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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주 기자의 육아뒷담 시즌2 <마지막>수험장은 혜광고가 아닌 해강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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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수능시험 당일. 부산에 사는 수험생 A 군과 아버지는 떨리는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 12년 학업의 결판을 보는 날. 아버지는 아들을 태워주기로 했다. 수험장까지 가는 힘을 아껴 시험에 최선을 다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아버지로서도 긴장되는 운행이었을 거다. 차분하게 차를 몰면서도 아버지는 연신 시계를 흘끔거렸다.
   
“아들 다 왔다. 내려. 힘내, 화이팅!” 그런데 A 군의 표정이 이상했다. 이곳저곳 둘러보던 아들이 물었다. “아부지, 여기가 어디에요?” A 군의 수험장은 해운대구 해강고. 그런데, 아들의 말을 잘못 이해한 아버지가 중구 혜광고로 차를 몰았던 것.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가던 그때 경찰이 나섰다. 상황을 파악한 경찰은 즉시 A 군을 순찰차에 태웠다. 이때 시각 오전 7시45분. 중구에서 해운대까지 20분 안에 주파해야 했다. 순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달린 끝에 A 군은 가까스로 입실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경찰서를 돌며 사건사고를 캐는 ‘경찰기자’로 5년째 일하고 있는 내가 취재했던 이야기 중에서도 손꼽히게 강렬하게 각인됐던 사례다. 얘가 시험을 잘 쳤는지까지는 나도 모른다.

5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다. 이 사건을 취재하던 당시 새신랑이던 나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됐다. 첫째가 아들. 4살이다. 요즘 얘랑 이야길 나누다 A 군 이야기를 새로 곱씹는다. 선배 부모들은 아시겠지만 4살 남자 애의 관심사는 뽀로로와 타요, 옥토넛을 넘어 이제 헬로카봇까지 이행했다.

내가 아들이랑 진지하게 작품비평(?)이 가능했던 시기는 타요 때까지였던 거 같다. 꽤 관심을 가졌다고 자부하건만 옥토넛에서부터 나는 주제가를 외우거나 캐릭터를 분석하는 데 실패했다. 심지어 헬로카봇은 시즌에 따라 메인 로봇이 너무 자주 바뀐다. 나는 주인공 남자애 성 씨가 차 씨이고 아버지 직업이 경찰이란 정도밖에 모른다. 아무튼 나는 자식과의 상호 이해나 대화에서 골이 깊어지는 단계에 처음 진입했다. 당연한 현상이다. 지금은 만화 가지고 대화가 안 된다는 귀여운 수준이지만 앞으로 아들이 어떤 영역에 관심을 둘지, 그 과정에서 이 골이 얼마나 더 넓고 깊어질지는 알 수 없다.

두려운 건 앞으로다. 아들하고 대화할 때 “네가 대학을 갈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결혼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아이를 낳을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말을 자주 갖다 붙인다. 애는 당연히 이해 못할 텐데 일종의 방어 심리다. 내가 자라날 때 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 상당수는 얘가 사는 세상에서 하나도 안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러니까 언젠가 얘가 내 당연한 세상을 박살내려고 할 때 너무 놀라지 말자, 이걸 강하게 의식하다 보니 저런 입버릇이 생겼다.

그 간극이 사회통념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리 없다. 아들은 땅따먹기 구슬치기 딱지놀이를 하지 않을 것이다. 오락실은 얘한테 근현대사 시절 이야기 같은 게 될 거고.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문화가 아들이 성인 되도록 살아남을지 잘 모르겠다. 반면 얘가 가지고 오는 지가 사는 세상 이야기가 나한텐 문화충격적 신문물이 될 거다. 가령 국영수는 배우겠지만, 갑자기 코딩 교과서를 가져와서 “아빠 유형 2의 오류라는 게 뭐야? 물으면 해줄 수 있는 말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주의를 기울이더라도, 그러니까 혜광고를 해강고로 잘못 알아먹지 않도록 긴장을 유지하더라도 아들이 서른 살 쯤 됐을 때 우리 사이엔 대화나 이해가 성립할 수 있을까. 나와 아부지 사이 대화를 곰곰이 곱씹어봐도 소재는 정치 직장, 그리고 당신 손주들이나 강아지 정도다. 한 세대가 더 흘렀을 때 아들과 나 사이에 이런 정도 대화라도 가능할까. 아들한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자전거를 타는 데 만큼은 관심을 둬줬으면 좋겠다는 거다.

제주 해안가를 따라 난 환상자전거길 종주에 3번이나 도전했지만 번번이 완주를 못했다. 풍광은 이름 그대로 환상적이다. 어젯밤 잠들기 전 내게 속상한 일들을 털어놔 준 것처럼, 거기를 달리면서 네 학업 관심사 실망 연애 성적 취업 희망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다. 아빠는 심각한 길치이긴 한데, 거긴 해안가 따라 달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까 길 잃어버릴 염려는 없을 거야. 김민주 기자 min87@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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