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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습관적 인식에 빠진 한국 인문학 /이택광

해외의 첨단이론 배워야 한다는 생각 버리고 새로운 이론 발굴하고 나눠야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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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0-07-14 21:00:26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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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개최되는 인문학 관련 국제학술대회에 참여할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 있다. 활자로만 접하던 학자들의 육성을 생생하게 듣는다거나, 한국에서 논의하기 힘든 난해한 이론적 주제들을 놓고 동시대의 학자들과 정교한 논쟁들을 주고받는 것은 분명 매력적인 일이다. 그러나 더 경이로운 것은 자비를 들여서라도 머나먼 여정을 마다하지 않고 모여들어서 이 세상 누구도 들어줄 것 같지 않은 철학적 문제들을 놓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들이라고 하겠다.

도대체 이런 성실함의 근원이 무엇인지 한동안 궁금했는데, 최근에야 나는 그게 인문학을 업으로 삼은 이들의 외로움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인문학의 위기는 이제 한국에서만 유행하는 질병이 아니다. 일부 영국의 대학들이 재정상의 이유로 철학과나 인문학 과정을 과감하게 폐지한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인문학은 국가나 대학의 경영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시장성이 없는 것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학술대회는 공부를 보편화하는 학문행위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공부한 것을 동료학자들과 나누는 한편, '홀로 공부'가 가져올 '주화입마(走火入魔)'를 경계하기 위해서 이보다 더 좋은 수단은 없다고 하겠다. 이런 맥락에서 공부는 혼자 할 수 있겠지만 학문은 혼자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개별적인 공부에서 얻을 수 없는 진지한 연대감을 학술대회에서 경험한다는 것은 확실히 학문하기가 제공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한국보다 국제적인 학문 수준이 월등하다거나, 외국대학의 학자들이 훨씬 뛰어나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한국의 인문학이 민족국가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이론 수입국의 운명에 처해있긴 하지만, 국제적인 수준에 끼일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문제는 앞서 말했지만, 학문은 개별적인 공부와 일정하게 구분해야 하는 일종의 체계이다. 한국의 인문학이 국제적인 학문공동체에 참여하기 위해 부족한 게 바로 이런 인식이다.

아직까지도 유학을 가서 '첨단의 이론'을 배워야 한다는 습관적 인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한, 한국의 인문학이 국제적인 학문의 지위를 획득하는 것은 요원한 일일 것이다. 우리가 첨단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바깥에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 새로운 것은 '삶 자체'라고 부를 수 있는 내재성에 있는 것이지, 어떤 지리학적 공간성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지리적 공간성이 삶을 규정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지만, 새로운 것은 필연성의 산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아무런 반성 없이 '동양학'을 우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과연 유학이나 불교가 우리 고유의 인문학인지 자문해야 한다. 인문학은 습관적 인식을 거부하고 삶의 터전에 새겨진 의미들을 발견할 때 비로소 특이성을 갖는다. 이른바 국제학술대회라는 것은 이렇게 찾아낸 특이성들을 서로 나누고 확인하는 자리라고 했을 때, 한국의 학자에게 시급한 것은 이런 학문의 극장에 내놓을 자신의 문제의식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우리의 경험에서 출발하는 사유의 이론화이다.

영문학과를 졸업해서 이론적 작업을 하고 있는 나에게 왜 영문학연구를 하지 않고 이론연구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종종 날아들곤 한다. 사실 나에게 이보다 더 엉뚱한 질문은 없다. 이런 질문은 문학텍스트라는 구체적인 연구를 하지 않고 이론이라는 공허한 연구를 하는 것에 대한 마뜩잖은 시선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문학텍스트 그것도 영문학텍스트가 한국이라는 터전에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구체적일 수 있다는 명제는 과연 정당할까? 오히려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들에게 내가 거꾸로 "왜 한국에서 태어나서 영문학연구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 아닌가? 바로 이 '왜'라는 사유가 시작하는 지점이야말로 학문의 싹이 움트는 장소라는 게 내 생각이다.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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