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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도대체 누가 우리를 /이상섭

SSM서 장 본 날, 슈퍼 청년의 외면에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마음이 더 무겁지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0-22 20:33:46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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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 그거 참 희한하다. 며칠 사이에 세상이 화악, 달라졌다. 발바닥에 화상이라도 입힐 것처럼 무덥던 날씨는 온데간데 없다. 자연스레 사람들의 옷차림도 달라졌다. 그러고 보니 달라진 게 그것만이 아니다. 베란다에서 늘 내려다보던 아파트 상가 풍경도 어딘가 낯설다. 불 꺼진 부식가게 탓인가. 퇴근길에 아내와 종종 들러 찬거리를 장만하던 집. 그 가게가 지금 캄캄하다. 젊은 내외가 참 열심히 산다 싶었다. 영도 어디 조선소에 근무한다는 남편은 퇴근하기 무섭게 달려와 일손을 돕곤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아내가 말했었다. "둘이 사는 게 너무 예뻐, 꼭 우리 신혼 때 모습을 보는 것 같잖아?" 그 말 때문일까. 덕분에 나도 가게 안에서 부지런을 떠는 두 사람을 지켜보면서 가슴에 재충전의 꽃무늬를 새기곤 했더랬다. 그랬는데 인근에 소위 SSM인가 하는 대형슈퍼가 들어서자 적막강산 한 채로 변한다 싶더니 그만 문을 닫고 말았던 것이다.

가게가 문을 닫으니 당장 우리 식탁이 빈곤해졌다. 해서 맞벌이를 하는 우리 부부는 어느 날, 찬거리를 장만하기 위해 새로 입점한 대형슈퍼를 찾게 되었다. 정말이지 '골목상권 장악'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늦은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몰려온 것인지 실내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우리는 인파 사이를 헤집어가며 카트를 밀었다. 그러다가 찬거리 외에 눈길을 파고드는 미끼상품들의 유혹에 '낚이고' 말았다. 어쩌면 그때, 아내는 투명지갑을 생각했을 것이고, 나는 박봉의 월급봉투를 염두에 뒀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아파트 앞 상가슈퍼에서 구입할 수 있는 다섯 봉지 묶음의 과자를 아이들 주전부리용으로 내가 거머쥐었고, 아내 또한 과일의 싼 가격에 놀라 손을 뻗고 말았다.

장을 보고나니 그 양이 만만찮았다. 봉투 밖으로 부피가 큰 과자와 과일이 고개를 내밀 정도였다. 과소비란 말이 생각났지만 장을 본 것을 승용차에 싣고 그냥 집으로 향했다. 한데 집 앞에서 뜻하지 않은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하필 집 앞에서 상가슈퍼 청년과 맞닥뜨린 것이다. 청년은 근처에 배달이라도 있었는지 오토바이를 타고 오던 길이었다.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청년은 고개를 홱 돌렸다. 쌩, 하는 찬바람이 일 정도였다. 우리 부부는 잠시 서로의 얼굴만 멀뚱히 바라보았다.

상가슈퍼는 원래 청년이 아닌 그의 어머니가 운영했다. 여주인은 시장에서 과일가게를 하면서 두 아들을 키웠단다. 그런 이력 덕분에 가판대에는 지금도 과일이 놓여 있다. 과일 맛은 아내 또한 인정할 정도다. 어머니의 노고를 알아서인지 장성한 두 아들이 겨끔내기로 달려와 일손을 돕는다. 그러다가 얼마 전부터 아예 큰아들이 슈퍼를 도맡다시피 했다. 그 이유가 '국민적 화두'인 청년실업 탓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청년은 자신의 삶을 이 가게에 '올인'한 것처럼 열성적이다. 게다가 인사성은 얼마나 밝은지 하루에 몇 번을 마주쳐도 넙죽거린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덤으로 미소까지 뿅, 날려주는 센스까지 발휘하면서. 덕분에 우리 일가족이 뻑하면 달려가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 심지어 맥주 캔까지 거머쥐게 만든다. 뿐인가, 지갑을 챙기지 않았을 경우엔 외상까지 해댈 정도다. 그런데 최근 들어 대형마트 때문에 매출이 떨어졌으니 신경이 곤두설 밖에.

청년에게 괜히 미안했다. 그 바람에 나도 모르게 "그러게 왜 사과를 샀어?" 하고 아내에게 볼멘소리를 터뜨리고 말았다. 그러자 아내가 "당신이 주전부리를 먼저 손댔잖아"하며 되쏘았다. 그렇게 시작된 말다툼은 화장한다고 늑장을 부린 것으로 넘어가고, 눈치 없이 슈퍼 앞에 주차한 내 행동이 오늘의 불상사를 자초한 것으로 이어졌다. 다행히 제 방에 있던 아이들이 나오면서 싸움은 흐지부지됐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무거웠다. 청년의 차가운 눈빛이 지워지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내에게 잘못이 없었고 그렇다고 내게 잘못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청년이 잘못한 것도 없었다. 같은 것, 닮은 것끼리는 서로 끌린다고 했던가. 아무리 도시가 매정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정을 나누며 사는 게 이웃이다. 그런데 그런 이웃을 대체 누가 이렇게 서먹하게 만들었지? 또 우리 부부는 누가 다투게 한 거지? 내 눈길은 자꾸 대형슈퍼 쪽으로 쏠렸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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