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부문 신시유 씨
- 공학·정치학 등 해외 유학생활
- 치열했던 삶이 詩心 밑거름 돼
# 시조 부문 오시내 씨
- 방통대 다니며 시조 매력 ‘흠뻑’
- 내 속의 문학 씨앗 발화하더라
# 단편소설 부문 조정규 씨
- 변호사 된 뒤 문학 손놨었는데…
- 몸속 창작 DNA 스위치 켜졌죠
# 동화 부문 조현숙 씨
- 교직 때부터 동화·소설·수필作
- 손녀에 들려줄 이야기 쓰고파
문학의 힘을 깊이 느낀 대화였다. 예술 작품 창작은 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가꾸는 일임이 틀림없다. 202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인 4인을 인터뷰했다. 영예의 당선인은 다음과 같다. 시 부문 신시유(35·본명 신미주·당선작 ‘그해 겨울’·서울), 시조 부문 오시내(62·본명 안영미·당선작 ‘직장은 백 그램’·경기도 안성), 단편소설 부문 조정규(49·당선작 ‘4664’·서울), 동화 부문 조현숙·67·당선작 ‘아이라는 이름의 북’·대구) 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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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영예의 얼굴들. 왼쪽부터 시조 부문 오시내, 동화 부문 조현숙, 단편소설 부문 조정규, 시 부문 신시유 당선인. 김성효 선임기자 kimsh@kookje.co.kr |
202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응모 열기는 뜨거웠다. 2024년 10월 한강 소설가가 한국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는 경사가 나면서, 2025년 신춘문예 참여 인원은 크게 늘었다. 시일이 좀 지났으므로 2026년은 열기가 좀 식으려나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국제신문 2026년 신춘문예 응모 현황은 이렇다. 시 601명·2316편(전년도 508명), 시조 157명·623편(〃 170명), 단편소설 321명·330편(〃 361명), 동화 239명·245편(〃 263명).
동화·단편소설·시조는 조금 줄었지만, ‘한강 노벨상’ 효과를 본 전년도와 비슷하다. 시는 크게 늘어 국제신문 신춘문예에서 600명 선을 처음 돌파했다. 이 모든 응모 가운데 부문별로 단 한 사람, 단 한 작품만 뽑는 신춘문예 관문을 뚫고 당선인 4인은 예술가로서 출발선에 섰다.
■시의 신시유
시 당선인 신시유 시인과 나눈 대화는 자주 놀라움을 안겼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 유학을 떠났다”고 했다. 중학교 때 싱가포르로 가 치열하게 공부해 싱가포르국립대학교(NUS) 공대에 들어갔다. NUS는 세계 전체 대학 순위 평가에서 톱 10에 예사롭게 들어가는 엄청난 학교인데, 검색해 보니 공대는 더 유명하다. “그런데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적성에 맞지 않았다. “여기서 공부해 공학자가 되는 내 미래가 도무지 그려지지 않더라”고 그는 떠올렸다.
전공을 정치학으로 바꿨다. 삶을 바꾼 결단을 일찍 경험한 셈이다. “정치학으로 바꾸고는 참 좋았어요. 재미있었고요.” 하지만 진로 선택이 쉽지 않았다. 미래를 놓고 “혼자 막 땅굴을 파듯이” 고심했다. 신시유의 선택은 다시 유학이었다. 영국의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 대학원에 진학해 2017년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LSE도 세계 명문이다. “영국 있을 때 ‘암울한’ 날씨와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스트레스가 겹치면서 패닉(공황) 수준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때 체험은 시의 거름이 되기도 했다.
그는 문학을 만났다. 문학을 만나 좋아졌다. “최고만 살아남는 그런 세계에서 살아남으려고 했던 과거의 날들이 보였고 이해가 됐다”고 신시유 시인은 말했다. 단편소설과 시를 읽고, 시·소설 쓰기를 배웠다. 문학의 품에서 삶을 좀 더 끌어안게 된 그는 열심히 시를 배우고 일하면서 2020년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 들어가 정치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치열하게 살며 정치학도를 거쳐 시인이 된 그는 “문학에서 많은 것을 얻고 배운다”고 조용히 말했다.
■동화의 조현숙
동화 당선인 조현숙 동화작가는 온몸, 온 마음이 문학 자체인 사람 같았다. “교사로 일했는데 2022년에 퇴직하기 직전 꿈이 하루 종일 씻지도 먹지도 않고 봉두난발로, 아파도 온몸에 파스만 바르고 글 쓰는 거였어요. 그걸 했어요. 살림은 남편이 다 해줬습니다. 그렇게 한 3년 했죠.” 그는 대구 문단에서 알려진 수필가이다. 2020년 제15회 삶의 향기 동서문학상 금상을 받으며 ‘월간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한 뒤 천강문학상 등 상도 많이 받았다. 2024년 서울문화재단 지원을 받아 수필집 ‘꽃을 세우다’를 냈다.
