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밥상을 마주하면서 해월 선생님의 '이천식천(以天食天)'이란 말씀을 떠올려 봅니다.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는 뜻입니다.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이 하늘을 모시고 있음을 나타낸 말입니다. 풀 한 포기, 낟알 하나, 이 땅위의 뭇 생명붙이는 귀한 존재이고 하나로 엮여 있다는 것입니다. 밥 한 공기에도 우주가 담겨 있습니다. 햇볕과 바람, 비, 자연의 조화가 스며들고 농부의 땀이 배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당신에게 먹을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한낱 우리 몸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 자동차에 넣는 휘발유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아마 현대인들의 생각이 먹을거리가 사람의 피와 살을 이루고, 인류의 사상과 문화를 떠받치는 근본이라는 데까지 미치지 못하는 듯합니다.

이렇듯 소중한 밥이 언제부터 하찮은 존재가 된 걸까요. 밥이 상품으로 바뀐 뒤부텁니다. 밥이 돈으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밥에 대한 성찰이 흐려진 것이지요. 지금은 먹을거리가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너 지구 끝에서 끝으로 이동합니다. 거대자본은 그 과정에서 막대한 이윤을 챙깁니다. 먹을거리가 돈을 따라 지구를 떠돌면서, 사람들은 스스로 먹는 음식의 정체를 잘 알지 못합니다. 지구 저편에서 온 먹을거리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를 갖지 못합니다. 누가 농사를 지었는지, 농작물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 음식에 대해서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GMO곡물을 우리가 믿을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미국은 쇠고기를 '고기 공장'에서 생산합니다.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단시간에 살을 찌우기 위해 자연의 이치도 짓밟아 버립니다.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물의 사체를 간 단백질 사료를 먹이고 성장촉진제를 줍니다. 또 밀집사육 과정에서 온갖 병이 생기자 항생제를 퍼 먹입니다. 광우병이 발생하고, 살모넬라균에 노출되어 수시로 리콜사태가 벌어집니다. 이게 바로 오늘 미국의 공장식 축산의 본모습입니다.

지난 5월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온 GMO옥수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중에서도 바실루스 투린지엔시스(Bacillus thuringiensis)라는 박테리아의 유전자를 이식한 Bt옥수수는 많은 의혹의 눈길을 받고 있습니다. 스스로 농약성분을 합성하는 박테리아의 유전자를 옥수수 유전자 속에 이식한 것이지요. 옥수수 농사의 훼방꾼인 조명충나방의 애벌레가 옥수수를 조금만 갉아먹어도 살아남을 수 없게 됩니다. 왜 우리가 일찍이 경험한 적 없는 잠재적 독극물을 음식을 통해 섭취해야 하나요. 물론 미국 FDA가 안전성을 보장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안전성은 종자회사가 자체적으로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한 것입니다.

먹을거리의 상품화는 농사의 가치, 농민의 존재를 하찮은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WTO체제 아래 세계 농민의 숫자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급기야 식량부족 사태까지 몰고왔습니다. 올초 세계 곳곳에서 식량파동이 일어나 기아로 내몰린 민중들이 소요를 일으켰고 그 과정에서 수십 명이 목숨까지 잃었습니다. 무엇이 이 지경으로 만든 걸까요. 모든 것이 돈으로, 먹을거리까지 돈의 잣대로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거대자본이 구축한 세계식량 체계 속에서는 식량메이저들은 돈벌이를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합니다. 그들은 정부기관까지 장악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정책을 왜곡시킵니다. 따지고 보면 WTO체제의 우루과이라운드나 FTA나 결국 미국과 거대자본이 식량을 매개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의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견해까지 나옵니다.

최소한 먹을거리만은 우리 스스로가 지켜내고 안전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쇠락해 가는 농촌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농촌의 붕괴는 우리의 생존을 뒤흔들 것입니다. 농촌이 죽으면 우리 식량자급 체계가 급속도로 무너지고, 결국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계 곡물메이저들의 손에 우리의 생존을 맡기는 꼴이 됩니다. 어떤 경제논리도 음식주권에 앞설 수는 없습니다. 정부와 정치인들은 눈앞의 이익에 영혼을 팔았지만 국민들은 먹을거리의 안전을 요구하며 촛불을 들었습니다. 지난 몇 달간 미국산 쇠고기를 반대하며 타오른 촛불은 밥의 소중함에 대한 성찰이 되었을 것이라 믿습니다. 이제 그 성찰의 결과가 우리 농산물 먹기 운동으로 번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아침 당신의 밥상이 이 땅에서 제철에 난 온전한 음식으로 가득 차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