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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세이] 장막을 걷어라, 이 세상을 더 보자 /이명현

반짝이는 별빛은 대기 흔들림 때문… 장식을 걷어내고 핵심을 바라보자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1-11 21:14:25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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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하고 있는 학교에 박경리 선생님이 석좌교수로 오셔서 한 해를 보내신 적이 있었다. 벌써 십 년도 더 전의 일이다. 매주 한 번씩 모이는 문학 강좌를 여셨는데, 필자도 틈틈이 짬을 내서 참석하곤 했었다. 거창한 문학론을 기대했었는데 선생님은 첫날부터 엉뚱하게도 '장식' 이야기를 꺼내셨다. 첫 강의에서는 옷에 딸린 장식 이야기만 내내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음 강의에서도 이런저런 생활 속의 장식 이야기가 이어졌다. 사정이 있어서 몇 번을 빼먹고 참석했는데도 장식 이야기는 소재만 일본 문학으로 옮겨 갔을 뿐 계속되고 있었다. 종강 무렵에 이르러서는 드디어 한국 문학 속 장식 이야기로 이어졌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 학기 내내 그 이야기뿐이니, 언제 본격적인 문학 이야기를 하실 것인지 답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께서 갑자기 모든 장식을 벗어 던져야 한다는 말씀을 꺼내셨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계속해온 장식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의아해 하는 우리들에게 장식을 걷어내는 것이야말로 문학의 첫걸음이다, 이런 취지의 말씀을 하셨다. 겉으로 보이는 장식을 걷어내고 핵심을 보라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눈에 보이고 드러나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작가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찾는 데 집중하라는 당부였던 것 같다. 장식을 걷어내고서야 만날 수 있는 것이 핵심이니 박경리 문학 강좌의 대부분을 장식했던 '장식' 이야기를 몽땅 내던져 버리라는 것이었던 것 같다. 그 강의가 장식을 이야기한 강의가 아니라 장식을 버리고서야 만날 수 있는 문학의 진리를 이야기한 강의였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한참의 세월이 필요했다.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던 날, 어쩌면 그 분의 삶 자체가 장식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선생님을 떠나보내고서야 핵심을 엿볼 수 있었고 깨달았다.

밤하늘에서 별이 반짝 반짝거리는 것은 실제 별빛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지구 대기의 흔들림 때문에 교란되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지구 대기의 방해를 걷어내고서야 별의 진짜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별이 뜨고 지는 것은 실제 그런 것이 아니라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에 생기는 겉보기 현상이다. 개기일식 때 태양이 잠시 사라지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진짜로 태양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달에 의해서 가려지는 것이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들이지만 진실을 가리고 있던 장막을 걷어내지 못했던 시절에는 신의 변덕쯤으로 알기도 했었다. 떠오르는 보름달이 머리 위에 높이 떠 있는 보름달보다 더 커 보이는 것은 달의 크기가 실제 변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눈의 착시 현상 때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천문 현상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저런 원인으로 왜곡되어 있다. 온갖 장막에 가려진 천체들의 진짜 모습을 보기 위해서 천문학자들은 관측한 겉보기 현상을 과학적으로 보정하는 외롭고 지루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장막이 걷혀야 비로소 과학적 진리가 보이는 것이다.

역사 반복의 법칙을 증명하겠다는 것인지 또 다시 방송에서 막말을 몰아내겠다고 야단들이다. 요즘에는 특히 빵꾸똥꾸가 그렇게도 못마땅한 모양이다. 똥꾸빵꾸는 좀 덜할까. 경고를 하고 난리법석이다. 빵꾸똥꾸 경고 소식을 전하던 똥꾸빵꾸한 아나운서도 웃지 않을 수 없었던 그야말로 빵꾸똥꾸한 사건이다. 미술교사가 임신한 부인과 함께 섹시하지도 않은 누드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렸다면 그 숨은 뜻을 보려고 노력했어야 마땅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불난리 속에 사람이 여섯이나 죽어나갔다면 왜 그들이 죽었어야만 하는지 그 진짜 이유를 집요하게 캐물었어야 마땅했다.

소통과 융합의 첫걸음은 온갖 것들을 인내심을 갖고 걷어내고 핵심을 찾아서 제대로 보려고 노력하는 데 있을 것 같다. 문학도 과학도 그렇게 하라 이르고 있지 않은가. 장식과 장막을 걷어내지 못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없는 것을 일부러 있는 것처럼 지어내서 속이는 것이다. 문득 노래 한 소절이 떠오른다. '장막을 걷어라 너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더 보자'. 이 글도 장식이고 장막이니 뜻을 취했으면 모두 버리고 행복의 나라를 찾아 같이 떠나자.

연세대 천문대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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