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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국남자, 영웅호색을 꿈꾸는가 /이지양

성폭력은 인권유린 범죄…성접대 리스트 깔끔히 수사해야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04-13 20:31:33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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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의 대제학 택당(澤堂) 이식(李植)은 과거시험 문제를 이렇게 출제했다. 호색 풍류를 폐지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창기(娼妓)가 바르지 못한 여색인데도 호걸스런 인사들이 깊이 빠지니 어찌 된 일인가. 그것은 호걸스런 풍류인가, 부도덕함인가. 우리나라는 고려시대부터 중앙이나 지방이나 재예(才藝) 기녀로부터 수청을 드는 침기(枕妓)까지 존재해왔다. 그리하여 선배 명신(名臣)들도 이를 예사롭게 여기면서 풍류를 과장하여, 이들을 가까이한 것이 오래되었다. 이제 교화를 다시 일으키고 더러운 풍조를 씻어 없애려면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하겠는가.

이에 대해 조선조의 선비들이 어떤 묘안을 써 냈는지 모르겠다. 별 특별한 묘안이 없었던 것 같다. 그때로부터 4세기가 지난 지금도 '성접대' '성폭력'이라는 말이 연일 도배되고 있으니까. 인간의 타고난 본능에다 자본주의 사회의 육체적 욕망 소비를 부추기는 상업화 전략이 더해져 바야흐로 성 상품화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그래서 상층은 성접대, 하층은 성폭력, 이렇게 양분된 현상을 뉴스에서 연일 접한다. 그러자니 사회 분위기는 정말 스산하고 살벌하다. 약자를 돌봐주는 척하다가 도리어 쥐어짜면 강자의 복록이 증대된다, 들키지만 않는다면 나보다 약한 존재는 일단 함부로 다루라, 그런 외침이 암암리에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모두가 윤리 도덕을 몰라서 그랬으랴. 그러니 이 풍조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답은 제대로 수사하는 것, 그리고 남자 스스로 자기존엄을 자각하는 데 있다.

'성접대'란 말은 말 자체도 참 괴기스럽다. 접대란 상대방을 존중해서 이루어지는 것일 텐데, 성접대는 도리어 상대방의 인격을 능멸하는 발상을 깔고 있으니까. 당신은 동물처럼 본능만 있는 듯 보이니 이성으로 미끼를 드리우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짐승 취급을 받는 걸 도리어 접대 받았다고 믿는 분위기가 생긴 걸까. 또 그런 요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자가 어떻게 권력을 거머쥐고 책임이 무거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일까. 또 그런 일이 드러나도 흐지부지 넘어가서 기회만 있으면 되풀이되게끔 가해자를 조직적으로 감싸는 걸까. 대다수 잠재의식 속에 영웅호색의 꿈이 깊이 스민 때문일까.

연애는 불륜조차도 자발적인 감정의 진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성접대는 사람이 사람을 미끼로 쓰고, 미끼로 요구하는 것이니, 인권유린임이 명백하다. 그런데도 그런 일에 연루된 자를 비호한다면, 그 사회는 다음 세대를 바르게 키우기 힘들 것이다. 우리사회 청소년들의 성범죄가 폭증하고 있다. 태어나 십여 년 남짓 보고 들은 대로 행동한 결과가 교활하고 야비한 성범죄라는 것이 뭘 의미할까. 성접대 문제를 제대로 청소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걷잡을 수 없이 타락할 것이다. '성접대 리스트'에 대한 수사를 주시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인권 유린에 해당하는 성범죄를 성접대니 성로비니 하는 말로 호도하여 설렁설렁 넘어가도 공권력이 썩지 않았다 할 수 있을까.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정녕 우리사회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지금 이 문제를 깨끗이 청소해야 한다. 청소년들은 바른 것을 보고 듣고 자랄 권리가 있다. 그리고 기성세대는 그런 것을 보여줄 책임이 있다. 그래야 진짜 희망이 생긴다. 썩은 공권력이 아니라면 이 시험대를 제대로 통과하여 새 희망을 살릴 수 있으리라.

성폭력은 범죄 중에서도 특별한 범죄다. 그것은 가해자가 성폭력을 행하기 이전에, 이미 자아관이나 여성관이 깊이 병들어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 두 인생을 송두리째 근본적으로 망치는 범죄라는 점에서 그렇다. 다른 범죄보다도 성폭력을 우선적으로 줄이고 막기 위한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기 위해 한 가지만 되짚어 보자. 처음에 여자와 남자가 아무 차이 없이 태어나서 해맑게 자라다가, 왜 어느 시점이 되면 '남자니까 괜찮다'를 맹신하는 한국남자로 바뀌는 것인지? 정말 남자는 남자라서 영웅호색을 외쳐도 괜찮은가. 자신의 순수하고 건강한 삶, 인간다운 삶이 증발되어도 남자라서 괜찮은가. 호색에 관한 한 남자는 손해 볼 것이 없다고 믿는 사고방식, 그 병든 사고를 이제는 버려야 할 때가 왔다. 남자인 당신의 몸, 당신의 인생 자체를 당신 스스로 유린하면서 아직도 그것을 호걸 풍류라 믿는가. 범죄요, 자학일 뿐이다.

연세대 국학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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