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한 명을 잘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이는 육아가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며 가족이나 이웃, 사회 전체가 육아에 동참해야 한다는 의미이다.선거철만 되면 후보자 공약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육아 문제다. 그들의 공약을 보면 육아는 국가의 책임이며 아이만 낳으면 국가와 사회가 다 키워줄 것만 같다. 하지만 현실은 과연 그런가?
몇 년 뒤 은퇴 후 조부모 육아에 동참할 나도 그런 공약에 솔깃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임신 막달까지 근무했던 나는 육아 휴직은 언감생심 출산휴가 한 달도 감사했던 적이 있다. 그 시절을 얘기하면 요즘 유행하는 “라떼는 말이야~”를 넘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유물 얘기로 치부될 수도 있다.
육아하기 가장 적합한 사람을 묻는 어느 조사에서 친부모가 1순위였다. 2순위는 아이 엄마의 언니나 여동생인 이모였는데 아마도 같은 엄마에게서 태어나 함께 성장해 외모나 생각이 비슷할 거라는 기대에서 나온 결과 같다.
그럼 3순위는? 조부모다. 그런데 이 조부모에도 조건이 있다. 조부모 앞에 ‘건강한’이 붙는다.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몸으로 나타나는 조부모에게 질병은 어쩌면 필연적으로 동반될 수 있기 때문이다. 4순위는 어린이집 등 전문기관이라고 한다.
어린이집도 국·공립어린이집과 민간어린이집, 직장어린이집 등 다양한 형태와 유형이 있는데, 오늘도 부모는 내 아이에게 가장 적합한 곳을 찾느라 여전히 힘들다. 운 좋게 육아휴직을 할 수 있는 직장에 다니는 부모이거나 건강한 조부모까지 육아 지원을 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랴.
정부에서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낳기만 하라고 부추길 것이 아니라 여성이 출산 후에도 마음 놓고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육아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 어느 지역에서는 출산하면 입이 벌어질 만큼의 지원금이 나온다는 말을 듣고는 그곳으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웃지 못할 농담이 나온다. 그만큼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는 금전적 부담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집값의 기준이 되는 역세권, 학세권이란 말이 있듯이 이제 ‘육세권(?)’이라는 말도 나올 판이다.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결정짓는 일이다. 부모가 키우든 이모나 조부모, 어린이집이 키우든 걱정 없는 육아를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