8전세계 홀린 조규성, 가나 골망 뒤흔들까
  9. 9[월드컵 레전드 정종수의 눈] “겁 없는 가나 초반에 기죽여야…공격수 ‘골 욕심’ 내라”
  10. 10[조별리그 프리뷰] 에콰도르-세네갈
우리은행
주민이 직접 설계하는 지방자치단체 구성
불신 큰 지방의회 권한 확대? 다수당 견제책 등 선결돼야
주민이 직접 설계하는 지방자치단체 구성
단체장 권한 집중 획일적 구조…행정전문관 등 대안 고민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55보급창은 반드시 공원이 되어야 한다
이영희와 우영우, 그리고 우리들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표류하는 가덕신공항
기고 [전체보기]
북항재개발 성공은 부산시장에 달렸다
부산소극장연극페스티벌, 새로운 10년
기명칼럼 [전체보기]
앞으로 남은 4년 6개월
낙동강 오리알
기자수첩 [전체보기]
경찰 억울? 희생자 입장서 보라
화포천습지를 동식물 복원 중심지로
김갑수의 생각 [전체보기]
안전하게 내려오는 방법
민주당, 가망 있을까?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죽어도 자이언츠’를 보면서
출산율 0.73 부산에 수의대를 허하라
김용석의 시사탐방 [전체보기]
선인장 가시와 ‘나의 불안전 불감증’
민심, 그 숨은그림찾기의 비밀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토착화한 망자를 위한 노래
부산대첩과 군악 대취타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차라리 정권과 금융계 수장 임기 맞춰라
중요할 땐 사라지는 교육계 소통
도청도설 [전체보기]
이병주 문학 콘서트
축구공의 공정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그까짓 거, 못 먹을 수도 있는 거죠
벼의 건조와 밥맛
사설 [전체보기]
박형준 시장 핵심 공약 ‘15분 도시’ 제동 걸린 이유
‘우주항공청’ 시동…부울경 우주경제 도약 디딤돌
세상읽기 [전체보기]
안전띠가 귀찮은 당신에게
노포의 가치
아침숲길 [전체보기]
열심히 일한 당신, 쉼이 필요하다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의사 인력 확충의 올바른 방법
이수훈 칼럼 [전체보기]
험난한 선진외교의 길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노아 방주의 실천적 교훈
에너지 가치사슬의 완성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위태로운 중국의 미래
한국, 세계의 중심국이 되다
인문학 칼럼 [전체보기]
부산을 그리다
중세 기후일탈과 대응을 현재에서 보다
장병윤의 대안 모색 [전체보기]
정치인의 언어
우리는 농업을 지킬 수 있을까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단석산 신선사의 목탁소리
대한민국의 미래, 부울경 메가시티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정치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난국 탈출, 대통령의 공감과 감응부터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 한잔할래요?
와인은 외로워
특별기고 [전체보기]
내 고향은 부산입니더!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절대음감
베토벤의 머리카락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석촌 윤용구의 ‘노근란’
신명연의 ‘양귀비꽃’
CEO 칼럼 [전체보기]
의료경영 시대, 민간과 공공 구분이 없다
메타버스 ‘오시리아 플랫폼’
  • 신춘문예공모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