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는 흐름이 있다. 국가적으로나 세계적으로 그 시대의 흐름이 있어서 대세를 결정한다. 청학동 도인들과 같이 개인이나 그룹, 국가가 그 흐름을 거부할 수는 있다. 그러나 대세와는 전혀 무관하다. 지금 세계의 흐름은 세계화, 지역화, 지식, 정보화이다. 40여 년의 짧은 기간에 이 흐름에 따르기로 한 한국은 성공을 거두었고 출발 당시 한국보다 형편이 나았던 북한은 여전히 미로를 헤매면서 더 깊은 수렁에 빠지고 있다.
선택에는 반드시 위험과 기회비용이 따른다. 확실하고 위험이 없으면 기대할 것도 없다. 한국이 세계로 향하는 주요 파트너로 미국을 택한 것은 130여 년 전의 개항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로 의미가 있다. 미국은 골리앗과 같은 거인이다. 성경에 나오는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유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상황은 다르다. 조선 말기나 3000년 전 팔레스타인의 상황에서는 한쪽이 무력으로 위협하며 개방이나 굴복을 요구하는 형식이었고 이번의 한미 FTA는 싫으면 안해도 되는 상황이었다.
한국은 수출로 성장했고 지금도 수출로 버티고 있다. 한국이 지금과 같은 경제구조나 산업경쟁력으로는 더 이상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징조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국과 같이 자연 자원이 없는 나라가 지식경제시대에 앞서 나갈 수 있는 길은 더 세계로 나가는 위험을 감수하는 선택이다.
앞서 골리앗과의 싸움은 다윗이 조약돌 한 개로 단번에 승부를 낸 통쾌한 싸움이었다. 그러나 이번의 FTA는 서로 주고받는 협상을 통해 이룩된 것이다. 협상의 결과는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산업이나 분야가 있고 손해가 나는 산업이나 분야도 많다. 또 일부 산업의 경우에는 존폐의 기로에 설 만큼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나라 전체를 위한 결정이지만 타격을 받는 부문이 당하는 아픔과 고통을 같이 안고 가야 하는 책임이 정부와 사회 모두에 있다.
한미 FTA가 양국 국회의 비준을 통과하여 실질적으로 발효될 경우에 부산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할까. 당장 원양어업과 양식업을 포함하는 수산업 및 농산물이 타격을 입게 될 것이고 지역산업구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서비스 산업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자동차 조립이나 자동차 부품은 혜택을 받게 될 것이다. 또 항만은 교역이 활발해질수록 좋은 법이다.
이번 한미 FTA를 부산은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나 조직은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있을 때가 변화의 계기가 된다. 그러지 않아도 지역경제의 부진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부산이 두바이와 같은 역발상에 의한 발전을 도모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FTA는 교역을 증진시키기 위한 협정이고 부산은 교역에 필수적인 중심항만의 위치에 있다. 사막뿐인 두바이가 중동의 교역중심지로서의 이점을 뛰어넘는 세계 최고, 세계 유일, 가속도 방식에 의한 자산 창출로 사막의 신기루와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듯이 부산이 세계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현재의 상태에서 세계로 나아가는 세계도시를 지향해야 한다. 세계도시는 세계의 사람과 돈, 물자와 정보가 모이고 흩어지는 도시이다.
여건을 내걸고 탓할 것이다. 즉 돈이 없고, 사람이 없고, 용지가 없어서 안 된다고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신항만도 있고 강서도 있고 인근의 김해, 양산, 울산도 있다. 또한 광역경제권 형성을 넘어서 동남권의 통합이나 인근 외국도시와의 경제적 통합도 가능한 대안이다. 이 변화의 시작은 시청이나 구청의 공무원 조직부터 세계도시 수준으로 만드는 작업이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참여정부의 지금까지의 정책기조는 미국과는 모든 면에서 거리를 두려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미국과 경제적으로 가까워지는 현실적 수단인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은 모순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동기에서 나왔든 간에 세계화, 개방화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정책의지는 나라의 장래를 내다보는 안목 있는 통찰임에 틀림없다.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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