“글을 쓰려고 국문학과에 갔고, 소설로 대학 때 계명대 효성여대 등의 공모 문학상을 여럿 탔고, 졸업 전 신춘문예 최종심에 올랐어요. 교사 땐 말썽 피운 아이들 벌칙이 시 한 편 외우기였습니다.” 그가 회상했다. “글이 답보한 시절이 있었어요. 말썽 피우곤 하던 학생을 불러 물었죠. 너는 왜 가만 있지 못 하니? 그 애가 말했어요. 선생님, 저는 막 근질근질해서 가만히 있으려 해도 안 돼요.” 그때 느꼈다. “너도 그렇구나. 내게 글쓰기가 그런 것처럼.” 다시 글을 썼고, 수필가로 등단했다. 그는 동화·소설·수필을 모두 쓴다. 이번 당선 통보받을 때도 작품을 고치고 있었다고 한다. “애들 키우던 젊은 날부터 동화를 공들여 썼습니다. 하지만 포기하려 했어요. 하도 신춘문예에 안 되니까.” 마음을 다잡은 이유는 두 가지였다. “손녀와 도서관에 다니다 보니 이 아이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동화로 우리말·우리글의 아름다움을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오랜 꿈이 있습니다.”
■단편소설의 조정규
그는 변호사다. 이젠 소설 쓰는 변호사다. 단편소설 당선인 조정규 소설가에게 부문 별 단 한 사람만 뽑는 일간지 신춘문예를 뚫은 드문 소설가·변호사가 된 소감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영문학과 다닐 때 문학을 조금 공부하긴 했는데, 쟁쟁한 거장들 작품을 보며 나는 뭐 이쪽으로는 안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졸업 뒤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몇 년 일하다 보니 “이렇게 살다가 가는 건가” 싶더란다. 29세 때 사직하고 사법시험에 도전했다.
몇 년 공부한 끝에 변호사가 됐고, 문학은 놨다. “판결문·법조항을 읽고 논리정연한 글만 썼죠. 시도 소설도 거의 못 읽었습니다.” 어느 정도 안정된 시기가 오자, 몸속 문학 DNA 스위치가 딸칵 켜지기라도 한 듯 그는 소설을 배웠다. “5년 정도 됐습니다. 이젠 많이 읽죠. 편혜영 이기호 작가 같은 분들의 작품이 특히 인상 깊습니다.” 그는 “법률가의 문장에서 소설의 문장으로 갈아타는 법을 배우기까지 2, 3년이 걸리더라”고 했다. “이제는 습작이 20편쯤 된다”고 그는 덧붙였다.
“왜 쓰는지 자문해 봅니다. 이야기를 창조하고, 그 이야기로 사람들과 호흡하고, 그렇게 창조한 이야기가 딱 완성됐을 때 쾌감이 아주 큽니다. 이야기에 매료돼 계속 만들다 보니….” 법조인으로서 치밀·치열하게 글을 해체·분석·재조립한 체험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업무상 AI를 많이 쓰는데 한국어가 코딩하기도 까다롭고, 고분고분하지 않은 언어입니다. 그런 저력 있는 한국어로 끝까지 버티며 계속 쓰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시조의 오시내
시조 당선인 오시내 시조시인은 당선 통보가 왔을 때 “콩을 고르고 있었다”고 했다. 무심히 저녁 지을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는 뜻으로 여겼다. 그렇지는 않았다. “당선 통보 전화가 올지 말지 생각을 좀 안 하려고 콩을 고르는데, 자꾸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는 지난해만 해도 신춘문예 여러 곳의 최종심에 올랐다. 2024년 1월과 2025년 2월에는 한국 시조문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는 중앙시조백일장에서 월 장원을 했다. 그는 ‘전화’를 기다릴 만했다.
시조 당선작 ‘직장은 백 그램’에서 직장은 일터이기도 하고, 사람의 장기를 뜻하기도 한다. 이 절묘한 중의법은 작품에 소름 돋는 긴장감을 주며 우리 사는 현실을 화들짝 환기한다. “저는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남사당로 박두진문학관에서 문화관광해설사로 일합니다. 2025년 2월 중앙시조백일장 장원을 한 제 작품이 ‘눈에 선하다’인데요, 앞 못 보는 분들이 문학관 오셨을 때 제가 해드린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시조입니다.”
그가 갈고닦아 응모한 시조는 생기 있고 우리 삶에 가깝고 힘이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현대 시조에 필요한 덕목이다. 오시내 시조시인은 “말이 날카로울 수 있다는 걸 어릴 때 일찍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일찌감치 했다. 젊은 날 문학에 빠져 살았다”고 떠올렸다. 시·소설·동화를 쓰다가 방송통신대학교 진학이 계기가 돼 시조를 만나 매력에 눈떴다. 시댁이 있는 부산이 친근하다는 그는 “한동안 문학을 못 했는데, 내 속의 문학 씨앗은 어느 시점에 결국 발화하더라”고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