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지난 3월 일본 도쿄 미나토구에 문을 연 사우나 ‘타카나와 사우나스’의 사우나실. 이곳은 감각적인 인테리어와 다양한 콘셉트의 사우나실, 공용 라운지, 식당 등 부대시설을 갖춰 젊은 세대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김태훈 기자 |
- 2019년 日서 사우나 대유행
- 자연스럽게 일상·문화로 안착
- 젊은층 취향저격 대형 업체들
- 감각적 인테리어로 속속 개점
- 다양한 콘텐츠로 재미도 충족
- “술자리 비용이면 즐길 수 있어”
- 씻는 곳 넘어 커뮤니티로 기능
‘술자리’ 대신 ‘사우나’.
일본에서 20·30대 젊은 직장인이 회사 동료와 사우나를 찾는 일이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한바탕 땀을 흘린 뒤 ‘사밥’(サ飯·사우나 이후 먹는 식사를 가리키는 신조어)과 맥주 한 잔을 곁들이며 대화를 나누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도 진탕 술만 마시는 회식 문화는 보기 힘들어졌지만, ‘회식 뒤 사우나’가 아닌 ‘회식 대신 사우나’는 조금 낯설다.
특히 도쿄에는 젊은 세대 취향에 맞춘 ‘신상’ 사우나도 속속 문을 열고 있다. 인증 사진을 부르는 감각적인 인테리어는 물론, 수건을 펄럭여 뜨거운 열기를 고루 퍼뜨리는 퍼포먼스 ‘아우프구스(Aufguss)’, 자작나무 가지로 몸을 두드리며 땀을 빼는 ‘위스킹(Whisking)’ 등 사우나의 특성을 살린 이색 콘텐츠가 젊은 목욕객의 발길을 끌고 있다.
■‘현상’ 넘어 ‘일상’이 된 목욕 |
| 2018년부터 센토 재생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는 비영리단체 ‘센토토마치’ 멤버들. 왼쪽에서 세 번째가 단체를 이끌고 있는 쿠류 하루카 대표이다. 센토토마치 제공 |
일본의 ‘사우나 붐’은 국내에도 제법 알려진 이야기다. 국내 목욕업계가 줄폐업으로 신음하던 2019년, 일본에선 오히려 사우나가 하나의 유행으로 떠올랐다. 만화가 다나카 가츠키가 그린 사우나 문화를 주제로 한 만화 ‘사도(サ道·2011)’가 이 시기 드라마로 만들어지며 큰 인기를 끈 것이 계기였다.
여기까지의 흐름은 웹툰 ‘목욕의 신(2011~2012)’이 유행했던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작품의 인기가 일시적인 화제에 그치지 않고 실제 목욕 문화의 변화로 이어졌다. 목욕 애호가들은 서로를 ‘사우너’라고 부르며 목욕을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사우나 시설 정보와 후기를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사우나이키타이(サウナイキタイ)’는 이용자 수 100만 명을 돌파했고, 사우나실에서 쓰는 모자와 개성 있는 디자인의 수건 등 관련 상품도 잇따라 출시됐다. 그렇게 젊은 세대 사이 목욕은 취향과 소비, 커뮤니티를 아우르는 하나의 문화가 됐다.
붐의 정점은 지났지만 목욕은 일상에 안착하는 분위기다. 특히 대형 사우나를 중심으로 목욕 문화의 체질이 바뀌고 있다. 일본은 전통적인 대중목욕탕인 센토를 ‘일반공중욕장’, 사우나나 슈퍼센토(식당과 카페 등 편의시설을 갖춘 대형 목욕탕) 등 그 밖의 목욕 시설을 ‘기타공중욕장’으로 분류해 관리한다. 도쿄도보건의료국에 따르면 도쿄 내 일반공중욕장은 2019년 542곳(3월 기준)에서 지난해 430곳으로 줄었다. 반면 기타공중욕장은 같은 기간 1449곳에서 1461곳으로 늘었다. 낡은 동네 목욕탕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는 사이 새로 문을 연 사우나가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양상이다.
■씻는 공간에서 머무르는 공간으로 |
| 일본 도쿄 시부야구의 사우나 ‘시부야 사우나스’에 20대 목욕객들이 들어서고 있다. |
도쿄의 수많은 사우나 중 2022년 문을 연 ‘시부야 사우나스’(도쿄 시부야구)는 사우너 사이에서 ‘성지’로 불린다. ‘사도’를 그린 다나카 카츠키가 직접 기획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이곳은 매년 12만 명의 목욕객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가 높다. 최근에는 외국인 관광객도 부쩍 늘어 전체 이용자의 15%가 해외 목욕객이다. 뜨거운 인기에 힘입어 지난 3월에는 2호점 ‘타카나와 사우나스(도쿄 미나토구)’가 문을 열었다.
지난달 15일 타카나와 사우나스를 찾았다. 평일인 탓인지 낮까지 한산했던 사우나는 오후 6시가 되자 목욕객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직장인으로 보이는 이들과 책가방을 멘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뒤섞였다. 즐기는 방식도 다양했다. 가부좌를 틀고 명상하듯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행과 대화하며 여유를 즐기는 이들도 있었다. 오후 7시가 넘자 인기 있는 사우나실 앞은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 생길 정도로 붐볐다.
일본 젊은 세대가 사우나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우나스의 후루야 쿠란도(45) 대표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사우나는 일종의 커뮤니티 역할을 하고 있다”며 “팬데믹 이후 술자리나 단체 회식 등이 줄면서 사우나에서 함께 땀을 흘리며 소통하는 이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곳은 단순히 몸을 씻는 목욕탕보다 복합 웰니스 공간에 가깝다. 고음질 스피커를 설치해 명상 음악을 들으며 즐기는 ‘사운드 사우나’, 전문가가 블렌딩한 아로마 오일이 섞인 증기를 쐬는 ‘발도 사우나’, 도심 경관을 바라보며 땀을 흘릴 수 있는 ‘파노라마 사우나’ 등 다양한 콘셉트의 방이 마련돼 있다. 라운지와 식당도 갖춰 반나절씩 머물며 휴식과 교류를 즐기는 이가 많다.
사우나스의 이용료는 4시간 기준 4400엔(한화 4만 원 상당). 도쿄 내 다른 신상 사우나 시설도 비슷한 수준이다. 흔히 떠올리는 목욕비로는 저렴하지 않지만, 술자리 한 번 비용과 비교하면 크게 부담스럽진 않다. 이날 사우나에서 만난 한 30대 목욕객도 “직장 동료와 함께 사우나를 하러 왔다”며 “술자리 한 번 비용이면 여유롭게 휴식을 취할 수 있어서 자주 온다”고 말했다.
사우나 특성을 살린 콘텐츠도 활발히 생기고 있다. 최근에는 ‘아우프구스’가 인기다. ‘아우프구스 마스터’라 불리는 전문가가 수건을 펄럭여 사우나실 안의 열기를 고르게 퍼뜨려 주는 퍼포먼스다. 마스터는 춤을 추듯 우아하게 움직이며 뜨거운 공기를 순환시키고, 허브와 오일을 블렌딩한 향을 증기에 실어 보내기도 한다. 2022년부터 최고의 마스터를 가리는 ‘일본 아우프구스 챔피언십’ 대회가 열리는 정도다. 후루야 대표는 “사우나는 몸을 씻는 공간을 넘어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관계를 맺는 커뮤니티형 문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