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티리얼리스트’(2025)라 함은 ‘물질주의자’ 내지 ‘속물’ 정도로 옮길 수 있을 텐데, 오늘날의 세태 속에서는 ‘현실주의자’로 받아들여도 어색하진 않을 것이다. 한때 사랑이라는 어휘가 지녔던 장밋빛 낭만성은 증발하다 못해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지금 남은 건 ‘결혼은 현실’이라는 식의 명제와 이해타산뿐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사람과 사람 간의 인연이 행동반경 안에서의 직접적인 만남으로 이루어졌다면, 소셜네트워크와 매칭앱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어마어마하게 넓은 범위에 접속해 잠재적 연애 대상을 만나게 되었고, 키와 외모, 경제능력 등을 따져가며 사랑에도 효율성을 추구하다보니 도리어 연애불능 상태에 빠져버리는 아이러니를 겪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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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머티리얼리스트’의 한 장면. |
더 이상 운명을 이야기하고 감정의 진실성을 추구하는 고전적 멜로드라마를 쓸 수 없게 된 시대. 영화에서 셀린 송은 연애와 사랑이라는 사적 감정의 영역마저 자본주의에 의해 식민화한 현대의 풍속을 겨냥하고 풍자하고자 한다. ‘패스트 라이브즈’(2023)가 한국계 이민자라는 자기 정체성의 반영이었다면, ‘머티리얼리스트’는 주인공 루시(다코다 존슨)처럼 뉴욕의 결혼정보회사에서 커플매니저로 일했던 실제 경험이 투영된 것이라고 한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경계선에 걸쳐있는 인물의 딜레마를 그린다는데 있다. ‘패스트 라이브즈’의 나영은 한국과 미국이라는 상이한 두 문화권 사이에서 감정적으로 진동했고, ‘머티리얼리스트’에선 루시 역시 존(크리스 에반스)과 해리(페드로 파스칼)와의 삼각관계에 처해, 하류층과 상류사회 중 자신이 속할 곳을 정해야하는 시점에 서있다. 결혼은 단지 함께할 사람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이후 삶의 향방과 계급적 정체성을 결정짓는 ‘사업’이 되었는데, 루시는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된 해리가 아닌 무명 연극배우 존을 남은 생애를 같이 할 반려로 선택한다.
이는 진실한 사랑이 모든 현실적 조건을 넘어선다는 식의 시대착오적인 구도를 답습하는 게 아니다. 분명 삶의 많은 문제는 물질적인 요소로 해결이 가능하지만, 인간에게는 합리적 이성과 계산만으로 결정할 수 없는 영역, 진솔한 감정의 세계가 있으며, 그마저 상품으로 대하게 되는 순간 스스로의 존엄을 말살하게 됨을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그런 점에서 ‘머티리얼리스트’라는 제목은 실로 역설적이다. 어떠한 조건 없이 성립하던 윈시인의 사랑을 그린 도입부는 쇼윈도의 상품처럼 연애대상을 물색하고자 했던 루시의 고객 소피(조이 윈터스)가 종국에 가서는 “나는 상품이 아니라 사람이에요”라 외치게 되는 순간과 연계되며 영화의 메시지를 완성한다.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나영과 해성의 인연, ‘머티리얼리스트’의 관계들이 그랬듯, 삶은 결코 원하는 방식대로 통제되지 않는다. 미래를 두려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우리는 늘 최선의 선택을 하고 모든 소망을 만족시키길 바라지만, 그러한 시도는 필연적으로 실패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도래하는 삶의 시간을 받아들이며 순간순간을 가능한 자신에게 진실 되게 사는 것일 따름이다. 전작과 다른 색채의 영화이지만 불가해(不可解)한 삶의 조건을 응시하며 자기 방기(放棄)의 드라마를 그린다는 점에서 셀린 송은 작가주의적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곡진한 사유의 깊이를 다음 작품에서도 이어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