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야 비로소 진가를 알게 되는 노래들이 있다. 대한민국 가왕 조용필의 노래들이 그렇다. 조용필의 노래들은 미취학 아동 시절부터 의식조차 못 할 정도로 익숙한 배경음악처럼 흐르고 있었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오히려 조용필의 안티에 가까웠다. 가까이서 처음 목격한 ‘팬덤’이 바로 조용필의 오빠부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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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왕 조용필(왼쪽)과 걸그룹 엔믹스. 엔믹스 사진 출처=JYP 제공 |
그 시절 ‘가요 톱텐’은 언제나 조용필이 1위를 하는 TV 프로그램이었다. 그때마다 함께 TV를 보던 외사촌 누나들이 유난스럽게 비명을 질러댔기에 그에 대한 반감으로 잠깐이나마 조용필과 라이벌이었던 가수 이용을 보란 듯이 응원하기도 했다. ‘고추잠자리’ 역시 그랬다. 다 큰 남자어른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엄마야!’를 외치는 모습은 태권도장을 다니던 어린이에게 기묘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추억의 히트곡이 오랜 세월을 지난 후 다시 돌아와 가슴에 꽂히게 된 순간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명장면 때문이다. 우습고도 처절한 난동극과 함께 폭발하듯 터져 나오던 ‘고추잠자리’의 여운은 지금까지 머릿속을 어지럽게 빙빙 맴돌고 있다. 추석 연휴에 방영된 조용필 콘서트‘이 순간을 영원히’에서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대한민국 최고령 오빠의 모습으로, 실제로 우리 어머니보다도 오빠뻘인 조용필이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그런가봐’ 라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남은 생은 조용필의 팬으로 살아갈 운명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가 없다.
‘고추잠자리’는 지금도 신선하게 느껴질 만큼 형식적으로도 실험적인 곡이다. 살짝 뽕끼가 느껴지는 멜로디와 신명 나는 리듬에서 갑자기 핑크플로이드가 연상되는 몽환적인 분위기의 팔세토 창법으로 전환되기를 반복한다. 마치 전혀 다른 분위기의 두 곡을 이어 붙인 것 같다. 최근 ‘블루 발렌타인’으로 각종 차트에서 1위를 휩쓴 JYP의 걸그룹 엔믹스가 추구하는 장르 ‘믹스팝’의 원조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K-팝은 다양한 장르를 혼합하는 실험을 꾸준히 반복해 왔다. 그런 이유로 K-팝의 시작을 ‘서태지와 아이들’로 꼽기도 한다.
조용필은 무려 1981년도에 ‘고추잠자리’를 선보였고 그해 라디오 차트에서 24주간 1위를 기록했다. 어쩌면 조용필은 K-팝의 아버지, 또는 단군 할아버지로 추앙받아야 마땅치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