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정찬은 1983년 중편소설 ‘말의 탑’을 무크지 ‘언어의 세계’에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그는 올해 등단 43주년을 맞이하기까지 창작 현장에서 살아남았고, 자기 문학관을 지켜냈으며, 예술가로서 성취했고, 여전히 쓴다. 작가로서 극존칭이 자연스럽게 붙을 시점에 펴낸 새 장편소설 ‘그들이 있었던 곳’에서 그는 등단 작품인 ‘말의 탑’을 떠올린다.
정찬은 이번 책 ‘작가의 말’에서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광주 시민에게 집단 발포한 1980년 5월 21일,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발표한 ‘광주사태에 즈음한 담화문’을 비판한다. “그 참혹한 ‘말의 거짓’과, 거짓을 그대로 보도하는 언론에 절망했습니다. 그 절망이 저로 하여금 세계와 말의 관계를 천착하게 했습니다. 저의 등단 소설 표제가 ‘말의 탑’인 것은 그런 연유에서였습니다.”
이 소설은 5·18 광주민주항쟁의 시간을 잘게 나눈다. 그 시각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여러 각도에서 꼼꼼히 그린다. 그런데 이 소설은 과묵하게 느껴진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냉철하게 쓰는 하드보일드의 느낌도 있다. 그렇게 작가가 그린 ‘하드보일드 광주’에는 치열한 반성과 깊은 성찰이 흐른다. 작가 정찬의 작품답게 인간 정신세계로 깊이 들어가 본질에 닿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