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금융감독당국과 주채권은행 등의 신용위험평가 결과, 건설·조선업체 일부가 퇴출되고 일부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게 됐다. 요즘 기업들은 업종을 불문하고 혁신이 화두다. 하도 너나없이 혁신, 혁신 해서 이제 식상한 감마저 들지만 지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미래의 꿈을 키우려면 결국 다시 그 흔한 혁신의 깃발을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기업은 혁신을 주저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혁신에는 자해가 동반되기 때문이다. 자해같은 모험과 도전, 차라리 세상 밖으로 몸을 던지느니 따뜻한 물 속에서 서서히 익어가는 개구리의 선택이 당장은 편한 측면이 있다. 둘째는 혁신의 깃발만 세운다고 다 혁신에 성공하고 그 열매를 따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혁신의 성공 확률은 10%라고 한다. 그래서 90%의 실패가 뻔한데 수명을 단축할 필요는 없다는 유혹에 솔깃한 법이다.
1등은 되기도 어렵지만 지키기는 더 어렵다. 혁신의 목표는 1등이다. 1등이 아니면 그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다는 누군가의 협박은 현실에서 진리에 가깝다. 기억 차원이 아니라 기업의 현실에선 생존의 차원이 된다. 따라서 혁신의 출발은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돌아보는 데서 시작한다. 조금은 인정하고 싶지 않고 조금은 후하게 평가하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에누리없이 다 드러내는 고통으로부터 출발한다.
1등이 되는 혁신은 어쩌면 쉽다. 1등의 자리를 지키는 혁신은 마라톤 경기를 봐도 그렇다. 1등을 노리는 선수는 처음부터 선두로 나서지 않는다. 선두에 몇 미터 거리를 두고 2위 그룹을 유지하다가 마지막에 속도를 내서 선두로 치고 나간다. 마라톤 선수의 전략은 단순해 보인다. 어느 지점에서 선두로 치고 나가느냐를 결정하면 되니까. 가능하다면 결승점에서 가장 짧은 거리를 두고 선두로 치고 나가면 되니까. 그 이유는 선두를 유지하는 시간을 단축하려는 것이고, 선두를 유지하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처음 가는 시골 길에 차가 여러 대 줄지어 가고 있다면 맨 앞 차를 운전하기가 제일 힘들다. 그 뒤를 따라가는 차들은 여유가 있다. 앞 차만 보고 따라가면 되니까. 선두 차량은 길을 열어가야 하니까.
1등 기업이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엉뚱한 길로 빠져든 예는 수없이 많다. 패스트 세컨드 전략이 그래서 나왔다. 그러나 기업은 2등으로 편안하게 드라이빙을 즐길 수 없다. 따라서 선두에 나섰을 때 혁신의 목표는 달리 설정된다. 그것은 2등과의 격차를 확 벌리는 것이다. 그래서 2등이 경쟁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기본이다.
혁신은 현실의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여기서 혁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몇 가지 방법들을 알아보자. 첫째, 모순의 본질에 천착해야 한다. 조금은 쉽고 편하다고 가지를 친다고 해서 썩은 나무를 뽑을 수 없다. 특히 조직에서 변죽만 울리는 것으로 혁신을 대신한다면 조직은 이내 혁신의 기가 식고 혁신 이전으로 되돌아가 버리기 쉽다. 둘째, 혁신은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다. 혁신의 과제를 늘리는 것이 좋은 혁신이 아니다. 초기 모순 인식의 과정에서 과제를 늘어놓는 것은 불가피하나 최종 혁신 주제를 선정할 때는 고구마 줄기를 캐듯이 과제 간 연결고리를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혁신의 대상은 반드시 현실의 모순을 품고 있다. 따라서 혁신은 적당하게 타협해서는 오히려 현실의 모순을 심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회피하거나 과소 평가하여 은폐하려는 유혹이 혁신을 실패로 이르게 한다. 혁신이 모순을 찾아내는 데서 시작하고 얽혀 있는 과제를 풀어내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혁신의 종착점이다. 마지막으로, 혁신에는 경계를 두어서는 안 된다. 혁신은 그 자체로 파괴다. 기존 질서의 재편을 전제로 한다. 영역의 경계, 규정의 경계, 관습의 경계를 파괴하는 데서 혁신은 시작한다. 경계를 깨지 않고서는 혁신을 할 수 없다.
위기가 심화될수록 기업들은 더욱 혁신에 매달리게 된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혁신에 나서는 것도 아니고, 혁신에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기업 흥망의 교차점, 기업의 순위가 바뀌는 때는 불황기가 아니라 불황기에서 호황기로 접어들 때다. 불황기에 그 기업이 무엇을 했는가의 성적표를 받아들 때인 것이다.
웅진씽크빅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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