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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 꺼낸 바다 <54> 해가 지지 않은 영국의 시작 드레이크와 골든하인드 호

英 여왕 비호 받은 ‘당당한 해적’, 드레이크의 위세 상징하는 범선

  • 전은정 국립해양박물관 유물관리팀 학예사
  •  |   입력 : 2025-12-10 18:25:25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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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경제 중심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바뀌던 대항해 시대. 이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은 어떤 사람이 있을까. 교과서에서 본 여러 이름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최초로 아프리카 최남단에 도착한 바르톨로뮤 디아스, 인도에 도착해 최초의 유럽-동방 직항로를 뚫은 바스코 다 가마 등이 그들이다.
국립해양박물관에 소장된 ‘골든하인드 호’ 모형.
그렇다면 최초로 세계 일주에 성공한 ‘선장’은 누구일까. 일반적으로 최초로 세계 일주에 성공한 이로 마젤란을 기억하지만, 마젤란 자신은 에스파냐로 돌아오기 전 필리핀에서 전사했기에 이후의 항해를 이끈 것은 그의 부하였다. 그렇다면 그 주인공은 누구일까. 마젤란의 항로를 이용해 마젤란 이후 최초이자, 선장으로서 최초로 세계 일주에 성공한 인물. 프랜시스 드레이크이다.

15세기 장미전쟁이 끝나고 들어선 영국의 ‘튜더 왕조’는 ‘튜더스’나 ‘천일의 스캔들’ 등의 미디어 이미지처럼 갖가지 스캔들로 먼저 다가오는 감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영국 해군 발전의 전환점이자 해양 패권의 시작점을 이룬 시기이기도 하다. 제국주의 시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던 영국은, 사실 대항해 시대 초기만 해도 주요 수출품이 양털과 모직물이 전부인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에 밀린 유럽의 후발주자였다.

이런 영국의 해군 기반을 닦은 이가 튜더 왕조의 문을 연 헨리 7세, 6번의 결혼으로 자국의 종교까지 바꾸어버린 헨리 8세이고, 이후 에스파냐의 무적함대 ‘아르마다’를 격파하고 제해권을 이동시켜 ‘대영제국’의 기반을 다진 이들이 ‘해적여왕’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해적들(Elizabethan Sea Dogs)이다. 드레이크는 이들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었고, 해적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방식으로 부를 축적했다.

드레이크는 1568년 멕시코 산 후안 데 울루아에서 에스파냐 함대에 습격받은 사건을 계기로, ‘엘 드라케(용)’로 불릴 만큼 에스파냐 선박을 대상으로 한 약탈을 강화했다. 경쟁국 선박을 습격해 전력을 약화시키고, 동시에 자본까지 들여오는 해적업은 매우 수지맞는 일이었기에 여왕은 해적 행위를 비공식적인, 하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했다.

1577년 플리머스 항구에서 출항한 드레이크는 1580년 영국으로 돌아왔다. 남아메리카 남단 마젤란 해협을 통과한 후, 태평양을 횡단하고 희망봉을 통과해 귀항하는 세계 일주였다. 도중에 에스파냐의 선박을 약탈하는 것은 물론 잊지 않은 채. 막대한 부와 함께 귀환한 드레이크에게 여왕은 에스파냐 펠리페 2세의 인도 요구를 무시하고 배에 승선해 기사 작위를 서임했다. 바로 이 세계 일주를 함께 하고 여왕이 작위를 내린 갑판을 제공한 선박이 ‘골든하인드 호’이다. 이 범선을 실물 크기로 복원한 복제품이 런던 템스 강과 접한 부두에 전시되고 있다.

만일 영국 여행이 멀다 싶으면 국립해양박물관 4층에서도 축소 복제한 이 선박을 볼 수 있다. 축소를 감안하더라도 생각보다 작은 사이즈에, 그 시절 이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도록 만든 강렬한 감정과 동기들에 놀라움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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