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세기 계룡산 분청사기 대표작
- 공납용 아닌 독창적인 개성 담아
조용한 수장고 한 편, 묘하게 시선을 끄는 도자기 한 점이 있다. 거칠게 바른 흰 흙 위에 철화로 그린 세 장의 잎사귀가 선명하다. 단정하면서도 자유롭고, 소박하면서도 당당하다. 500년 전 장인의 손끝에서 태어난 분청사기철화삼엽문병(粉靑沙器鐵畵三葉紋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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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박물관 소장 분청사기철화삼엽문병. |
이 병은 15세기 충남 공주 학봉리 가마에서 제작된 계룡산 분청사기의 대표작이다. 바람이 스친 듯 흩뿌린 백토와 대담하게 그려진 잎사귀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이는 귀얄과 철화라는 기법이 어우러진 결과다. 귀얄은 넓은 솔로 흰 흙을 빠르게 발라 거친 질감을 남기고, 철화는 철분 안료로 무늬를 그리는 방식이다. 이 병에 표현된 것은 모란의 잎으로, 꽃을 생략한 ‘모란엽문(牡丹葉紋)’이다. 세 장이 모여 삼엽문(三葉紋)을 이루며, 모란이 지닌 부귀와 번영의 뜻을 담고 있다.
고려 말, 고려청자가 쇠퇴하고 자기소가 해체되자 도자기를 굽던 장인들은 전국 각지로 흩어졌다. 장인들은 정착한 곳에서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고, 청자를 만들던 회청색의 흙으로 새로운 종류의 그릇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바로 조선 전기 약 150년간 유행했던 분청사기이다. 당시 분청사기는 왕실 또는 관아에 공납되었는데, 1460년대 경기도 광주에 관요가 설치되면서 지방의 공납용 분청사기 생산은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오히려 장인의 개성과 지역적 특색이 드러나는 작품들을 탄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공주 학봉리 가마에서 제작된 계룡산 분청사기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학봉리 가마는 ‘세종실록 지리지’에도 기록된 충청도의 주요 자기소였다. 여기서는 거친 귀얄의 손맛과 대담한 철화 문양이 어우러진 독창적인 분청사기가 만들어졌다. 부산박물관 철화삼엽문병도 그 흐름 속에서 탄생한 작품으로, 시대적 변화 속 장인 정신이 잘 드러난다. 일정한 규격에 맞춘 공납용 분청사기에서 벗어나면서 장인마다 다른 감각과 자유로움이 녹아들었다. 이 삼엽문 병 역시 생활 용기를 넘어, 자신만의 예술혼을 품은 기록이다.
분청사기는 다양한 장식 기법을 통해 장인의 감각을 고스란히 담아낸 도자기다. 부산박물관 소장 분청사기철화삼엽문병 역시 거친 귀얄 안에 빛나는 자유로움이 깃들어 있다. 500년 전 변화의 시대 속에서 장인들이 자신의 색을 담았듯, 오늘날 우리도 각자의 개성을 표현하며 시대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