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래고무 예능보유자인 김온경
- ‘평생의 내공’ 담은 독무에 감동
- 부산무용제 3개 신진단체 공연
- 대상작 구성력·표현력 인상적
최근 규모 있는 춤 공연이 잇따라 부산 무대에서 펼쳐졌다. 지난 9일 국립부산국악원 연악당(대극장)에서 열린 ‘88고개, 김온경 부산 악가무를 보다’가 그 하나다. 또 하나는 지난 12일과 13일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개최된 제34회 부산무용제다. 두 현장은 공연의 밀도와 작품의 온도라는 측면에서만 보아도, 놓쳤다면 퍽 아까웠을 면모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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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일 국립부산국악원에서 열린 공연에서 김온경 선생이 동래야류 중 문둥이춤을 추고 있다. 오른쪽은 지난 12일 열린 제34회 부산무용제 경연에서 부산아이디발레단이 ‘철근 위의 백조’를 공연하는 모습. 동래고무보존회, 부산무용협회 제공 |
두 공연 현장에 주목한 이유가 또 있다. 한 곳은 올해 88세 미수(米壽)에 이른 원로이면서 현역인 김온경 동래고무 예능보유자가 주도한 전통 춤의 향연이다. 한 곳은 춤 예술가로서 발돋움하는 중인 신예들이 펼치는 경연의 장이다. 부산 춤 예술 환경이 줄곧 가파르게 열악해져 왔다고 많은 관계자가 일관되게 말한다. 그런 상황에서 88세 현역 무용가가 발효해 온 춤의 세월과 파릇하고 패기 넘치는 신진의 거친 호흡을 어떻게든 연결시켜 보고 싶었다. 그렇게 해보면 뭐가 나와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 심정이었다.
김온경 선생의 공연은 렉처(lecture) 콘서트 형태였다. 공연 중간중간 경상국립대 민속예술무용학과 강인숙 교수가 김온경 원로와 대담하는 방식이었다. 88세 원로는 이렇게 회고했다. “초등 4학년 때 선친(예술가이자 후원자 김동민 선생)의 인도로 국악 명인 강태홍(1892~1968) 선생께 춤을 배웠습니다. 양팔을 이렇게 탁 끼어 고정하고는 한 장단에 발 한 번 떼고 또 떼고 하는 식으로 방안과 대청을 돌아다니기만 했습니다. 몇 달 동안 그런 훈련을 한 뒤 겨우 팔을 들어볼 수 있었어요.”
요컨대 혹독한 기본기 훈련, 몸의 중심 훈련이 필수였다는 뜻이다. 표현 욕구가 왕성한 젊은 춤꾼에게 더욱 필요한 덕목으로 다가왔다. 이날 공연에서 매우 인상 깊었던 장면은 김온경이 홀로 동래야류 문둥 과장의 춤을 춘 순간이다. 간결·단순한 가운데 산뜻한 맛마저 있었던 춤을 보며 ‘저 88세 원로가 훈련을 놓지 않고 지금도 무대에 올라 춤추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고 이매방·김백봉 선생 말고는 ‘미수 춤 공연’을 치른 사례가 없다고 한다. 김온경이 평생 가꾼 ‘산조’와 ‘동래고무’의 군무는 민간 춤 단체의 저력을 보여줬다.
지난 12, 13일 부산문화회관에서 펼쳐진 제34회 부산무용제에서는 부산아이디발레단(‘철근 위의 백조’·안무 이주호), 아트프로젝트 춤 is(‘시대예보: 호명사회’·안무 김지혜), 현대무용단 자유(‘Obscured silence’·안무 하주은) 등 3개 단체의 치열함을 느꼈다. 춤 예술 환경이 열악해져 공연 밀도도 어느 정도는 헐렁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짐작은 빗나갔다.
대상을 받은 ‘철근 위의 백조’는 특히 몇 가지 점에서 돋보였다. 먼저, 좋은 의미에서 매우 영리했다. 친숙한 고전 발레 ‘백조의 호수’ 기본 틀과 차이콥스키 음악을 가져왔다. 이 선택으로 공감력이 확보될 수 있었다. 구성과 전개를 단순·선명하게 가져간 점 또한 규모 있는 춤 공연의 속성과 어울렸다. 그러면서 주제를 ‘오늘·여기·우리’ 문제로 변주하고, 활달한 표현력으로 맹목적 개발과 생태 보호라는 갈등을 시각화했다. 주제가 너무 단순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겠다. 이는 결국 관객 몫으로 남는다.
원로와 신진의 공연장을 다니며 모처럼 춤 현장을 취재한 소감은 ‘이 정도면 부산 춤의 호흡, 살아있네’였다. 새로 출범한 부산무용협회(회장 남선주)와 무용인 등이 노력한다면 어려운 가운데서도 희망을 가꾸지 않을까.