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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143> 기장 정관 방곡리유적 출토 백자 합과 명기

망자 향한 슬픔과 예, 명기(明器)에 담아

  • 이은혜 정관박물관 학예연구사
  •  |   입력 : 2025-04-23 18:14:06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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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탄생과 죽음을 마주한다. 어딘가에서는 갓난아기가 우렁찬 울음소리로 세상에 첫발을 내딛고, 또 다른 곳에서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슬픔의 곡소리가 울려 퍼진다. 만남의 기쁨은 찰나이지만 이별의 아픔은 길게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별의 슬픔을 달래기 위한 저마다의 방식을 찾는다.
부산 기장군 정관읍 방곡리 유적에서 출토된 백자 합과 명기. 정관박물관 제공
고대에는 죽은 이를 위해 무덤에 그릇이나 인형 등 생활용품을 함께 묻었다. 한때는 망자의 내세를 위해 동반자를 함께 매장하는 순장 풍습도 있었다. 그러나 순장과 많은 부장품을 무덤에 넣는 일은 사회적·경제적 손실이 막대해 신라 지증왕 3년(502) 순장이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다. 이때 순장을 대신해 등장한 것이 바로 명기(明器)다. 명기는 넓게는 무덤에 부장되는 모든 기물(器物)을 의미하지만, 좁게는 조선시대 만들어진 10㎝ 이하의 소형 규격의 정형화된 기물을 가리킨다. 명기라는 용어는 고려시대부터 등장하지만,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조선시대부터다.

조선시대는 유교의 예와 규범이 사회 전반을 이끌던 시기였다. 그중에서도 상례(喪禮)는 망자에 대한 예를 다하는 매우 중요한 의례로 인식되었다. 이에 조선 왕실에서는 상례에 사용할 명기를 직접 제작했을 뿐만 아니라, 명기의 재질과 수량까지 제도화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명기 관련 기록이 71건이나 남아 있으며, 그중 세종실록 ‘오례’ 흉례서례(凶禮序禮) 명기조(明器條)에는 명기 종류와 수량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명기를 무덤에 부장하는 행위는 성리학적 위계질서와 품계에 따라 엄격히 제한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00년대 초 부산 기장군 정관읍 방곡리 유적에서 백자 명기 10점이 출토되었다. 방곡리 유적은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무덤, 집자리 등이 확인된 복합 유적으로, 명기는 조선시대 분묘(나지구-12호묘) 동쪽벽 감실에서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명기는 백자 합 안에 들어 있었으며, 명기의 형태는 세종실록‘오례’에 그려진 대접 잔탁 병 촛대 향로와 유사하다. 묘지석이 출토되지 않아 묘의 주인은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에는 품계에 따라 명기 가짓수와 재질 등을 규제하였으므로 다종의 백자 기물이 함께 묻힌 이 묘의 주인은 당시 사회에서 높은 신분이었던 인물로 추정된다. 비록 묘 주인의 이름은 남아 있지 않지만, 망자를 위해 정성을 다한 유족들의 마음은 이 작은 그릇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의 슬픔, 그리고 조상에 대한 예를 실물로 표현한 것이 바로 명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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