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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구제역 살처분과 '호모 사케르' /이택광

전염병 소와 돼지 무조건 파묻는 만행… 사유 부재 빠져버린 정부의 탓 아닌가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2-09 20:14:36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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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호모 사케르'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아감벤이 사용한 개념으로, 문자 그대로 옮기면 '신성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물론 대개 철학 개념이 그렇듯이 여기에서 신성함이라는 수식어는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수준 이상을 가리킨다.

원래 호모 사케르는 로마시대에 범법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나 마음대로 죽일 수 있지만 대신에 신전에 제물로 바칠 수도 없는 존재를 일컬었다. 아감벤은 이런 원의미를 확장해서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이런 호모 사케르가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법의 바깥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호모 사케르는 '벌거벗은 생명' 또는 '날것의 생명'이라고 아감벤은 명명한다.

현대 사회는 겉으로 평화롭게 보이지만 사실은 포섭과 배제의 전략으로 빈틈없이 둘러쳐진 감옥에 다름 아니라는 시각을 이 개념에서 읽어낼 수가 있다. 물론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이론의 토대로 삼는 철학자가 아감벤 혼자인 건 아니다. 멀리 본다면 벤야민과 아도르노가 있었고, 좀 더 가까이 보면 푸코가 있었다.

9·11 테러 이후에 호모 사케르라는 개념은 세계화의 희망에 들떠 있던 서구 시민들에게 결코 평온할 수 없는 일상의 실체를 아프게 고발하는 사유의 기점을 제공했다. 연이어 벌어진 이라크 전쟁과 미군이 일방적으로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 설치한 관타나모 수용소는 아감벤이 지적한 '수용소 사회'의 진실을 증언하는 것처럼 보였고, 이런 생생한 현실은 이탈리아 변방의 철학자를 일약 세계적인 사상가로 발돋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아감벤을 읽는 오늘날, 그리고 호모 사케르라는 개념이 이제 상식처럼 통용되고 있는 일상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또 다른 불편한 진실이다. 아감벤이 전제하고 있는 그 '신성한 인간'에도 미치지 못하는 존재들이 생매장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제역으로 인해 '살처분'된 소와 돼지들은 호모 사케르라는 명명조차 사치스러운 것처럼 보인다. 가축전염병을 예방하고 관리해야하는 정부 입장에서 불가피한 조처였다고 변명을 하지만 사후에 밝혀진 내용을 보면 불가피했다기보다 오히려 판단 잘못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이런 상황이 말해주는 건 우리가 사유 부재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오싹한 사실이다. 생각하지 않고 정해진 매뉴얼을 무조건 실행한 뒤에 따라오는 결과만을 탓하는 행태를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호모 사케르를 만들어내는 생명정치가 소와 돼지들에게도 작동하는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자식 같은 가축들의 죽음을 지켜보는 농부의 시선'을 형상화하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그나마 이런 사태에 대한 윤리적 대응을 보여주는 것이다.

소와 돼지들이 그렇듯, 호모 사케르는 무기력하다. 그러나 이 무기력으로 인해서 호모 사케르는 생명정치의 진실을 폭로하는 것이다. 포섭과 배제를 통해서 생명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현대사회의 어두운 면이 호모 사케르를 통해 지적되고 비판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구제역 대책을 보고 있으면, 호모 사케르의 개념을 '인간'의 범주에 국한해서 적용하는 것은 협소한 해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와 돼지에게 주권을 논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인간도 사실은 자기 생각을 가지기 전까지는 '인간 동물'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포클레인이 파놓은 거대한 구덩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돼지들의 이미지는 '먹을거리'라는 포섭의 대상에서도 제외되어버린 '아무 것도 아닌 존재'를 선명하게 증언한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거대도시에 고기를 집중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그 인구의 분포만큼 집약적으로 배양되어야했던 가축들의 존재도 우리가 이제부터 시작해야할 새로운 인문학적 사유의 대상에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다.

경희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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