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박물관에는 조선 후기 화원 이의양(李義養, 1768~?)이 그린 ‘황학루도’ 한 폭이 소장되어 있다. 긴 화폭의 상단에는 옅은 색으로 텅 빈 하늘이 펼쳐지고, 학 한 마리가 허공을 향해 천천히 날아오른다. 누대 위에는 검을 찬 선인이 피리를 불고 있고, 아래쪽에는 바위와 소나무가 둘러싼 정자에 서책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화면 전체가 적막하고 정제된 분위기 속에서도 묘한 긴장이 흐른다. 선인이 피리를 마친 뒤 곧 황학을 타고 하늘로 오를 것만 같다. 당나라 시인 최호의 시 ‘황학루에 올라서(登黃鶴樓)’가 지닌 쓸쓸하면서도 초월적인 정취를 이의양은 회화적으로 재현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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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화원 이의양이 그린 ‘황학루도’. 부산박물관 제공 |
황학루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의 황학산 위에 세워진 누각으로, 예로부터 신선 자안(子安)이 황학을 타고 내려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러나 이 누각이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은 뛰어난 경관보다 시문학의 힘이었다. 당나라 시인 최호가 이곳에 올라 읊은 “옛 사람은 이미 황학을 타고 떠나고, 황학루만 덩그러니 남았다”는 구절은 한 시대의 감성을 압축한 명시였다. 신선의 날갯짓이 떠난 자리, 흰 구름만이 남은 공간에서 인간은 시간의 덧없음을 느낀다. 이 시는 이백조차 감탄하며 붓을 꺾었다는 일화로 전해질 만큼 애송되었고, 고려 말부터 조선 문인들 사이에서도 수백 회에 걸쳐 인용될 정도로 널리 퍼졌다.
우리 화단에서 황학루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고려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신 이색의‘목은시고’에는 황학루도가 포함된 12폭 산수화 병풍을 감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미 이 무렵 황학루가 회화의 주제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선 전기로 접어들면 안평대군의 수장 목록 속에 안견의 ‘황학루도’와 ‘등왕각도(滕王閣圖)’가 함께 등장한다. 중국 회화와 시문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안평대군이 이 두 누각을 모두 그리게 했다는 사실은, 황학루가 조선 문인 사회에서도 잘 알려진 문화 상징이었음을 뜻한다.
성종 대에는 황학루도를 둘러싼 흥미로운 일화가 전한다. 성종은 ‘등왕각도’와 ‘황학루도’를 내어 승정원과 홍문관 학사들에게 율시를 짓게 하고, 이듬해에는 자신이 직접 그 그림 위에 시를 써 신하들에게 제비뽑기로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그 일로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으나, 그만큼 황학루가 조선의 군왕에게까지 문예적 영감을 불러일으킨 주제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의양은 조선 후기 통신사 수행화원으로 활약한 인물로, 본관은 안산(安山), 자는 이신(爾信), 호는 신원(信園)이다. 1811년 대마도 사행에 참여하면서 여러 산수화를 남겼으며, 정밀하면서도 운치를 잃지 않는 필치로 이름을 얻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산수화이나, 이번에 소개하는 ‘황학루도’는 그중에서도 드문 ‘시의도(詩意圖)’ 형식이다. 한 폭의 그림 속에 시와 철학, 이상과 현실의 경계가 함께 녹아 있다.
‘황학루도’는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다. 그것은 동아시아 문인들이 공유한 시적 정서와 문화적 기억의 풍경이며, 한 시대의 정신을 담은 예술적 상징이다. 박물관의 한 점 그림이 전해주는 것은 눈에 보이는 풍광 그 이상이다. 시와 그림이 서로의 언어로 대화하던 조선 회화의 깊이, 바로 그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