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5일)는 한국전쟁 발발 7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1950년 6월 25일, 수백 만의 삶을 뒤흔든 전쟁이 시작되었고, 남쪽 끝 부산은 그 전쟁의 마지막 보루이자 가장 많은 피란민이 몰린 임시수도가 되었다. 바닷가 언덕과 항만 일대에는 비조차 막지 못하는 움막과 판잣집이 빽빽하게 들어섰다. 그러나 이처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멈추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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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희동 ‘부산영도해안’, 1952년, 종이에 수묵담채, 7×80.5㎝.
국립해양박물관 소장 |
당시 부산에는 전국 각지에서 피란 온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김환기 장욱진 이응노 박고석 등 한국 근현대 미술의 주요 작가들이 이곳에 머물며 작업을 이어갔다. 화판과 물감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전시회가 열리고, 미술 단체들도 꾸준히 활동했다. 예술은 이들에게 삶을 지탱하는 정신적 버팀목이자, 눈앞의 현실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수단이었다.
춘곡 고희동(1886~1965) 역시 이 시기 부산에서 활동을 이어간 화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흔히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로 알려져 있으나, 일본 도쿄미술학교에서 유화를 전공한 뒤 귀국해 한국화로 전향했고 이후 동서양의 표현법을 절충한 독자적인 화풍을 완성해 갔다. 국립해양박물관이 소장한 ‘부산영도해안’은 그가 전쟁기 부산의 풍경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포착한 작품이다.
화제(畵題)에 따르면 이 작품은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봄, 영도 앞바다의 정박지를 그린 것이다. 가로로 긴 화면 속에는 줄지어 늘어선 선박들이 항구를 가득 메우고 있고, 원근법을 활용한 구성은 화면에 깊이를 부여한다. 수평선 가까이 밀집된 배들과, 숲처럼 빼곡하게 얽힌 돛대와 밧줄은 항만이 감당했던 피란 현실의 물리적 밀도를 시각화한 듯하다. 선박 위에는 짐과 사람들로 가득한 모습이 간략하게 묘사되어 있어, 전쟁기 항구의 혼잡한 분위기를 전한다. 실제로 당시 부산항은 유엔군 군수물자가 집중적으로 유입되던 보급기지였고, 해상과 육상의 수송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수면 아래로 드리운 선박의 반영은 짙은 먹으로 표현되었고, 잔잔하지만 불안정하게 일렁이는 수면은 긴장감을 자아낸다. 하늘 위에 얇게 번진 먹빛 구름은 시대의 어둠을 암시하듯 퍼져있고, 거칠고 불규칙한 붓질에는 긴박한 공기가 서려 있는 듯하다. 이처럼 화면 어디에도 전쟁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복잡하게 얽힌 선박, 무겁게 내려앉은 수면, 먹빛으로 흐린 하늘은 오히려 당시 정서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전통적으로 산수화는 관념적 이상향을 그리는 데 주력해 왔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전쟁기 부산이라는 구체적 현실을 정면으로 담아낸다. 전쟁은 이상을 밀어냈고, 예술은 눈앞 풍경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피란수도의 항구에서 고희동이 그린 바다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시대를 압축한 장면이자 붓으로 기록한 역사이다.
다시 6월이다. 전쟁 발발 75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이 그림 앞에 다시 선다. 피란지 부산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던 화가는, 고요한 수면 아래 시대의 슬픔과 긴장을 담아냈다. 그 바다는 지금도 잔잔히 출렁이며, 조용히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 국립해양박물관·국제신문 공동 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