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만년 뒤 이 땅에 온 외계인들
- 닭뼈 무더기 놓고 진지한 토론
- 세상 덮치는 불안한 미래 상상
‘치킨 행성’이라는 단어에 웃음이 나왔다. 전 지구인이 그토록 맹렬하게 치킨을 먹어대니 치킨 행성이지 하는, 단순한 반응에서였다. 그랬는데, 책의 프롤로그를 보면서 웃음은 쏙 들어갔다. 프롤로그를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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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킨 행성의 비밀’에 실린 키박 작가의 그림. 창비 제공 |
20만 년 뒤의 지구. 인류는 멸망했다. 외계인 지질학자들은 한 새의 뼈를 보면서 토론한다. “이 새의 뼈는 지구 전역에서 발견된다” “다리 가슴 날개 각각의 뼈 발견율이 매우 높다” “이상한 점은 온전한 형태로 발견되는 경우는 수만, 수십만 마리가 한꺼번에 발견된다는 것” “콘크리트, 플라스틱, 인공 방사능 물질 등 자연에 존재하지 않던 화학 물질이 대거 출현해 지구라는 행성을 뒤덮었다. 도대체 이 새와는 어떤 연관이 있었을까” 등등.
외계인 지질학자들의 토론은 진지하다. 우리는 닭이 어떤 환경에서 키워지는 지, 집단 폐사하거나 살처분된 닭들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일일 일인 일닭’이라고 할 만큼 많은 치킨을 먹어 치웠다. 다리만, 날개만 골라 먹기도 했다. 달걀도 매일 먹었다. 외계인들의 토론이 그 사실을 콕 짚어준다.
기후 변화와 인류세에 주목하며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꾸준히 기록해 온 환경 저널리스트 남종영의 ‘치킨 행성의 비밀-닭으로 보는 오늘의 지구’. 생생한 취재를 바탕으로 닭과 인간이 뒤엉킨 3000여 년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책이다. 닭을 중심으로 인류세, 기후 위기, 공장식 축산, 동물권 등 쉽지 않은 주제들을 쉽게 설명한다. 한국출판문화상 교양 부문 저술상을 수상한 작가의 내공이 느껴진다.
작가는 ‘인류세(Anthropocene)’ 개념을 소개하며, 1950년대를 기점으로 지질 시대를 새로 정하자는 주장이 있을 만큼 인류가 지구 환경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는 점을 설명한다. 어떤 과학자들은 인류세를 대표하는 표식 후보로 닭 뼈를 제안했다. 세계 어디에나 닭 뼈가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매년 닭 10억 마리가 죽는다. 지구 전체로는 700억 마리가 죽는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닭이 죽고 있다.
닭의 공장식 축산은 미국 동부에서 시작됐다. 1923년 한 농부가 산란용 암평아리 50마리를 주문했는데 업체가 실수로 500마리를 부쳐 주었다. 농부는 “그래, 한번 키워 보자!” 마음먹었고, 좋은 값에 고기용 닭을 팔게 된다. 농부는 점차 사육 규모를 키웠고, 주변 이웃들도 고기용 닭 사육에 뛰어들었다. 정부와 자본이 개입했다. 살이 많고 부드러운 닭을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인위적으로 교배하고, 항생제도 잔뜩 먹였다. 그 덕분에 현대의 인류는 싼값으로 단백질을 섭취하고, 가난과 영양실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닭들은 급속도로 불행해졌다. 고기가 될 운명의 닭들은 도축장으로 실려 갔다. 암탉들은 A4 용지 한 장 크기의 케이지에 갇혀 하루에 거의 한 알씩 달걀을 낳았다. 더 이상 달걀을 낳지 못하면 남은 것은 죽음이다.
저자는 너무도 많은 닭고기와 달걀을 먹고 있는 인류에 조용하게 위협이 닥치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 책은 조류 인플루엔자의 변이와 항생제 내성의 사례를 소개하며, 단순한 진실을 상기한다. “닭이 아프면 인간도 아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