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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대만 뉴웨이브의 마지막 불꽃

‘마작(1996)’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5-10-29 19:01:01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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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양의 경력에서 ‘마작(麻雀·1996)’은 ‘독립시대’(1994)와 마찬가지로 잊힌 영화였다. 대만 근현대사의 음울한 살풍경을 그려낸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은 공전(空前)의 대작이었지만, 다시 들추어내지 않으면 누군가의 독백으로만 남았을 역사의 순간을 재현한 이 회고 조의 작품이야말로 실은 그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예외적인 위치에 놓여있다. 보통 ‘독립시대’와 ‘마작’은 감독의 이전 영화와는 결이 다른 작품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도리어 평가 절하되어온 두 작품이야말로 예민한 관찰자적 시선을 견지하며 대만 사회의 당대적 풍경을 소묘해 온 ‘타이페이 스토리’(1985)와 ‘공포분자’(1986)의 연장선상이자 그의 본령에 가까운 영화인 것이다.
영화 ‘마작’의 한 장면.
피사체로서의 현실이 변하면 영화 또한 그에 맞춰 변하기 마련이다. ‘공포분자’를 낸 직후인 1987년, 국민당의 계엄령이 해제되어 억압되었던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회복되는 한편으로는 자본과 인력이 거침없이 넘나드는 국제화의 흐름 속에서 첨단 산업에의 투자가 활성화된 대만의 경제는 호황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달라진 시대는 그 시대만의 또 다른 붕괴와 파국을 마주하기 마련이다. ‘마작’은 자본주의 대만의 세태 속에서 물질만능주의에 찌들어버린 인간군상의 일그러진 초상을 통해 급속한 변화, 찬란한 번영의 뒤안길에 어두운 그림자를 포착하고자 한다.

마작을 하는 장면은 영화의 말미에 단 한 번만 나올 뿐이지만 이 제목은 일종의 은유로서 작용한다. 등장인물들은 지극히 이해타산적인 동기로 움직이는 ‘사기꾼’ 아니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자 하는 ‘바보’로 양분되어 있다. 거짓으로 사고를 일으켜 점괘가 맞아떨어진 것으로 꾸미고는 남을 속이는 홍어와 소부처, 홍콩 등 일군의 젊은 범죄자 그룹이 있는 한편으로, 그 반대편에는 영국인 애인을 찾아 혈혈단신 프랑스에서 대만으로 건너온 소녀 마르트, 홍어의 패거리에 속해있지만 마르트를 걱정하는 룬룬이 배치된다.

불리한 패를 감추고 유리한 형세를 점해 상대로부터 이득을 취하려는 도박판의 규칙이 세상에 만연하자, 적응해 기회를 포착한 사람들은 부를 거머쥐고, 사랑과 같은 낭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세상 물정 모르고 뒤떨어진 시대 부적응자로 취급받는다.

‘하나 그리고 둘’(2000)에서 양양이 사람들의 뒷모습만을 사진에 담았던 것처럼, 에드워드 양은 대만 사회에서 사람들이 외면하고자 했던 나머지 반쪽의 진실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 여백에는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존재로서 인간에 대한 모종의 성찰 또한 담겨있다.

타인을 철저한 ‘이용’의 대상으로 바라본 홍어와 홍콩이 맞이하게 되는 냉혹한 결과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로 바라보았던 룬룬과 마르트의 관계가 사랑으로 발전하는 따뜻한 결말과 대조를 이루며 ‘비정성시(悲情城市)’ 속에서도 인간의 온기를 찾고자 했던 감독의 희망을 드러낸다.

‘마작’은 대만 뉴웨이브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스크린쿼터의 폐지와 푯값의 인상, 자국 영화를 기피하는 대만 관객의 변화와 겹치며 영화는 처참히 망했고, 실망한 에드워드 양은 대만 영화계와 모든 관계를 끊고 미국으로 떠났다가 일본 자본으로 ‘하나 그리고 둘’을 찍었다. 한 세대 가까운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도착한 이 영화에 지금의 세태와 한국 영화의 현실을 비추어보는 건 괜한 비약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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