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에 한 번 있을 듯하다는 경제위기로 모두가 고통받은 한 해가 지나갔다. 돌이켜보면 지난해는 메릴린치, 리먼브러더스, 베어스턴스 등 한때 세계 금융시장을 호령하던 금융 명가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공포의 한 해였다. 하루라도 빨리 끝이 나길 바라던 2008년이 끝났지만 새로운 한 해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일 것 같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전이되면서 우리 경제는 낮은 경제성장률과 높은 실업률에 시달릴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전 세계 모든 국가에 몰아 닥쳤다는 점에서 아시아 일부 국가들의 유동성 위기에 불과했던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 더욱 고통은 심하고 기간도 길다. 또 다시 한반도는 우울한 분위기로 가득 찼다. 주위를 둘러보면 정부 기업 가계 그 어느 경제주체에서도 자신감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세상을 살다 보면 변화의 한 가운데에 놓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다는데 아마 지금이 바로 그 때인 것 같다. 앞을 읽을 수 없는 세상은 무섭다. 하지만 우리는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희망에 차서 아침에 눈을 뜨기도 한다.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도전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꿈과 낭만이 아닐까.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 정글에서 사바나로 걸어 나온 이후 불확실성 속에서도 자신만의 가설을 수립하고 행동했기 때문에 오늘의 역사는 가능했다.
네덜란드의 화가 브뤼겔이 그린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에는 흥미로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현실에 안주하는 농부, 무모한 이카루스, 그리고 용감한 모험가들이 바로 그들이다. 밭을 갈고 있는 농부는 세상 일에 아무런 관심 없이 어제 했던 일을 오늘도 묵묵히 하고 있으며, 아마 내일도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안분자족하며 사는 그의 모습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그림 한 구석에는 이카루스도 보인다. 밀랍으로 붙인 날개를 이용해 자신의 한계를 거부하며 태양을 향해 날다가 바다에 추락한 그의 다리가 보인다. 이카루스 옆으로는 신대륙을 향해 배가 출범하고 있다. 분명 항해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목적지로 가는 길에 식량과 식수가 바닥이 나 고통을 겪을 수도 있을 것이며 변덕스러운 날씨와 숨어서 기다리는 암초 때문에 항해선 중 일부는 난파될 것이다. 이카루스와 모험가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위험에 대한 분석과 대응력이 그것이다. 때로 모험가는 치밀한 분석과 대응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일로 이카루스의 운명을 따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위기 전 대우건설, 하이마트, 대우조선 같은 대형 인수합병(M&A)에 나섰던 기업들이 주식시장의 폭락과 자금경색으로 역풍을 맞고 있다. '승자의 저주'에 걸린 기업가를 보면서 이카루스가 되는 것이 무서워 차라리 농부처럼 사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사회분위기도 느껴진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신대륙을 찾아 나서는 탐험가와 같은 기업가 정신이 절실하다. 세상에 대한 관심을 접고 안분자족하기보다는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을 스스로 찾아내 짊어지려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한국에 미래가 있다.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정박하기 위해 배를 만들지는 않는다. 3류는 환경을 탓하고 2류는 좋은 환경만 찾아 다니지만 1류는 어떤 환경도 자기에게 맞게 만들어 낸다. 그것이 혼란의 시대를 맞은 우리의 운명이다.
1859년 찰스 다윈은 오랜 번민 끝에 '종의 기원'을 발간했다. 그는 자신의 학설에 확신을 가졌지만 현상유지를 바라는 빅토리아 시대의 기득권자와 맞서는 것이 두려워 발표를 계속 미루었다. 위험을 무릅쓴 다윈 덕분에 인간은 비로소 종교의 구속에서 벗어나고, 위대한 설계자가 준비한 예정된 길이란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윈은 우리 모두를 농부가 아닌 탐험가로 만든 위대한 과학자였다.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발간 150주년이 되는 올해는 우리로 하여금 폭풍우가 휘몰아치더라도 항해를 떠나도록 재촉한다. 다음의 시 구절을 읊으면서 어둠 속에 길을 떠나보자.
하나님/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은 받아들이는 평온한 마음과/제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은 변화시키는 용기/그리고 이 두 가지를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라인홀드 니버의 평온함을 위한 기도 중에서).
그린손해보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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