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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85> 팔도 회무침

색은 다 붉어도 맛은 다르다…지역성 담아 무친 바닷가 간편식

  •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6-09-01 19:35:26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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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무침 재료는 지역별로 제철 생선을 쓴다. 사진은 낙동강 기수지역의 꼬시래기(망둑어)와 낙동 김을 함께 무친 꼬시래기김무침.
- 영양가 맛 식감 꽉 채운 한그릇
- 안주로, 끼니로 간단하게 준비

- 지역·가게마다 고유한 양념장
- 흉내낼 수 없는 맛 정체성 지녀

- 꼬시래기 어렝이 등 특산 어종
- 찾아가야만 맛보는 제철 별미

물회와 더불어 회무침만큼 바닷가 마을 사람들에게 다양하게 소용되는 음식이 또 있을까? 매콤하면서도 새콤달콤한 회무침은 입이 깔깔하고 식욕이 없을 때 입맛 다시는 데 안성맞춤이다. 아울러 제철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과 푸들푸들한 채소를 함께 넣어 영양가도, 맛도, 식감도 모두 충족하는 기꺼운 음식이기도 하다.

주위에 나는 허튼 생선과 밭의 채소 몇 줌 뜯어서 설렁설렁 무쳐내면 되니 장만하기도 쉽다. 이를 정겨운 술자리 안주로 내도 좋고, 밥과 비벼 회무침 비빔밥으로, 국수와 함께 비벼 회무침 국수 등의 끼니로도 좋다. 뱃사람들의 노동식으로도 간편하게 먹을 수 있겠다.

듬성듬성 썰어낸 생선회에 아삭아삭한 채소를 한 양푼 가득 넣고, 이를 초장 양념에 무심하게 설렁설렁 손으로 무쳐내면 회무침 한 접시가 뚝딱 장만이 된다. 이렇게 잘 무쳐놓은 회무침 한입 가득 입에 넣으면, 생선회의 진한 풍미, 싱그럽고 쌉쌀한 채소의 식감, 새콤달콤하면서도 혀를 얼얼하게 하는 강렬한 양념 맛이 한데 어우러진다. 여기에 곁들여 입안을 다스려 주는 들큼한 막걸리 한 잔이면 참으로 든든해지는 것이다.

■삶의 지혜 담긴 음식

서해와 남해, 동해 해역에 따라 다른 제철 어종이 회무침 재료로 쓰인다. 사진 위에서부터 간재미회무침, 밴댕이회무침, 웅어회무침, 서대회무침, 눈볼대회무침, 따개비거북손회무침.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인 지형적 특성 덕분에 지역별로 독특하고 개성적인 바다 음식이 많다. 특히 동해 서해 남해가 각각 기후와 식생, 해양 생태의 차이 또한 뚜렷하기에, 계절 따라 어류를 비롯한 해산물이 서로 다르고 이를 조리하는 방식 또한 차이가 난다. 그래서 저마다의 특성을 가진 해산물 향토음식이 지역마다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각 해역의 서로 다른 특성 속에서도 공통의 조리법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는 음식이 있으니, 바로 회무침이다. 물론 지역마다 각기 활용하는 해산물과 특성에 따라 조리 방식은 서로 다를 수 있겠다.

회무침은 각 해역의 제철 생선이나 해산물을 장만해 두었다가 갖은 채소를 넣고 쓱쓱 비벼서 먹는 음식이다. 제철에 나는 흔한 식재료로 설렁설렁 해 먹던 음식이기에 쉬 먹을 수 있고, 가격 또한 저렴해 호주머니 가벼운 서민들에게는 아주 흡족한 음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생선 외에도 여러 식재료와 강한 양념을 활용하기에 생선회 본연의 내밀한 맛을 즐길 수 없는 단점 또한 있다.

그런데도 회무침을 널리 먹어온 이유는 뭘까? 한때 활어 운송시스템이나 냉장 시설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고급 횟감 이외의 해산물 대부분은 선어 형태로 유통되었다. 생물의 유통기간이 길어지다 보면 당연히 해산물을 먹고 식중독 등에 노출되기도 한다.

이를 막고자 회무침 양념장에 살균 효과가 있는 식초를 활용하였고, 새콤달콤하면서도 칼칼한 양념 맛의 회무침을 다양한 음식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회무침은 식초 베이스의 초고추장 양념이 배앓이를 예방하기에 그 시절 사람들의 지혜가 담긴 음식이란 것이다.

원래 생선회 본연의 맛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이 회무침은 썩 매력적인 음식은 아니다. 우선 생선 이외에 여러 식재료가 어우러져 생선회 자체의 맛을 살릴 수 없는 데다, 초고추장을 양념 베이스로 하기에 생선 자체의 내밀한 맛도 즐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무침의 주 식재료는 주로 살이 무른 생선이나 체취가 강한 붉은 살 생선들이다. 이를 뼈째 썰어 식감을 살려 먹거나 강한 양념으로 무쳐 먹었기에, 담백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의 활어회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하겠다.

