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리마을 공동체 기록 프로젝트
- 작가는 풍경을, 지역민은 집을
- 40여 명 함께한 그림·영상 작업
- 낭만시간연구소 내달 5일까지
저 멀리 바다가 보이는 ‘오션뷰’ 아파트다. 창문이 빽빽한 복도식 옛 아파트지만 이만한 풍경을 가진 집을 찾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아파트 벽면에 선명하게 보이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로고. ‘상리마을’로 불리는 부산 영도의 영구 임대 아파트, 동삼주공아파트 2단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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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정 작가가 지난 22일 부산 동구 초량동 낭만시간연구소에서 영도 상리마을 주민과 함께 그린 작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성효 선임기자 |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가면 알록달록하고 푸릇한 꽃과 나무가 울창하다. 조금은 적막해 보이는 아파트 복도를 햇볕이 따스하게 감싸고, 고양이들이 터줏대감처럼 곳곳을 지키고 섰다.
복도를 따라가며 집마다 대문을 여니 정겨운 풍경이 펼쳐진다. 정성껏 가꾼 꽃 화분이 가득한 베란다, 성모마리아상을 소중히 모신 정갈한 책상, 숫자가 잘 보이는 달력과 벽면을 가득 채운 가족사진…. (행복한) 또 (즐거운) 나의 집이다.
도시 공간을 기록하는 지역 리서치 프로젝트로 입지를 다진 김민정(41) 작가의 신작을 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작가가 영도 상리마을에서 진행한 공동체 기록 프로젝트 ‘( ) 나의 집’ 전시가 낭만시간연구소(부산 동구 초량동)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에는 작가와 상리종합사회복지관이 지난해 상리마을 주민 42명과 함께 한 ‘나의 집’ 그리기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소개됐다. 작가가 직접 그림으로 기록한 상리마을의 풍경과 주민들이 직접 그린 자신의 집 풍경, 그 과정을 기록한 영상과 결과물이 담긴 책. 모두 그곳 주민의 삶이 담긴 귀한 자료이다. 지난해 10월 복지관에서 진행한 전시를 토대로 작품을 좀 더 가다듬고 책과 영상을 새롭게 더해 이번 전시를 꾸몄다.
김민정 작가는 재개발 지역을 비롯해 동구 매축지 마을, 감만동 지도 만들기, 몰운대 생태 리서치 ‘1제곱미터의 우주’, 완월동 기록 프로젝트 등 사라지는 도시 공간을 그리며 남기는 작업을 이어왔다. 이번 프로젝트는 상리마을 ‘공간’을 기록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곳 주민의 집에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그림을 그리며 ‘공간의 삶’을 남긴 것이어서 더 의미가 있다.
지난 22일 낭만시간연구소에서 만난 김민정 작가는 “그동안 나의 시선으로 본 풍경을 기록했다면 이번에는 다양한 삶을 접하고 그것을 남기는 작업이어서 의미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영구 임대 아파트이기에 그들을 향한 시선이 다를 수 있지만, 주민이 꽃과 나무를 가꾸고 공동체를 꾸려 사는 평범한 모습에서 어둠과 밝은 면모가 공존하는 공간이란 생각이 들어 작품에 빛과 그림자가 대조되는 풍경이 자주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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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에 소개된 주민 주춘자 씨의 그림.
낭만시간연구소 제공 |
예술과 복지를 더한 프로젝트는 상리마을 주민에게 새로운 성취감과 즐거움을 안겼다. 더불어 그들이 남긴 결과물을 보다 보면 과연 ‘나의 집은 어떤 모습인가’란 생각이 떠오르며 자신의 집에 ()를 붙여보게 된다. 각자의 삶이 녹아 있는 집. 집이 가지는 의미와 그 공간을 어떻게 채울지에 대한 생각도 교차한다.
김민정 작가는 “혼자 바라보는 도시의 풍경에선 사람이 잘 보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리서치를 위해 지역 곳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다 보니 그곳에 사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됐다”며 작업이 확장하고 있음을 알렸다.
이어 “빠르게 변하는 도시의 모습에서 공허함과 허탈감을 느낄 때가 많다”며 “그림과 글로 현재의 모습을 남기는 기록 작업이 도시의 이야기를 미래로 이어주고, 도시 공간을 더 풍성하게 채워줄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다음 달 5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