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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치킨게임'을 넘어서서 /이만열

계속 불안 조성해 서로의 내부에 쌓인 난제 슬며시 덮는 반민족적 '남북 공조'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2-29 21:12:06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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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게임의 사전적 용어는 '어느 한쪽도 양보하지 않아 양쪽 모두 파국에 이르는 극단적 싸움'을 말한다. 이는 한밤중에 마주보는 두 경쟁자가 차를 몰고 돌진하는 경기로서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꺾는 사람이 패자가 되며 겁쟁이의 불명예를 안게 된다. 이 경기에서 양쪽이 핸들을 꺾지 않으면 둘 다 승자가 되지만 양쪽은 충돌로 결국 파멸하고 만다.

최근의 남북관계는 치킨게임으로 치닫고 있다. '전쟁불사'와 '불바다'를 외치며 미친 듯이 돌진하는 형국이다. 당사자들이야 한 목숨 내놓을 각오가 되어있겠지만 이 땅의 주인인 7000만 민족이 만용에 가까운 치킨게임에 희생되는 것이 과연 온당할까. 7000만 민족 중 누가 '치킨게임'에 동의하겠으며, 그들과 공동운명체가 되어 파멸에 이르기를 진정 원할까.

치킨게임 양상이 급진전될수록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대해 새삼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을 겪으면서 남북상황은 한반도는 물론이고 주변국가에도 불안을 안겨주고 있다. 남측이 떠벌이면서 사격훈련을 하는 것도 마뜩잖지만, 북측이 '핵사용'으로 공갈하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다. 핵을 정말 가졌다면 '핵사용'을 그렇게 쉽게 공언할 수 있을까. 핵사용은 한반도는 물론이고 지구 전체를 파멸시킬 수도 있는데 그걸 공언하다니 이건 반인간적이고 반역사적이다.

치킨게임의 추이를 살피면서 남북이 불안을 계속 조성하는 속셈이 무엇일까 생각한다. 연평도에 떨어진 몇십 발의 포탄은 이 정권의 수많은 난제를 말끔히 정리해 주었다. 예전 같으면 내각이 바뀔 수도 있는, 공직자 지원관실사건이나 청와대 대포폰 문제, 검찰의 이런저런 문제들이다. 그 뿐인가. 연평도 사격훈련으로 긴장관계가 증폭되면서 새해예산과 '형님예산'도 슬쩍 넘어갔다. 나라꼴이 어떻게 되든, 국민이야 불안해하든 말든 이 호재를 어찌 활용하지 않겠는가. 여기서 치킨게임의 또 다른 효용성을 발견하게 된다.

연평도 사건이 터지자 정부는 기다리기라도 한 듯 지난 15일 전국적인 방공훈련을 실시했다. 보행자들은 물론이고 차량통행자들도 방공호에 대피토록 했다. '실전에 대비한' 훈련이란다. 그걸 경험하면서 새삼 느낀 것은 치킨게임이 상대방을 향한 삿대질 못지않게 자기 내부를 조이는 데에도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는 강한 의구심이다. 치킨게임은 기싸움을 통해 상대방에게 주려는 메시지 못지않게 자기 내부에 메시지를 주려는 수단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북쪽 또한 연평도 사건을 내부적 진통을 해결하는 계기로 활용했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연평도 사건 이전에도 북한의 공세적 태도가 내부 문제 해결에 목적이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아무리 독재체제로 강고하게 다져져 있다 해도 그쪽인들 어찌 난제가 없겠는가. 연평도 사건은 남쪽을 타격했다는 '자부심' 못지않게 화폐개혁과 권력세습 등의 내부 문제를 한방에 해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앞으로도 남쪽이 기싸움을 걸어오면 그들은 그것을 내부 문제 해결을 위한 호재로 활용할 것이다. 남북은 이렇게 내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서로를 이용하면서 찰떡 같이 공조하고 있다. 역사는 이 반민족적 실태들을 파헤칠 것이다.

과거에도 남북관계를 내부 문제 해결에 이용하거나 공조하는 현상은 종종 있었다. 선거 때 남북관계를 활용한 여당은 지난 5월 말에도 천안함 사건을 지방선거에 이용하려다가 실패했다. 1972년 '7·4공동성명'도 남북통일의 원칙을 최초로 제공했다는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남북이 이를 정권 강화에 활용했다는 매서운 비판을 받고 있다. 당시 남쪽이 유신독재정권을 수립한 것이나 북쪽이 '사회주의헌법'으로 김일성 일인지배체제를 제도적으로 보장받은 것은 이런 의도하지 않은 '공조'의 결과였다.

남북이 주고받는 공갈과 협박, 전쟁불사론 등의 치킨게임에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남북 서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게임에서는 비겁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만용을 부리며 불안을 증폭시키고 내부를 겁박한다. 어느 예언자는 이를 '파쇼화'라고 했다. 새해에는 제발 민중을 공포로 몰아가는 치킨게임을 극복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진정한 용기로 상생적 남북관계를 열어가기를 기원한다.

숙명여대 명예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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