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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여우형 인간'의 선택 /곽차섭

총리직 수락 허 찔려…그 역시 여우형 인간

MB와의 계책다툼 흥미롭게 관전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09-15 19:55:41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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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성격은 타고나는 것일까, 혹은 살아가면서 바뀌는 것일까? 물론 어느 쪽이든 그렇게 주장할 만한 근거는 있다. 성격이란 기본적으로는 타고나겠지만, 그래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얻는 경험과 학업을 통해 획득하는 지식 덕분에 자신을 성찰하면서 단점을 보완하게 된다는 것이 아마 가장 "바람직한" 정답일 수도 있다. 만약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인격 도야란 교육적 표어부터가 공허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DNA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연구가 가속화되면서 인간의 행동이나 성격이 상당 정도 생물학적으로 결정된다는 학설이 득세하고 있다.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넥스트'를 보면, 심지어 안락유전자까지도 등장한다. 새로운 모험과 도전보다는 전통과 관습에 더 안락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유전자가 내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소설적 상상력의 소산일 뿐이지만, 그만큼 성격에 대한 생물학적 결정론이 힘을 얻고 있다는 증좌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런 DNA얘기가 나오기 전,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이 성격을 결정론적 관점에서 파악해 왔다는 점은 흥미롭다. 서양에서 가장 유명한 성격구분론 중 하나가 마키아벨리의 사자형 및 여우형 분류이다. 사자형은 호기롭고 대담한 성격으로 항상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힘과 권력을 앞세우는 인간형이다. 여우형은 반대로 자신의 본심을 숨기며 언제나 다른 사람의 동태를 살피는 편이다. 힘보다는 계책에 밝은 인간형이다.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이 두 인간형은 모두 장단점이 있다. 힘만 앞세우다가는 덫에 걸리기 쉽고, 계책에 밝다고 뽐내지만 막상 강력한 힘 앞에서는 무력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두 성격을 잘 조합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물론 그가 조언한 대상은 왕이나 제후와 같은 정치권력자였지만, 약간 변형하면 보통 사람들에게 적용해도 손색이 없다. 이 경우라면 단연 여우형이 중요해진다. 대부분의 사람은 여우형에 가깝기 때문이다. 17세기 나폴리의 문인 아체토는 인간형을 잔인하고 광폭하며 야만적인 사자형과 의리 없고 불성실하며 음흉한 늑대형,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속하는 여우형으로 나누었다. 결국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곧 이러한 인간형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한데, 그는 이 중 여우형에 대한 방어가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사자형과 늑대형은 위험하지만 금방 그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는 반면, 여우형은 누가 여우인지를 알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더욱이 여우형은 자신의 주변 어디에나 있다는 점이 위험도를 더 상승시킨다. 교활성에는 교활성으로 맞서는 것이 한 방법이겠지만, 여우형에도 등급이 있을 테니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여우였다는 것도 모른 채 등급 높은 여우에게 당하고 말 것이다. 이때 처세술의 요체는 역시 본심 숨기기이다. 남보다 앞서 자신의 주장을 밝히지 않는 편이 여러모로 낫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와 아체토의 이런 인간형 내지는 성격형 분류는, 권모술수가 판쳤던 16,17세기의 어지러운 이탈리아 사회 속에서 군주 혹은 보통 사람의 성공을 위한 처세술의 일환으로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작금의 세상이 그때보다 더 도덕적일 것이라고 주장할 만한 근거는 없으니, 이런 인간형 분류에도 아직 음미할 만한 구석이 있다.

최근 오랫동안 이른바 진보적 민주인사로서 야권 차기 대권후보 중 한 명으로 거명되어온 한 학자가 전격적으로 국무총리직 제의를 수락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곤혹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다. 그에게 일말의 기대를 거는 사람은 "선비형" 리더십이니 "부드러운 카리스마"니 하면서 애써 그의 행동을 합리화하고자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수사(修辭)는 알맹이 없는 허사(虛辭)일 뿐이다.

그는 앞의 분류로는 분명히 여우형에 속한다. 따라서 핵심은 과연 그가 얼마나 등급이 높은 (혹은 DNA 질이 높은) '여우'인가에 있다. 어쨌든 보좌역에 불과한 그가 이 방면 최고 등급을 가진 대통령과의 계책 싸움에서 어떻게 승리할지, 그것이 우리처럼 등급 낮은 여우들의 관전포인트다.

부산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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