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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마음의 접경 /이명원

취업전쟁으로 삭막한 상아탑

따뜻한 시선과 마음이 그립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5-19 20:50:20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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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까지, 또 얼마만큼 타인에게 마음을 열 수 있나. '마음의 접경'이란 표현이 가능하다면 그 접경의 안쪽으로 당신을 받아들일 것인지, 바깥으로 밀어낼 것인지, 적당히 거리를 유지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일은 어렵다. 정념이라는 것이 문학적 질료의 핵인 탓도 있지만, 사실 인간다움의 가장 힘 있고 조율 불가능한 것이 또한 그것이기도 해서 애초에 '감정교육'이란 것은 형용모순이라는 생각에 빠져들 때가 종종 있다.

스승의 날도 아닌데 한 학생에게 꽃을 받았다. 왜 나에게 꽃을 주느냐 물었더니 '스승의 날'이 이번 주라고 했다. 그 학생은 부끄러웠는지 강의의 중간 휴식 시간에 복도에서 꽃을 주었다. 부끄러운 것은 나도 마찬가지여서 꽃을 들고 다시 강의실로 들어가는 일이 겸연쩍었다. 교탁 위에 갖다 놓아 달라고 부탁했다.

마음은 고맙게 받았지만 대학의 전임교수였을 때나 상황이 바뀐 현재의 시간강사 처지에서도 스승이 없는 시대의 '교수'나 '강사'에 대한 '예의'라는 것이 나는 거북하고 불편하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예의 역시 여전히 소중한 것이어서 교실에서 나는 학생들과 가슴으로 만났으면 한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그러나 가슴으로 만난다는 일은 오랜 시간의 성숙과 인내를 요구하는 일이며 더구나 한 사람의 내면이나 영혼에 대해 서로가 마음을 개방한다는 것은 기껏 16주에 불과한 3학점짜리 시간강의에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게다가 학생들의 학업이나 삶에 대한 고민을 전혀 공유할 수 없는 강사의 처지에서 간혹 난데없이 제기되는 학생의 미래에 대한 선택에 조언을 한다는 것은 어렵고 때로는 주제넘은 일이라 생각될 때가 많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사실 해당 학생의 진로에 대한 고민이나 학업의 어려움, 더 나아가서는 개인적 슬픔에 대해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는 일차적으로는 해당 학생이 속해 있는 학과의 교수들이다. 그러나 다 알고 있는 대로 대학의 지도교수조차 학생들이 처해 있는 '삶의 난관'에 대한 조력자가 되는 일은 사실상 어렵다.

그것은 근대 대학의 성립조건 자체가 가치중립성과 객관성을 문제 삼는 데 있고, 때문에 학생들 개개인의 내적 고민은 다 주관적인 것이어서 그 자신이 짊어져야 할 내성의 영역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내가 학부생이었던 20여 년 전 대학선생들이나 학생들이 격의 없이 스스로의 내면을 개방했던 한때가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추억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과 같이 취업준비로 대학이 삭막해진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아마도 내가 대학의 선생이 되고 문학평론가가 되었던 것은 인문학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의 명백한 전례였던 그런 선생들의 영향이 다분했을 것이다. 가령 내가 대학시절 지도교수에게 단 한 번 사적 고백을 용기 있게 했을 때, 내가 존경했던 그 선생은 단 한마디 "타인과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면 더 넉넉해질 수 있다"고 역시 '사적으로' 말씀하셨다.

당시에도 큰 위로가 되었지만 개인적인 위기나 어려움에 처한다고 느껴질 때마다 나는 그 말을 자주 복기하곤 한다. 생각해 보면 내 마음의 스승들은 마음의 접경 언저리에서, 마음을 연 것인지 아니면 밀어낸 것인지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자연스러움으로 학생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열고 닫았던 것 같다. 나 역시 요즘의 방황하는 학생들처럼 아예 마음을 닫고 있거나 아니면 한꺼번에 너무 많은 고민을 드러내서 상황을 어색하게 만들지 않는 중용에 대해 배운 것은 아마 그때였겠지.

오늘의 학생들은 존경할 만한 선생이 없다 하고, 선생들은 열정으로 가르칠 학생을 찾기 힘들다고 말한다. '청출어람 청어람'은 고사성어에 불과한 것이어서 사제지간이라는 것이 매혹적인 커피광고만큼의 인공적인 향기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선생이나 학생이나 이 메마른 시대의 '스승의 날'이란 오래된 관례와 같은 것이어서 붉은 카네이션도 다음 날이 되면 지친 곡선으로 고개를 숙인다. 유독 오월에는 많은 날들이 화물열차처럼 늘어져 있다. '마음의 접경'의 안과 밖에서 기쁨과 슬픔이 많은 오월이다. 꽃을 준 학생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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