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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144> 황비창천(煌丕昌天) 명문이 새겨진 고려시대 청동거울

거울 뒷면 용·교역선 등 새겨…천년 전 고려인 삶·신앙 담아

  • 정수희 부산박물관 교육홍보팀장
  •  |   입력 : 2025-05-14 18:53:10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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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거울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일상은 오늘만의 풍경이 아니다. 천 년 전 고려시대 사람들 역시 청동으로 만든 ‘동경(銅鏡)’을 들여다보며 하루를 준비했다. 이 청동거울은 단순히 얼굴을 비추는 도구를 넘어 신비로운 힘과 하늘의 계시, 권위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왕이나 귀족의 무덤에 부장품으로 넣거나, 절과 탑의 장엄구로도 사용되었다.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기술 발전과 구리 생산 증가로 동경이 대중화되어 다양한 형태와 문양으로 제작되었다. 거울 문양에는 사용자 신분과 취향, 그리고 시대의 종교·문화적 가치관까지 담겨 있다.
고려시대 청동거울 ‘황비창천명경’. 부산박물관 제공
부산박물관에 소장된 ‘황비창천(煌丕昌天)’ 명문 청동거울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황비창천’이란 ‘밝고 크게 창성한 하늘’이라는 뜻으로 행운과 번영, 하늘의 보호를 기원하는 길상적인 문구이다. 이 거울은 지름 17㎝ 정도 크기이며, 여덟 꽃잎 모양(八稜形)을 이룬다. 앞면은 매끄럽게 다듬어져 초록색으로 반짝이고, 뒷면에는 커다란 배가 거친 파도를 헤치며 바다를 건너는 장면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배 위에는 많은 사람이 타고 있고, 앞쪽으로는 구름에 싸인 용이 앞발을 내밀고, 바닷속에는 상상의 동물인 마갈어(摩竭魚, 마카라)와 큰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다. S자 모양의 크게 일렁이는 파도와 꽃잎처럼 피어오르는 물거품, 그리고 고대 한자 서체(전서체)로 새겨진 ‘황비창천’ 네 글자가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처럼 바다와 용 괴물, 그리고 길상적 글귀가 거울에 새겨진 것은 고려시대 해상 교역이 활발했던 시대적 배경과 맞닿아 있다. 당시 바다는 늘 위험이 도사리는 공간이었기에, 사람들은 부처님의 가호를 빌며 무사 귀환을 기원했다. 여러 불교 경전에는 “상인이 보물을 찾아 바다로 나갔다가, 거대한 물고기와 용을 만나 위험에 처하지만, 부처님의 도움으로 무사히 돌아온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특히 ‘대수구다라니경’에는 바다에서 위험을 일으키는 수중 짐승과 그 구제 장면이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는데, 황비창천명경의 도상과 매우 유사하다. 이 거울에는 바다에서의 안전과 무사 귀환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황비창천명경은 부산박물관을 비롯해 국내외 여러 박물관에 70여 점이 남아 있다. 비록 이제는 얼굴을 비추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다했지만, 이 거울은 천 년 전 고려인의 삶과 신앙, 그리고 바다를 향한 꿈과 두려움을 전하는 ‘시대의 거울’로서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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