그래서 전국에서도 회무침을 즐기는 지역에는 공통점이 있다. 회무침에 쓰이는 고추장이나 식초를 직접 담근다는 것. 이 때문에 가게마다 흉내 낼 수 없는 맛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각각의 고추장과 식초의 맛이 다르기에 가게마다 회무침 맛 또한 다른 것도 큰 특징 중 하나이다.

특히 포항 지역에는 고추장을 중요하게 여겨 아무리 비싸도 좋은 고춧가루와 오랜 세월을 묵혀 고추장을 담근다. 이렇게 담근 고추장은 초고추장의 기분 좋은 매운맛과 달큼한 감칠맛을 올려준다.

식초 또한 회무침 맛을 좌우하는데, 통영 여수 등지에서는 직접 담근 막걸리를 발효시킨 막걸리 식초로 초고추장을 만든다. 특유의 풍미가 깊고 감칠맛이 좋은 데다 부드러운 신맛이 생선회의 본연의 맛과 잘 어울리기에 그렇다.

■해역별로 맛도, 재료도 제각각

그럼, 해역별 회무침의 특징과 대표적인 회무침의 식재료에 대해 살펴보자. 동해의 회무침은 차갑고 깊은 바다에서 잡힌 싱싱한 생선을 새콤달콤한 양념에 무쳐내어, 쫄깃하고 꼬들꼬들한 식감과 깊은 감칠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주로 기름가자미(미주구리) 청어 명태 등을 회무침으로 활용한다. 포항 지역의 포항식 물회는 기존 회에 다양한 채소와 해조류 등을 채 썰어 비벼 먹도록 제공하기에 큰 범주로 보면 회무침 계열이라 할 수 있다. 대표 식재료는 참가자미, 꽁치, 오징어 등이 있겠다.

서해안 지역 회무침은 갯벌과 얕은 바다에서 잡히는 독특한 제철 어종을 사용하며, 뼈째 씹히는 오돌오돌한 식감과 새콤달콤한 양념이 어우러져 감칠맛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서해 중부 지역에는 밴댕이 실치 웅어 갱개미(가오리) 등의 어류와 바지락 등을 회무침으로 활용한다.

서해 남부와 남해 서부의 남도 지역은 남해와 서해의 풍부한 해산물을 바탕으로 새콤달콤한 초고추장 양념에 톡 쏘는 맛이나 진한 감칠맛을 더하는 것이 특징이며, 다양한 제철 식재료와 함께 버무려 낸다. 홍어 간재미(가오리) 서대 준치 전어 문저리(문절망둑) 등과 꼬막 등의 조개류 등을 조물조물 무쳐낸다.

남해 동부 경상도 지역은 화끈하고 진한 양념으로 입맛을 강하게 돋우는 것이 특징이다. 멸치 물메기 꼬시래기(망둑어) 숭어 눈볼대 등과 복어껍질 등이 회무침으로 소용된다. 제주에서는 자리돔과 어렝이(황놀래기)를 주로 무쳐 먹는데, 특이한 점은 양념으로 된장을 쓰는 경우가 많고 식초와 초피나무 잎을 넣어서 새콤하면서도 구수하게 무쳐서 먹는다는 것이다.

대구 경북 지역에서는 데친 오징어 고둥 논우렁이 등을 붕장어 선어회와 넉넉한 채소에 함께 넣고, 칼칼한 양념으로 무쳐낸다.

한강 금강 낙동강 등 큰 강을 끼고 있는 지역에서는 웅어회를 무쳐 먹기도 한다. 전남 여수권역의 따개비, 거북손을 이용한 회무침이나 경남 사천권의 붕장어 치어인 앵아리무침, 부산 낙동강 기수지역의 꼬시래기(망둑어)와 낙동 김을 함께 무친 꼬시래기김무침 등도 독특한 지역 회무침들이다.

이들 회무침용 식재료는 활어 상태로 보존하기 어려운 어족이나 생산량이 많은 해산물을 활용한다. 그러하기에 한때는 회무침을 대량으로 무쳐내 마을이나 가문잔치 때 잔치 음식으로 널리 쓰였다. 생선과 채소를 풍성하게 섞어 여러 사람이 함께 나눠 먹는, 우리네 전통의 공동체 음식 중 하나였던 것.

옛사람들의 삶의 지혜가 녹아있고,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온 지역 사람들의 생활이 반영된 음식, 회무침. 이제는 지역별 제철 별미로나 남아 있을 정도이니 아쉬운 마음이 크다. 늘 지키고 보존했으면 하는 마음 또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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